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싸움 직전까지 갔죠”…서로의 주연이 된 창극단 간판 부부 [인터뷰]

28일까지 국립창극단 ‘효명’
동기이자 부부 이소연 이광복
입단 13년 만에 첫 파트너 주역
“잔소리꾼이자 든든한 서포터”


‘효명’을 통해 입단 이래 처음으로 상대역으로 만난 국립창극단 이소연 이광복 부부(왼쪽부터) [국립극장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부부의 거실은 연습실이자 무대가 됐다. 오후 5시, 퇴근 후에도 연습은 멈추지 않는다. 거실 한쪽에 놓인 소파는 효명세자와 살수 묘묘 사이의 장벽, 맨발로 바닥을 디디며 검무신을 맞추는 부부의 눈이 이글거린다. “그쪽 아니라고!” 부부싸움이라기엔 거창하나, “부부싸움 직전까지 갔다”고 한다.

대사와 소리(창), 칼을 쥔 액션에 현대적 안무까지…. 온갖 장르가 결합한 ‘총제적 예술’을 보여줘야 할 3~4분 남짓의 시퀀스는 국립창극단의 신작 ‘효명’의 하이라이트다. 무대 위에선 서로에게 칼을 겨누는 서슬 퍼런 적대자지만, 무대 아래에선 눈빛만 봐도 통하는 결혼 11주년을 맞은 부부다. 국립창극단의 이소연(42), 이광복(43)이다.

국립창극단 입단 이래 처음이다. 한 작품에서 상대역으로 마주하는 것은 13년 만이라고 한다. 입단 초창기 ‘춘향’에서 이도령과 성춘향을 맡았지만, 파트너는 다른 사람이었다. “경험이 부족한 신인 땐 선배들과 짝을 이뤘다”(이광복)고 한다. 같은 작품을 해도 한 무대에서 선 적이 거의 없다. “한 사람이 퇴장해야 다른 사람이 등장”(이소연)했다. ‘귀토’에선 이름만 부부인 토부(兎父), 토모(兎母)였다. 등장과 동시에 독수리한테 잡아먹힌 토부 이광복이 퇴장한 뒤에야 토모 이소연이 등장했다. “만남과 동시에 사별이랄까요. (웃음)” (이소연)

그래서인지, 부부의 공사는 철저히 구분됐다. 국립극장으로 출근하면 창극단원으로 하루를 불살랐으나, 퇴근 후엔 ‘부부의 삶’이었다. 13년 만에 상대역으로 만난 지금, 지난 두 달여간 두 사람에게 “집과 직장의 경계는 희미했다”고 한다.

첫 공동 주연작은 국립창극단의 신작 ‘효명’이다. ‘문화 군주’를 꿈꾼 조선 23대 왕 순조의 아들 효명세자를 주인공으로 삼아, 궁중정재와 현대무용·검무까지 한 그릇에 담은 대형 프로젝트다. 최근 국립극장에서 만난 이소연 이광복 부부는 ‘효명’을 “시대를 앞서간 MZ 군주 효명이 펼쳐내는 영화 같은 창극”이라고 말했다.

국립창극단 입단 동기였음에도 한 장면에서 마주한 적이 없는 이소연 이광복 부부. ‘귀토’에선 토부, 토모 역할을 맡았으나 이 역시 등장과 퇴장이 엇갈려 한 무대에서 호흡을 맞춘 적은 없다. [국립극장 제공]


박보검 환상 깨고 나올 진짜 ‘효명의 이야기’


“창극단 박보검의 등장?”

이미 ‘효명’을 연기한 국민 배우가 있다. KBS 2TV 드라마 ‘구르미 그린 달빛’의 박보검이다. 같은 인물을 연기하는 만큼 ‘국립창극단의 박보검’으로 불릴 법도 하나, 이광복은 “그러면 큰일 난다”며 손사래를 친다. 아내 이소연은 “‘구르미 그린 달빛’이 아니라 ‘구르미 가린 달빛’이 될 것”이라며 웃었다. 매콤한 폭격에도 이광복은 부인할 생각도 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웃는다. 타격감은 조금도 없는 ‘환상의 티키타카’다.

드라마는 낭만적 세자와 남장여자 로맨스를 중심으로 가져왔지만, 창극에선 조선 후기 세도 정치가 기승을 부릴 때 예술로 ‘새로운 질서’를 만들고자 했던 군주로서의 시선에 주목한다. 이광복은 효명을, 이소연은 가상 인물인 ‘살수’ 묘묘 역을 맡았다. 두 사람은 서로의 목숨을 겨누면서도 검무(공막무)를 통해 정서적으로 동화된다.

작품은 기존 창극과는 결이 다르다. 궁중정재와 현대무용, 검무까지 섞여 그 어느 작품보다 몸을 많이 쓴다. “처음엔 이게 정말 우리가 춰야 하는 춤이 맞나 싶었어요.” 이광복은 대본을 받아 든 첫날, 장면마다 그려진 무용 장면에 깜짝 놀랐다고 했다. 본격적인 연습 시작 2주 전부터 주연 배우(이광복 이소연, 김수인 김우정)들은 소환돼 정재를 따로 배웠다. 빠르고 역동적인 춤과 느리고 정제된 춤이 뒤섞이니 몸은 허둥대고 갈피를 못 잡았다.

이소연은 “소리꾼으로 전통문화에 몸담는 사람들인 만큼, 다른 분야의 전통에 대한 무게감이 컸다”며 “궁중무용을 단시간에 배워 보여주는 것이 창극 배우가 소리를 해온 것처럼 프로 수준으로 할 수가 없는데, 어떻게 우리 식으로 가져갈 수 있을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누구보다 ‘전통의 가치’를 수호하기에 가지게 되는 사명이었다.

궁중 예향과 정재를 재정비해, 예악으로 왕실의 질서를 세우고자 했던 효명의 이상은 창극의 동시대성을 구현하려는 두 사람의 고민과 다르지 않았다.

‘효명’을 통해 입단 이래 처음으로 상대역으로 만난 국립창극단 이소연 이광복 부부(왼쪽부터) [국립극장 제공]


이소연은 “(창극단에서) 전통을 익히고 그것을 우리 식으로 가져오는 과정 자체가 작품과 닮았다”며 “효명 안에서도 ‘무엇이 진짜 전통인가’, ‘어떤 것을 가져가야 하는가’를 두고 계속 논쟁한다. 연습 과정애서도 우리가 가져가야 할 전통은 무엇인지, 우리 식으로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지 고민했다”고 돌아봤다.

길어야 3~4분 분량의 검무는 두 사람이 특히나 공을 들이고 있다. 이광복은 “아무리 연습해도 전문 무용수를 따라갈 수는 없지만 배우로서의 감정과 정서를 춤 안에 녹이려 했다”고 귀띔했다.

20년 전 첫 만남…‘천재형’ 이소연 vs ‘연습벌레’ 이광복


두 사람의 첫 만남은 20년 전으로 시계를 되돌린다. 이미 국악계 안에서 서로의 존재를 알았지만, 무대에서 처음 만난 것은 2006년 국립창극단 ‘15세나 16세 처녀’를 통해서였다. 학생 시절 객원으로 선 무대다. “조용하고 낯가린다”고 느꼈던 첫인상 위로 시간이 겹겹이 쌓였다. 2011년 연인이 됐고, 2013년엔 나란히 국립창극단에 입단했다. 2년 뒤, 마침내 부부가 됐다.

같은 길을 걸으며 오래도록 지켜봐 온 두 사람은 서로를 가장 잘 아는 연출자이자, 둘도 없는 지지자다. 부부이기 전에 ‘동료’로서 바라보는 둘의 시선에 단단한 신뢰와 존경이 바탕한다.

이광복은 아내에 대해 “작품을 보는 폭이 넓은 사람”이라며 “엄청난 잔소리꾼이자 굉장한 서포터”라고 했다. 국립창극단의 간판 여주인공으로 굵직한 작품의 중심을 지켜왔고, 최근엔 뺑덕, 홍길동 등 캐릭터의 변화로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가고 있는 이소연은 남편을 ‘매의 눈’으로 주시한다. 주로 “대사의 방향과 흐름, 상대 배우와의 호흡과 동선, 더 효과적으로 보이는 방법”에 대한 조언을 건넨다고 한다.

이소연이 꼽은 이광복의 인생 캐릭터인 ‘리어’의 에드가 [국립극장 제공]


이소연은 “연기를 하는 사람보다 밖에서 보는 사람에게 더 잘 보이는 것들이 있다”며 “원래 훈수 두는 것이 쉬운 법”이라며 웃었다. 아내의 말에 이광복은 “잔소리 같고 듣기 싫을 때도 있지만, 결국 연습할 땐 소연 씨 말대로 하고 있다”며 웃었다.

사실 두 사람은 성향도 연습 방식도 천지 차이다. 이광복은 작품 준비 기간 동안 대본을 손에서 놓지 않는다. 이소연은 “우직하고 성실하게 꽉꽉 채워가는 사람”이라며 “어떤 역할을 맡으면 믿음직스럽고 충실하게 캐릭터에 도달하도록 자신을 연마한다”고 말했다. 반면 이소연은 자신을 “게으른 편”이라고 고백한다.

하지만 이광복이 보는 동료 이소연은 ‘천재형’ 소리꾼의 전형이다. 그는 “예전엔 제가 되게 영리하고 숙지가 빠른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며 “그런데 집에 가도 노래와 대사를 계속하는 저와 달리 소연씨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데 대본 숙지는 물론 캐릭터까지 완벽하게 입고 있다“며 감탄한다. 이광복은 자신을 “누구보다 많이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반면 이소연은 정반대다. 대본을 붙들고 사는 남편과 달리 그는 연습실에서 관찰한 장면과 동선을 머릿속으로 그린다. 상상을 통한 ‘3D 시뮬레이션’이 이소연의 연습방식이다. 발화하기 전, 장면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큰 그림을 짠다. 연출가 유형의 배우다. 그는 “연습실의 공기와 배우들의 위치, 움직임을 온전히 관찰해야 연기가 나온다”고 했다.

연습 방식이 다르다 보니 당연히 충돌도 있다. 성실한 남편의 열혈 연습은 ‘퇴근 후의 삶’을 주지 않는다. 가까스로 찾은 중간 지대는 ‘데시벨 낮추기’였다. 이소연은 “늘 크게 소리를 해서 뭐라 한 적도 있는데, 열심히 하려는 건데 매번 잔소리할 순 없어 이어폰을 끼거나 소리를 낮추는 등 타협점을 어렵사리 찾았다”며 웃었다.

이광복이 아내 이소연의 ‘인생 캐릭터’로 꼽은 ‘변강쇠 점 찍고 옹녀’ 속 옹녀 [국립극장 제공]


“한 판 재밌게 놀았다”…10년 뒤에도 지금처럼


작품에서 두 사람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예악 정치로 세상을 바꾸려는 이상주의자 효명과 그를 제거하기 위해 궁으로 들어온 살수 묘묘는 적대적 관계에서 종국엔 서로의 세계를 이해하게 된다. 이소연은 “묘묘는 효명 안의 갈등일 수도 있고, 관객의 시선일 수도 있다”며 “ ‘저게 맞는 길인가’ 하고 바라보는 시선을 묘묘가 대신해 주는 것”이라고 했다. ‘묘하고 묘하다’는 이름을 가진 ‘가상의 인물’이나, 묘묘라는 인물은 물론 효명과 효명을 바라보는 시선들을 온전히 이해해야 소화할 수 있는 역할이다.

두 달 넘게 만들어온 작품 속 캐릭터엔 각자의 모습이 투영됐다. 흥미롭게도 부부는 캐릭터 안에서도 서로의 모습을 봤다. 이소연은 효명을 “부드러운데 강단 있는 사람”이라고 했다. “따뜻하지만 자기 의지가 분명해 햇빛으로 옷을 벗게 하는 외유내강형”의 효명은 묵묵히 자기 길을 걷는 이광복과 닮아있다. 이광복에게 묘묘는 “양날의 검 같은 인물이자 차갑지만 진실하고, 강단 있는 사람”이다. “버티고 있는 것 자체에서 힘이 느껴지는” 묘묘는 무대 위에서 강력한 존재감을 발하는 이소연의 판박이다.

부부가 꼽은 서로의 ‘인생 캐릭터’ 역시 이 시선의 연장에 있다. 이광복은 “‘(이소연은) 어떤 옷을 입어도 잘 빨아들이는 배우”이나 “특히 변강쇠 점 찍고 옹녀’를 통해 이소연이라는 창극 배우가 소리꾼으로 더 크게 발돋움했다”고 말했다. 이소연은 ‘리어’에서의 에드가를 남편의 ‘인생 캐릭터’로 꼽았다. “본인이 가장 잘 소화할 수 있고 빛을 발할 수 있는 역할”이자, “이광복의 진지하고 애절한 느낌, 해학적 모습까지 볼 수 있는 작품”이라고 했다.

국립단체의 주역으로 두 사람은 바쁜 날들을 보냈다. “슬럼프를 느낄 겨를도 없이 바빴고”(이소연), 때론 “슬럼프가 찾아오면 일로 극복하던 때”(이광복)도 있었다. 그럼에도 돌아보면 “창극의 부흥기를 함께 이끌어왔다는 것에 자부심을 느낀다”(이광복)고 했다.

함께 걸어가는 길 위에서 두 사람이 바라는 건 거창하지 않다. 10년 뒤에도 그저 지금처럼 “한 판 재밌게 잘 놀았다”(이소연)고 말할 수 있는 날들을 꿈꾼다.

“인생이 늘 좋을 수만은 없잖아요. 오름이 있으면 내림도 있겠죠. 하지만 10년 뒤에도 무대를 지키고 살아간다는 것에 자부심을 품고 행복하게 소리를 하고 있었으면 좋겠어요.” (이광복) “우리 마지막까지 지금보다 더 재밌게 놀아봐요.” (이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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