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부모보다 가난한 자식 될까…청년이 정년 연장에 반대하는 이유

[헤럴드경제=권제인 기자] “정년 연장 법안 통과되면 부모님에게 더 빌붙어 볼까요?” 최근 한 청년에게서 들은 농담이다. 실없는 이야기처럼 들렸지만 웃기 어려웠다. 부모보다 가난한 세대가 될 수 있다는 청년들의 불안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이 65세 정년 연장을 추진하는 가운데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집단도 청년들이다.

취업시장에서는 ‘상흔효과’라는 개념이 있다. 청년층의 구직 기간이 길어질수록 생애 전반의 고용 안정성과 소득 수준이 낮아지는 현상을 뜻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미취업 기간이 3년으로 늘어나면 5년 뒤 상용직으로 근무할 확률이 56.2%로 떨어진다. 미취업 기간이 1년 늘어날 때마다 실질임금은 6.7%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취업에 실패한 청년들은 노동시장 밖으로 밀려나고 있다. 이른바 ‘쉬었음 청년’이다. 한국경영자총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20·30대 쉬었음 인구는 71만7000명으로 통계 작성 이후 가장 많았다. 취업이 늦어질수록 독립은 미뤄지고 자산 형성도 뒤처진다. 청년들의 삶은 자연스럽게 부모 세대에 더 의존하게 된다. 청년들이 정년연장 논의를 민감하게 바라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실제 우려를 뒷받침하는 연구도 있다. 2016년 정년 60세 의무화 당시 고령층 고용이 1명 늘어날 때 청년층 고용은 0.4명에서 최대 1.5명 감소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정년연장의 혜택이 노동조합이 있는 대기업에 집중되면서 청년들이 선호하는 양질의 일자리에서 채용 감소 효과가 더 크게 나타났다.

한국보다 앞서 고령자를 지속 고용하는 방법을 논의했던 일본도 같은 고민을 했었다. 2000년 전후 일본은 IT 버블 붕괴로 청년 실업이 사회문제로 떠올랐다. 동시에 연금 수급 개시 연령이 높아지면서 정년퇴직 이후 고령층의 소득 공백에 대한 우려도 커졌다. 기업들은 청년 고용과 고령자 고용이라는 두 과제를 동시에 떠안아야 했다.

이에 일본은 법정 정년을 일률적으로 늘리는 대신 재고용, 정년연장, 정년폐지 가운데 하나를 선택하도록 했다. 대부분 기업은 재고용 방식을 택했다. 연공급 중심 임금체계를 조정하면서도 고령 근로자의 상황에 따라 근무시간과 업무를 재설계해 고용을 유지하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재정을 투입해 재고용 근로자의 임금 감소분 일부를 보전하기도 했다.

그 결과 일본 후생노동성에 따르면 21인 이상 기업의 99.9%가 65세까지 고령자 고용확보조치를 시행하고 있다. 2020년부터는 70세까지 취업 기회를 확보하는 제도도 도입됐다. 그럼에도 일본의 법정 정년은 여전히 60세다. 일본 정부는 다양한 방식으로 고용을 연장할 수 있다면 법정 정년 자체를 올리지 않아도 사실상 같은 효과를 낼 수 있다고 판단했다.

한국 역시 고령자 고용 연장을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와 있다. 국민연금을 수령할 수 있는 나이는 현재 63세에서 65세로 상향될 예정이다. 문제는 방향이 아니라 방법이다. 단순히 정년만 늘리는 것으로는 사회적 합의를 얻기 어렵다. 임금체계와 근로조건을 함께 손질하고, 청년 고용 위축을 최소화할 장치를 마련해야 한다.

청년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노인이 더 오래 일하는 세상이 아니다. 부모보다 가난해질지 모른다는, 부모에게 짐이 될지 모른다는 불확실한 미래다. 정년연장이 성공하려면 그 불안에 대한 답부터 내놓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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