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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윤 백경증류소 대표가 지난 3월 15~17일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열린 세계적 와인·주류 전문 박람회 ‘프로바인(ProWein) 2026’에 참가해 전통주 브랜드 ‘백경’ 부스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백경증류소] |
[헤럴드경제=김선국 기자] “좋은 술만 만들면 알아서 팔릴 줄 알았습니다. 참으로 순진한 생각이었고, 가장 큰 착각이었죠.”
정창윤 백경증류소 대표는 아버지의 양조장에서 독립해 창업에 도전했던 3년 전을 이렇게 회고했다. 첫해 매출은 400만원. 술 맛엔 자신이 있었지만 시장은 외면했다. 하지만 이제 월 매출 1억원 수준이 됐고 미국 시장까지 진출을 앞두고 있다. 주문자상표부착생산(OEM) 계약까지 체결하며 하반기에는 월 매출 2억원도 기대하고 있다.
정 대표는 “백경은 거대한 바다를 건너는 힘과 도전을 상징한다. 한국 술을 세계 시장에 알리고 한국 술도 글로벌 품질과 경쟁력을 갖출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브랜드명 ‘백경’은 소설 ‘모비딕’에 등장하는 흰고래에서 따왔다. 한국 술도 와인·사케처럼 세계 시장을 항해할 수 있다는 의미를 담았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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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증류소가 생산하는 전통주 제품들. 왼쪽부터 백경15 골드, 백경15 화이트, 백경15, 백경15 향미주곡, 백경15 향온. [백경증류소] |
그는 “한국 술도 와인이나 사케처럼 세련되고 품격 있는 술이 될 수 있다. 전통이라는 틀에만 머무르지 않고 좋은 식탁 위에 자연스럽게 올라갈 수 있는 술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브랜드 디자인은 아내가 맡았다. 여러 전문 디자이너를 만나봤지만 백경이 어떤 브랜드인지,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아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현재 디자인이 나오기까지 네 차례의 큰 수정 작업을 거쳤다고 한다.
브랜드 구축과 디자인에만 4000만원을 투입했다. 청년 창업인치고 브랜드 만들기에 상당한 비용을 쓴 셈이다. 초기에는 전통주라는 점을 설명하는 요소가 많았지만 지금은 설명을 줄이고 절제된 디자인으로 프리미엄 이미지를 전달하는 방향으로 다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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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증류소가 직접 제조한 술누룩이 발효·숙성 과정을 거치고 있다. [백경증류소] |
정 대표는 백경을 특정 지역 특산주가 아닌 ‘식탁 위의 술’로 포지셔닝했다. “왜 이술을 마셔야 하는가, 어떤 음식과 어울리는가 등 소비자 관점에서 다시 생각해봤다”고 회고했다.
그는 “한식뿐 아니라 프랑스와 이탈리아, 튀르키예 음식 등 다양한 요리와 어울리는 술이라는 점을 꾸준히 알렸다”며 “술 자체보다 어떤 경험을 제공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경남 함양에서 대대로 한의원을 운영해 온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약재를 다루고 법제(法製)하는 모습을 보며 자랐다. 한의학에서는 약재를 술로 법제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아버지가 양조장을 창업했고 정 대표 역시 자연스럽게 술과 발효를 접했다.
첫 직장도 아버지의 양조장이다. 20대부터 30대 초반까지 약 7년 동안 아버지와 함께 양조장을 운영하며 술 개발에 참여했다. 원료 선정부터 발효 관리, 제품 출시까지 전 과정을 현장에서 익혔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의 술이 아닌 자신의 술을 만들고 싶었다.
정 대표는 “와인이나 사케처럼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그 가능성을 나의 방식으로 증명해 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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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증류소 직원이 전통주 제조에 사용할 고두밥을 식히고 고르게 섞는 작업을 하고 있다. [백경증류소] |
창업 전 연 소득은 4000만원 수준이었다. 안정적인 수입을 포기해야 했지만 결국 독립을 선택했다.
독립 후 처음 선택한 곳은 제주도였다. 좋은 물과 자연환경에 매력을 느꼈지만 현실은 녹록지 않았다. 가장 큰 문제는 물류였다.
정 대표는 “제주에서 사업을 하며 물류가 사업의 성패를 좌우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절실히 느꼈다”며 “좋은 제품을 만드는 것 못지않게 공급과 유통 체계를 갖추는 것이 중요했다”고 말했다.
결국 그는 물류 접근성이 뛰어난 세종특별자치시로 자리를 옮겼다. 우리 쌀과 직접 만든 누룩, 자연발효를 기반으로 생산하고 있다.
창업 첫해인 2023년 한해 통틀어 400만원의 매출을 올렸다. 정 대표는 “좋은 제품만 만들면 시장이 알아줄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브랜드라는게 아예 만들어지지 않았고 유통망도 부족했다”고 말했다.
이후 술을 ‘만드는 사람’의 시선이 아니라 ‘소비자의 시선’으로 접근하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식품산업클러스터진흥원의 청년식품창업패키지 지원도 성장의 전환점이 됐다. 정 대표는 시제품 품평회를 통해 맛과 향에 대한 소비자 반응을 점검했고, 포장재 컨설팅을 받아 향 손실 문제를 개선했다.
또 바이어 상담회를 통해 면세점·백화점 입점을 추진하고 소매 유통 초도 물량 협의를 진행했다. 투자유치 컨설팅을 통해 기업설명회(IR) 자료 작성과 발표를 준비해 3억원의 투자금을 유치했고, 이를 바탕으로 생산능력을 확대했다.
정 대표는 “제품 개발부터 유통, 투자유치까지 사업화 전 과정을 경험할 수 있었던 것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그 결과는 숫자로 나타났다. 지난해 매출은 4억원으로 늘었고 올해는 월 매출 1억원 수준까지 성장했다. 최근에는 대형 OEM 계약도 체결했다. 품질 기준을 지키기 위해 신중하게 검토한 끝에 같은 철학을 가진 파트너를 만나 계약을 성사시켰다. 7월부터 본격 납품이 시작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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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증류소의 주력 제품인 ‘백경15’.[백경증류소] |
대표 제품은 ‘백경15’다. ‘15’는 알코올 도수를 뜻한다. 정 대표는 지나치게 무겁지도 가볍지도 않은 15도를 통해 한식은 물론 프렌치와 이탈리안 등 다양한 음식과 어울리는 한국 술을 만들고자 했다.
백경15는 우리 쌀과 직접 만든 누룩, 자연발효를 기반으로 빚는 프리미엄 약주다. 현재 골드·블랙·화이트를 비롯해 향미주곡, 향온 등 다양한 제품군을 선보이고 있으며 제품마다 원료와 발효 방식, 풍미를 달리했다.
특히 ‘백경15 블랙’은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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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경증류소의 전통주 ‘백경 15’가 세계 주류 품평회인 IWSC(International Wine & Spirit Competition) 2026에서 브론즈상을 수상했다. 사진은 IWSC 수상 인증서. [백경증류소] |
사업이 되겠다는 확신을 준 계기는 첫 수출이었다.
지난해 싱가포르로 1000만원 규모의 첫 수출을 진행했다. 규모는 크지 않았지만 브랜드가 해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이후 독일 수출을 시작했고 홍콩과 중국 등에서도 바이어 상담과 전시회를 이어갔다.
정 대표는 “해외 바이어들이 백경을 마시고 ‘이 술은 세계 시장에서도 충분히 설명할 수 있는 술’이라고 평가해 줄 때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현재는 미국 시장 진출도 앞두고 있다. 정 대표는 “미국은 다양한 음식 문화와 주류 문화가 공존하는 시장”이라며 “한인 시장에만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소비자들에게 한국 술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싶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한식당이 시작점이 될 수는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프렌치, 이탈리안, 파인다이닝 등 세계의 다양한 식탁에 우리 술을 올리는 것이 목표”라며 “한국 술이 한식에만 어울리는 술이 아니라 세계의 다양한 음식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술이라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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