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유, 끓이지 않고 걸러낸다” CO2 천만t 감축…KAIST, ‘차세대 분리막’ 개발

- 고동연 교수팀, 상온서 원유 거르는 차세대 분리막 개발 성공
- 증류공정 대비 에너지 31.6%, 이산화탄소 배출량 37.6% 감축


선택층 없이 원유를 거르는 상온 분리막. 스스로 만들어진 나노 통로로 에너지·탄소를 줄인다.[KAIST 제공]


[헤럴드경제=구본혁 기자] 막대한 에너지 손실과 온실가스 배출이 유발되는 기존 정유 공정 패러다임을 획기적으로 바꿀 수 있는 기술이 국내 연구진에 의해 개발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KAIST 생명화학공학과 고동연 교수 연구팀이 원유를 끓이지 않고 값싼 고분자 막만으로 상온에서 정밀하게 걸러 낼 수 있는 차세대 분리막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고 25일 밝혔다.

과기정통부 지원 사업으로 수행된 이번 연구성과는 세계 최고 권위 국제학술지 ‘네이처(Nature)’에 게재됐다.

전 세계 정유 공장은 원유를 끓였다가 식히는 ‘증류’ 방식을 활용하고 있다. 하지만 이 방식은 연간 1100TWh(테라와트시)에 달하는 에너지를 소비하며, 막대한 양의 온실가스를 배출한다. 최근 학계에서는 원유를 끓이지 않고 분리막으로 걸러내기 위한 연구에 주목해 왔다.

이 분리막의 물질을 걸러내는 선택층을 반드시 코팅하는 것이 기본 상식었지만 연구팀은 분리막에 아무런 코팅도 하지 않은 다공성 고분자막에 원유를 그대로 흘려보내는 파격적인 접근을 시도했다. 그 결과 원유 속 무거운 기름 성분들이 스스로 들러붙으며 머리카락 굵기의 5만 분의 1 크기인 2nm 이하의 정교한 미세 통로를 자발적으로 형성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 체에 있는 통로를 통해 가벼운 나프타, 휘발유, 등유 성분만 빠르게 분리됐고 무거운 찌꺼기는 사실상 완전히 걸러졌다. 통상 분리막 표면에 기름 성분이 들러붙는 현상은 성능을 망치는 ‘오염(파울링)’으로 여겨져 왔지만, 연구팀은 이를 역으로 활용해 분리 통로를 만드는 도구로 전환시켰다.

기존 보고된 최고 수준의 원유 분리막 대비 23배나 빠른 분리 속도를 기록했을 뿐만 아니라, 28일간 원유 분리를 지속해도 성능 저하가 없는 뛰어난 안정성을 입증했다.

고동연 KAIST 교수가 차세대 분리막 기술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KAIST 제공]


이 기술의 가장 큰 장점은 막대한 설비 교체 비용 없이 기존 정유 공장의 배관 시스템에 필터 모듈을 추가하는 형태로 즉시 적용이 가능하다는 점이다. 원유를 이 분리막에 통과시켜 나프타, 휘발유 등을 먼저 분리하고 남은 성분만 기존 증류탑에서 증류할 경우, 처음부터 증류하는 경우보다 에너지는 31.6%,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7.6%를 감축할 수 있으며 운영비 또한 36% 절감된다.

이를 국내 정유·석유화학 전반에 확대 적용하면 연간 약 1000만 톤의 온실가스를 감축할 수 있다. 승용차 400만 대가 1년 동안 내뿜는 탄소량과 대등한 수준이다.

또한 원유 분리에 머무르지 않고 폐플라스틱 열분해유 정제, 배터리 용매 회수, 의약품 정제 등 다양한 정밀 화학 공정으로 확장이 가능하여, 그동안 해외 기술에 의존하던 분리 공정을 독자적인 국산 ‘분자 정유’ 플랫폼으로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고동연 교수는 “이번 연구는 분리막이 혼합물과 만나 스스로 최적의 분리 통로를 빚어낸다는 새로운 과학적 원리를 규명해낸 성과”라며 “파일럿 스케일에서 검증을 통해 3~5년 안에 본격 상용화가 가능할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Print Friend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