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 품귀에 보증금 1억 껑충”…세입자들 아파트 버리고 빌라로 향한다

올해 전국 전월세 거래 아파트 7% 줄고 빌라 11% 늘어
토허구역 확대·다주택자 매도 여파…물량 14.5% 급감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 50% 첫 돌파…하반기 주거난 더 심화


서울 용산구 이촌동에서 보이는 반포 아파트 단지의 모습. [헤럴드 DB]


[헤럴드경제=이정환 기자] #. 서울 노원구 중계동에서 전세 만기를 앞둔 직장인 A씨는 최근 인근 연립주택(빌라)으로 이사를 결정했다. 2년 전보다 무려 1억 원 가까이 오른 아파트 전세 보증금을 감당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A씨는 “시중은행의 전세자금대출 문턱마저 높아져 도저히 아파트 재계약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며 “전세사기 우려로 빌라는 기피해왔지만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지니 선택지가 없었다”고 토로했다.

아파트 전월세 시장에서 소외된 임차인들이 대거 비아파트(빌라·다세대 등)로 밀려나는 비자발적 ‘탈(脫) 아파트’ 현상이 본격화하고 있다. 극심한 전세 품귀 속에 보증금이 치솟은 데다, 정부의 전세대출 규제까지 전방위로 압박해오면서 서민층의 주거 하향 이동(다운사이징)이 시작됐다는 분석이 나온다.

5일 국토교통부가 공개한 주택통계를 분석한 결과, 올해 1~5월 전국 주택 전월세 거래량은 총 123만614건으로 전년 동기 대비 2.6% 증가했다.

하지만 주택 유형별로 뜯어보면 확연한 온도 차가 드러난다. 이 기간 전국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총 52만8858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7.2% 감소한 반면 연립·다세대·단독 등 비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70만1756건을 기록하며 전년 동기 대비 11.5% 급증했다.

전세사기 여파로 한때 ‘빌라 포비아(공포증)’ 현상이 극에 달했던 비아파트 시장으로 세입자들이 다시 발길을 돌리고 있는 셈이다.

지역별 수요 이탈도 뚜렷하다.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는 전년 대비 6.5% 감소한 반면, 비아파트 거래는 6.3% 늘었다. 특히 지방의 경우 아파트 전월세는 7.4% 줄어든 반면, 비아파트는 19.1%나 폭증하며 주택 유형 간 양극화가 심화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아파트 전월세 거래 감소의 가장 큰 원인으로 ‘물량 잠김’을 꼽는다. 신축 아파트 입주 물량이 급감한 상황에서 규제 정책이 겹치며 매물이 종적을 감췄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 아파트 입주 물량은 지난해 3만2000가구에서 올해 1만9000가구 수준으로 반토막이 났다. 여기에 지난해 ‘10·15 대책’으로 실거주 의무가 부과되는 토지거래허가구역이 서울 전역으로 확대되면서 신규 임대 물량이 시장에 나올 통로가 사실상 차단됐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이날 기준 서울 아파트 전월세 매물은 3만7551건으로 2년 전(4만3917건)과 비교해 14.5% 감소했다.

자금줄이 막힌 임차인들의 고통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올해 1~5월 서울 아파트 전세 평균 보증금은 6억5875만원으로, 2년 전(5억5377만원) 대비 19.1%(약 1억원)나 급등했다.

2년 만에 전세 계약을 갱신하거나 신규로 집을 구하려는 세입자는 고스란히 1억 원의 목돈을 더 얹어주어야 하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보증금 인상분을 월세로 돌리는 ‘월세화’ 현상도 가속화되고 있다.

서울 아파트 월세 비중은 사상 처음으로 51.3%를 기록하며 50% 선을 돌파했다. 박원갑 KB국민은행 수석부동산전문위원은 “전셋값은 치솟는데 시중은행이 전세대출 문턱을 높이고 1주택자 DSR 규제까지 적용되면서 세입자들이 돈을 빌리기도 어려워졌다”며 “결국 지역·면적·주택유형 등 3가지 측면에서 ‘주거 다운사이징’이 일어나는 공간적 전이 현상이 본격화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문제는 하반기다. 정부가 가계부채 관리를 이유로 전세대출 보증 축소 및 DSR 확대 등 추가 규제를 예고하고 있어 서민들의 주거난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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