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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해충은 국경을 가리지 않는다. 기후변화 역시 지도 위 경계선 앞에서 멈추지 않는다. 어느 한 나라의 논밭에서 시작된 변화가 이웃 나라의 식탁과 시장, 나아가 농업인의 일상에까지 영향을 미치는 시대다. 그렇기에 농업기술 협력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었다. 이는 식량안보와 기후 위기, 농업 생산성이라는 공동의 숙제를 함께 풀어가는 가장 현실적인 해법이다.
지난 5월 21일, 중국 베이징 중국농업과학원(CAAS)에서 열린 제24차 한·중 농업기술협력 기획 회의에 농촌진흥청을 대표해 참석했다. 1994년 양국이 농업기술 협력 양해각서(MOU)를 체결한 이후 매년 이어온 기획 회의였으나, 팬데믹과 급변하는 국제 정세의 파고 속에서 잠시 멈춰 서야 했다.
다시 마주 앉기까지 걸린 시간은 6년. 오랜 기다림 끝에 마주 잡은 손은 단순한 회의 재개를 넘어, 두 나라 농업의 미래를 함께 설계하는 첫걸음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회의장에 놓인 합의문이 유독 묵직하게 느껴진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번 회의는 양국 간 농업 협력의 실질적인 ‘기술 동맹’을 구현하고, 미래 농업의 공동 경쟁력을 확보하는 전략적 전환점이 될 것이다.
이번 논의의 중심에는 미래 농업의 핵심 동력인 ‘그린바이오’가 있다. 양 기관은 식량작물 이동성 해충의 분류 및 친환경 방제, 농장 동물의 소모성 질병 예방, 스마트 농기계 개발과 현장 실증, 농산물 자원을 활용한 기능성 식품첨가물 효능 검증, 그리고 현지 유전자원을 활용한 신품종 개발과 실증 등 5개 분야의 협력과제에 뜻을 모았다.
이는 선언적 교류에 그치지 않고, 기후 위기와 식량안보, 생산성 저하와 신산업 창출이라는 공동의 현안을 기술로 돌파하겠다는 강력한 실행 의지의 표명이다.
2027년부터 5년간 추진되는 이 사업들은 한국이 연구 재원을 지원하고, 중국이 시설·장비·시험포장 등 인프라를 분담하는 구조로 설계됐다. 특히 주목할 점은 연구실의 성과를 시장과 직접 연결하기 위해 도입한 혁신적인 협력 모델이다. 한국 농기계의 중국 현지 실증과 개량을 통해 현지화와 수출을 지원하는 한편, 한국산 곤충 가공품이 중국 내 정식 식품 원료 및 첨가물 등록에 협력하기로 한 점도 의미 있는 진전이다.
농촌진흥청은 이번 회의를 일회성 외교 행사로 매듭짓지 않을 것이다. 현지에 구축된 중국 협력 연구실을 거점으로 후속 실무협의를 이어가며, 신규 과제 기획과 협약을 차질 없이 진행할 계획이다. 아울러 연변대학교와의 신규 MOU 체결을 통한 농업기술 연구 협력, 과제별 연례 성과 공유회 등은 현장 중심의 협력 체계를 더욱 공고히 다지는 디딤돌이 될 것이다.
기술협력의 최종 목적지는 회의장이 아니다. 합의는 시작일 뿐, 성과는 농업인의 삶에서 증명되어야 한다. 이제 현장을 향해야 할 때다. 병해충 예측이 빨라지고, 가축 질병 대응이 정교해지며, 농기계와 신품종이 농가의 부담을 덜어줄 때 협력은 비로소 힘을 갖는다.
농업의 미래는 경쟁만으로 열리지 않는다. 정확한 기술, 신뢰에 기반한 협력, 그리고 현장을 향한 책임 있는 실행이 함께할 때 더 단단해진다. 농촌진흥청은 다시 열린 협력의 문을 농업인의 내일을 바꾸는 성과로 이어가겠다.
김상경 농촌진흥청 차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