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게 태어난 게 잘못?” 어른들 탓에, 평생 ‘고통’받는 아이들…충격적 현실, 알고 보니 [지구, 뭐래?]

2021년 12월 20일 필리핀 보홀 주 타폰 마을에서 8살 임포이가 무너진 집 잔해 속에 앉아 있다. 임포이의 가족은 이 마을의 거의 모든 다른 가족들처럼 집을 잃었다.[유니세프 ‘2026 아동 기후 위험 보고서’ 갈무리]


[헤럴드경제=김광우 기자] ‘어른들이 만든 세상, 고통은 아이들이 받는다?’

지금 태어난 아이들만이 누릴 수 있는 세상의 편리함이 있는 반면, 그 아이들이 겪어야 하는 ‘고통’도 존재한다.

극심한 기후변화는 유독 아이들에 더 취약한 대표적인 위험. 흔히 떠올리는 기온 상승 외에도 대기오염, 가뭄, 홍수, 해수면 상승 등 모든 기후위험의 강도가 거세지고 있다.

이 중 최소 2개 이상의 기후위험에 노출된 ‘복합위험’ 아동의 수만 현재 20억명 이상인 것으로 추정됐다.

일각에서는 세대를 막론하고 시대적인 ‘혜택’과 ‘고통’이 공존할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사회와 기술의 발전과 동반해 기후변화가 가속화됐기 때문.

차드 북부 카넴 주에서 아이들이 물을 마시러 가고 있다.[유니세프 ‘2026 아동 기후 위험 보고서’ 갈무리]


하지만 이같은 논리에 정면 반박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혜택과 고통의 균형이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것.

실제 산업 발전의 혜택을 보고, 기후변화를 주도한 국가와 집단의 아이들은 위험에 대응할 수 있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되레 기후변화에 크게 기여하지 않은 국가와 집단의 아이들은 고통에 더 쉽게 노출된다.

심지어 의료 등 필수 서비스도 제공받지 못하고, 재난에 대응하지 못해 짧은 생을 마감하는 아이들의 수도 적지 않다. 기후위기를 ‘아동권리’의 문제로 봐야 한다는 시각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한 아이의 뺨에 땀이 맺혀 있다.[게티이미지뱅크]


글로벌 비영리단체 유니세프(UNICEF)는 ‘아동 기후 위험 보고서 2026’를 통해 전 세계 거의 모든 아동이 폭염, 가뭄, 홍수, 산불, 대기오염 등 기후재난 중 최소 하나 이상의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밝혔다.

유니세프는 각 기후재난 양상에 따라 얼마나 많은 아동들이 위험에 노출돼 있는지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여기에 따르면 대기오염에 노출된 아동은 전 세계 23억명, 가뭄에 노출된 아동은 18억명, 폭염과 말라리아에 노출된 아동은 각각 15억명, 10억명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흔히 기후위기라고 하면 홍수나 폭염 등 자연에서 초래되는 재난만 해당한다고 여긴다. 하지만 대기오염과 말라리아, 식량 부족 등 또한 기후위기로 인해 악화하는 일종의 ‘기후재난’이다. 감염병을 예로 들면, 온도와 강수 패턴의 변화로 모기 등 매개체의 서식 환경이 바뀌어 피해를 증폭시킨다.

인도네시아 자와 틍아주 데막군 한 해안가 마을의 해수면 상승이 진행되고 있다.[그린피스 제공]


보고서에서 강조된 부분 중 하나는 최소 2개 이상의 기후재난에 노출된 ‘복합위험’이다. 실제 전 세계 아동 20억명은 최소 2개 이상의 기후위험에 노출된 것으로 나타났다. 11억명은 최소 3개 이상, 4개 이상에 노출된 아동은 3억6400만명에 달했다.

복합위험이 발생하는 이유는 각 기후위험이 가속화되는 데 따라, 또 다른 기후위험을 부르는 ‘연쇄작용’이 일어나기 때문이다.

예컨대 기후변화로 인해 기온 상승과 폭염이 나타날 경우 심각한 가뭄 또한 동반될 수 있다. 이 경우 농작물 또한 수분을 얻지 못하고, 인근의 식량 불안을 악화시킨다. 아울러 가뭄으로 식생이 마를 경우, 산불이 쉽게 발생한다. 그렇게 발생한 산불은 대기오염을 유발한다.

2025년 3월 페루 우카얄리 지역의 폭우로 피해를 입은 어린이들.[유니세프 ‘2026 아동 기후 위험 보고서’ 갈무리]


이 과정에서 아이들은 성인보다 기후위험에 더 취약한 특성을 보인다. 아직 신체와 정신이 발달하는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특히 직접적으로 신체에 위해를 줄 수 있는 폭염, 탈수, 감염병, 영양결핍 등은 아동에 있어 더욱 가혹하다. 대기오염으로 인한 호흡기 건강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모든 아동이 같은 피해를 보는 것은 아니다. 유니세프 보고서에서도 아동을 하나의 동질적인 집단으로 보는 것을 경계한다. 실제 ▷나이 ▷성별 ▷장애 여부 ▷민족 ▷거주지역 ▷사회경제적 지위 등 갖가지 조건에 따라 기후위험으로 인한 피해는 달라질 수밖에 없다.

2021년 필리핀 보홀주 바타산(Batasan)섬의 한 집이 해수면 상승으로 물에 잠긴 모습.[그린피스 제공]


심각한 것 중 하나는 식량 위기. 기후재난 대응력이 약할 수록 더 커지는 문제기 때문이다. 보고서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인해 2050년까지 추가로 2800만명의 아동이 급성 영양실조, 4000만명의 아동이 발육부진 상태에 놓일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아동 식량 빈곤을 겪는 아동의 약 70%는 기후위험 노출이 높은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

기후위험이 반드시 ‘재난’이 되는 것도 아니다. 홍수와 폭염 등 현상이 발생한다고 해도 필수 예방시설이 갖춰질 경우 피해를 예방할 수 있다. 선진국의 경우 미리 기후위험을 예측해, 재난 피해를 방지하는 시스템이 갖춰진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런 대응 역량이 없는 국가와 집단의 경우 피해의 직격탄을 맞는다.

인도네시아 자와 틍아주 데막군 한 해안가 마을이 물에 잠겨 있다.[그린피스 제공]


보건 영역의 경우 공백이 더 심각한 수준이다. 2024년 기준 약 2000만명의 아동이 생명을 구할 수 있는 백신을 맞지 못했다. 이 가운데 1430만명은 디프테리아·파상풍·백일해가 포함된 백신을 단 한 차례도 맞지 못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영양실조, 말라리아, 설사병, 열 스트레스만으로도 2030년대에 매년 25만명의 추가 사망이 발생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같은 상황에서도, 사회보호 체계는 넓게 작동되지 않는다. 전 세계 아동 약 18억명, 전체 아동의 거의 4분의 3은 빈곤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사회보호 체계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다. 기후변화로 인해 2030년까지 1억3000명 이상이 극심한 빈곤에 빠질 것이라는 게 유니세프 측의 설명이다.

2024년 9월 베트남을 강타한 태풍 야기로 인해 무너진 집 위에 13세 소녀 티 투엣 능이 앉아 있다.[유니세프 ‘2026 아동 기후 위험 보고서’ 갈무리]


사정이 이렇다 보니, 향후 기후정책에서도 ‘아동권’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전 세계적인 기후정책은 평균 기온상승 억제, 탄소배출량 감축 등을 중점으로 이뤄진다. 피해 이전의 사전적 대응이 중심인 셈이다. 하지만 기후변화는 자연 재난의 형태로 사회의 취약계층부터 실제 피해를 유발하고 있다. 더 이상 사전적 대응의 시각으로만 바라볼 수 없다는 얘기다.

이에 유니세프는 국제사회에 탄소배출량 감축과 함께 포괄적인 기후변화에 대응하고 재난 위험을 줄일 수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손실과 피해 대응을 통해 아동을 보호하고 아동이 필수적인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니세프는 “사회 서비스의 회복력을 우선시하는 손실 및 피해 대응을 통해 아동을 보호하고, 국가 적응 계획 및 부문별 전략, 재난 위험 관리, 대비 및 대응 계획에 아동과 아동에게 필수적인 서비스가 포함되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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