얄미움도 재능이었네…입만 산 ‘티쪽이’의 대환장 질주 [리뷰]

내달 1일 개봉 ‘마티 슈프림’ 리뷰
티모시표 예측불가 ‘인간 재난’ 코미디
전후 낙관에 숨은 아메리칸 드림의 민낯


영화 ‘마티 슈프림’ [오드(AUD), ㈜마인드마크,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스포츠 영화를 기대했다면 오산이다. 티모시 샬라메가 탁구 라켓을 잡았다고 해서 이 영화를 단순한 ‘탁구 영화’로 분류할 수는 없다. 내달 1일 개봉하는 ‘마티 슈프림’은 오히려 인생 역전을 꿈꾸는 한 철부지 청년의 무모한 질주에 가깝다. 문제는 이 녀석이 꿈을 향해 달리는 속도보다 더 빠르게 스스로 판 구렁텅이로 굴러 떨어진다는 점이다.

영화를 보는 내내 이토록 마음이 바빴던 적이 있었나 싶다. ‘제발 그만해’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이미 사고는 터진 뒤고, ‘이번엔 정신 좀 차렸나?’ 싶으면 어김없이 제 버릇이 튀어나온다. 발전이라곤 없는 허세와 객기, 끝없는 자기 확신. 그렇게 관객은 러닝타임 내내 숨 돌릴 틈도 없이 ‘티쪽이’(티모시+금쪽이)의 뒤를 쫓게 된다. 얄밉고, 황당하고, 정신없는데 이상하게 눈을 뗄 수 없는 대환장 질주. ‘마티 슈프림’은 그런 영화다.

1952년 미국 뉴욕. 마티(티모시 샬라메 분)는 구두 가게에서 남다른 말솜씨를 자랑하는 판매원이다. 가게를 운영하는 삼촌은 그의 재능을 알아보고 관리직을 제안하지만, 탁구 선수인 마티는 영국 오픈에 출전해 세계 정상에 오르겠다며 이를 거절한다. “저는 미국 스포츠계의 전설이 될 거라고요.” 근자감(근거 없는 자신감)에 가득 찬 조카의 말에 삼촌은 비행기 삯조차 내주지 않는다. 결국 마티는 동료 판매원을 총으로 협박해 영국행 비행기에 오른다.

영화 ‘마티 슈프림’ [오드(AUD), ㈜마인드마크,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막상 경기장에선 챔피언을 꿈꾸는 그의 자신감이 허세만은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연승을 거두며 결승까지 올라간 마티는 2차 세계대전 패전국 일본 출신의 엔도와 맞붙는다. 그러나 “우승하려면 잘 쉬어야 한다”며 대회 임원에게 뜯어낸 최고급 호텔이 무색하게도, 그는 엔도의 서브 하나 제대로 받아내지 못한 채 무너진다. 결과는 엔도의 완승. 엔도가 부적격 라켓을 사용했다는 마티의 항의는 관중의 환호 속에 묻혀버리고, 패전국이었던 일본을 단숨에 세계 정상에 올린 엔도는 국민 영웅으로 추앙받는다.

물론 마티는 멈추는 법이 없다. 그는 농구팀 ‘할렘 글로브트로터스’의 하프타임 쇼에서 굴욕적인 탁구 코미디를 선보이며 다음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위한 자금을 모은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자마자 과거 강도 행각을 신고한 삼촌과 경찰에게 돈을 모두 빼앗기고, 쫓기는 신세까지 된다. 당장 그에게 간절한 것은 일본 도쿄에서 열리는 세계선수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한 1500달러와 비행기 삯이다.

결국 그는 친구이자 택시 운전사인 월리(타일러 오콘마 분)에게 도움을 요청한다. ‘탁구 세계 챔피언’이라는 목표만을 바라보며 내달리는 마티의 진짜 광기는 여기서부터 시작이다.

미국의 전설적인 탁구 선수 마티 라이스먼을 모티브로 한 이 영화는 개봉 전부터 작품 밖 이야기로도 화제를 모았다. 중심에는 주연 티모시가 있었다. 특히 영화 홍보 과정에서 “요즘 누가 오페라나 발레에 관심을 갖느냐”는 취지의 발언으로 비판을 받았고, 시상식 시즌에는 자신의 연기와 커리어에 대한 거침없는 자신감을 드러내며 호불호가 갈렸다.

영화 ‘마티 슈프림’ [오드(AUD), ㈜마인드마크,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흥미로운 점은 그런 티모시를 둘러싼 이미지가 극 중 마티와 묘하게 겹쳐 보인다는 것이다. 스스로를 ‘전설’이자 ‘스타 플레이어’라고 믿는 마티의 자기 확신은 “위대함을 추구한다”는 현실 속 티모시의 야심과도 닮았다. 이마저도 할리우드 대세의 계산인지는 모르겠지만, 덕분에 관객은 ‘입만 산’ 마티라는 캐릭터에 별다른 이질감 없이 빠져들게 된다.

여러 논란을 뒤로하고,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티모시의 연기에 있다는 점은 부정하기 힘들다. 극 중 티모시는 마티 그 자체다. 사실 영화의 재미 상당수는 그의 얼굴과 몸을 빌려 폭주하는 마티의 광기와 오만, 허세를 지켜보는 데서 나온다. 열심히 스스로를 궁지로 몰아넣는 거짓말, 마치 돈을 맡겨둔 사람처럼 당당하게 하는 부탁, 현실과는 담을 쌓은 자기 확신까지. 티모시는 이 모든 요소를 한데 욱여넣어 ‘마티’라는 인간 재난을 완성해 낸다. 적어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인생 연기를 했다’는 그의 소감이 근거 없는 자찬처럼 들리지 않는다.

티모시는 마티를 연기하기 위해 6년간 탁구 훈련을 받았다. 영화 속 경기 장면 역시 상당 부분 직접 소화했다. 그럼에도 극 중 탁구 신의 비중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스포츠 영화 특유의 감동적인 승부 서사도 없다. 이는 세계 챔피언을 꿈꾸면서도 정작 훈련보다 비행기 삯과 참가비를 마련하는 데 더 많은 시간을 쏟는 마티의 행적만 봐도 알 수 있다. 감독이 진짜 관심을 갖는 것은 탁구공이 아니라 마티라는 인간 자체와 탁구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그의 인생 여정이다.

영화는 한 번도 예상 가능한 방향으로 흘러가지 않는다. 욕조가 아래층으로 추락하는가 하면, 느닷없이 주유소가 폭발하고, 개를 찾아다니다 엽총 세례를 받기도 한다. 황당한 사건 하나가 끝나면 더 황당한 사건이 이어지고, 그 사건은 또 다른 사고의 도화선이 된다. 마치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차에 올라탄 것처럼 영화는 쉴 틈 없이 앞으로만 질주한다.

영화 ‘마티 슈프림’ [오드(AUD), ㈜마인드마크,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영화 ‘마티 슈프림’ [오드(AUD), ㈜마인드마크, ㈜하이브미디어코프 제공]


이처럼 챔피언을 향한 ‘티쪽이’의 대환장 질주는 갈수록 스케일이 커진다. 재미있는 점은 그전에도, 그 이후에도 마티가 원한 건 결국 대회에 참가할 여비뿐이라는 사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그의 행태에도 마냥 미워할 수 없는 이유는 오직 꿈 하나만 바라보고 달리는 열정 때문이다.

한편으로 이러한 마티의 모습은 전후(戰後) 풍요와 낙관이 넘쳤던 기회의 땅 한가운데서, 출신과 상관없이 누구나 성공할 수 있다는 ‘아메리칸 드림’의 현실을 비추는 것처럼 보인다. 달콤해 보이는 미국식 성공 신화의 이면에는 “자신을 믿으면 돈이 따라온다”는 믿음과, “재능으로 올라가야 성공에 의미가 있다”는 강박에 기대어 버텨야 했던 젊은이들이 있었음을 말이다.

국가는 성장의 무한 열차에 올라탔지만, 정작 세계 챔피언을 꿈꾸는 선수는 제힘으로 비행기 삯을 마련해야 하는 현실 역시 이상의 민낯을 드러낸다. 마티가 오랜 박해의 역사를 지닌 유대인이라는 설정은 그가 성공에 집착하는 이유를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든다.

이런 와중에도 마티는 성장한다. 물론 성장이라는 결과가 과정을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그래서 영화는 후반부에 접어들며 다소 예측 가능한 영역으로 들어서고, 초반의 폭발적인 에너지 역시 조금씩 잦아든다. 하지만 이는 영화 전체에서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엔딩 크레딧과 함께 울려 퍼지는 아기의 울음소리는 끝없이 사고를 치면서도 앞으로 나아간 한 인간의 끈질긴 생명력을 전한다. 정말 끝까지 미워하려야 미워할 수 없는 영화다. 7월 1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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