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광장] 스페이스X와 선거관리위원회


미국에서는 스페이스X가 우주 경제 영토를 확장하며 새로운 문명의 시대를 열고 있다. 거대 재사용 로켓이 일상이 되고 화성 개척마저 현실이 되는 시대다. 반면 같은 시기 대한민국에서는 선거 현장에서 투표용지가 부족해 유권자들이 줄을 서는 사태가 벌어졌다. 누군가는 우주를 향해 날아가고 있는데, 우리는 민주주의의 가장 기초적인 시스템조차 신뢰할 수 있는지 되묻고 있다.

2020년 21대 국회의원이 된 직후 여의도 안팎은 부정선거 논란으로 시끄러웠다. 정보보안 기업을 창업하고 암호학을 전공한 나는 “기술적으로 선거 조작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을 수없이 받았다. 디지털 생태계에서 완벽한 차단이나 절대 안전한 시스템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공격 가능성의 유무가 아니라, 이를 상시적으로 감시·제어·통제할 수 있는 검증 체계의 유무다.

20대 대선 무렵 국민의힘 공명선거·안심투표 추진위원회 대표로 선관위에 보안 점검 자료를 요구했다. 기밀이니 직접 내방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그러나 막상 도착하자 전문 보좌진의 입회조차 차단됐다. 납득하기 어려운 보안 방침에 따라 혼자 수시간 동안 확인한 자료는 단순 점검 항목 목록 수준에 불과했다. 의혹의 중심에 있던 핵심 장비의 구동 메커니즘을 확인하려 했으나 명확한 설명은 들을 수 없었다. 더 참담했던 것은 전체 시스템을 설명할 기술 총괄 책임자조차 보이지 않았다는 점이다. “문제없다”는 말만 반복됐을 뿐, 왜 안전한지에 대한 기술적 증명은 어디에도 없었다.

‘보안은 비밀주의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커커프스의 원칙이 있다. 시스템의 강건함은 설계도를 숨기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공개된 상태에서도 전문가의 끊임없는 검증과 공격을 견뎌낼 때 비로소 증명된다. 만약 필자가 선거관리 책임자였다면 누적된 국민적 불신 앞에서 전문가와 시민사회, 정치권이 참여하는 공개 검증의 장을 열었을 것이다. 신뢰는 독점적 권위로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가시적 데이터로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우려스러운 점은 비단 선관위만이 아니다. 이번 사태는 선거 관리 실패를 넘어 인공지능(AI) 시대 대한민국 거버넌스의 민낯을 드러낸 상징적 사건이다. 국민적 의혹이 반복되는데도 설명하지 못하고, 위기 앞에서 책임 있는 해명보다 조직 방어에 머무르는 모습을 보며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AI 시대에는 금융과 의료, 국방과 행정, 교육과 노동 시장까지 국가를 움직이는 운영체계 자체가 다시 설계된다. 국가 시스템이 인간의 판단을 보조하는 시대를 넘어 인간보다 뛰어난 지능과 공존해야 하는 시대가 다가오고 있다. 국민이 두려워하는 것은 AI가 만들어 가는 새로운 세상을 국가 거버넌스가 따라가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다. 과연 이 거대한 기계문명의 파고를 통제할 국가 리더십은 준비돼 있는가.

수년째 반복되는 선거 시스템에 대한 불신과 이번 사태를 대하는 선관위의 모습을 보며 필자는 데자뷔를 느낀다. 구한말 조선의 리더십 역시 변화하는 세계의 기술 질서를 이해하지 못했고, 새로운 시대를 방어할 거버넌스를 구축하지 못했다. 기술의 진보 속도를 거버넌스가 따라가지 못하는 순간, 국가는 미래를 잃는다.

AI 임진왜란은 기술의 전쟁이 아니다. 준비된 리더십과 준비되지 못한 거버넌스의 전쟁이다. 우리는 지금 미래를 준비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래가 도착한 뒤에야 뒤늦게 준비를 시작할 것인가.

이영 제4대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KAIST 문술미래전략대학원 초빙석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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