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상에서, 혹은 전망대에서…다른 시선이 완성하는 홍콩 야경 [트래블ON]

‘동양의 진주’가 품은 야경의 화려함
전통 돛단배에서 보면 불빛이 물에 번져
피크에선 ‘선택받은 자’들의 풍광 감상


‘스타의 거리’에서 본 홍콩의 야경 [홍콩관광청 제공]


[헤럴드경제=김명상 기자] 홍콩은 밤이 특별한 도시로 유명하다. 야경은 홍콩을 ‘환상의 도시’로 각인시킨 핵심 요소다.

빅토리아 하버를 중심으로 고층 빌딩과 화려한 네온사인이 밤새 불을 밝히는 홍콩은 멋지고 화려한 현대적 도시의 대명사가 됐다. ‘홍콩 간다’는 말이 새롭고 신기한 곳으로 간다는 관용어구로 쓰이는 이유도 바로 홍콩의 야경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처럼 황홀경의 대명사로 자리 잡은 홍콩의 야경은 오늘날에도 ‘동양의 진주’라는 오랜 명성을 증명하고 있다.

붉은 돛단배, 21세기 마천루를 품다


중국 목조 돛배의 형태를 그대로 재현한 아쿠아루나 [홍콩관광청 제공]


해가 지면 빅토리아 하버에 늘어선 빌딩들이 일제히 조명을 밝힌다. 이 야경은 바다 위와 산 위에서 각각 다른 모습으로 다가온다. 침사추이 부두 선착장에는 새빨간 돛을 펼친 배 한 척이 정박해 있다. 과거 홍콩의 어민들이 타던 중국 전통 돛단배인 정크선을 현대적으로 재현한 ‘아쿠아루나’다. 전통 방식과 목재만을 고수해 제작한 이 배가 현대적인 홍콩의 빌딩 숲을 배경으로 운항하는 모습은 독특한 경관을 자아낸다.

배에 탑승하면 분위기는 전환된다. 예스러운(?) 외관과 달리, 내부는 복층 구조의 라운지에 침대형 소파가 마련돼 있어 편안한 분위기다. 승선과 동시에 웰컴 드링크가 제공된다. 음료를 마시며 느긋하게 바다의 흔들림을 즐기는 사이, 배는 부두를 벗어나 45분간의 항해를 시작한다.

아쿠아루나에서 보는 홍콩의 야경 [홍콩관광청 제공]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침사추이와 센트럴을 병풍처럼 둘러싼 초고층 빌딩들의 불빛이 좌우로 스쳐 지나간다. 고층 빌딩에서 흘러나온 불빛은 잔잔한 바다 위에 번지고 반사되며 화려함이 배가된다. 승객들은 반짝이는 빌딩 숲을 지나며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바로 이 순간을 위해 여기에 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다. 수백 년 전 형태의 배를 타고 21세기 마천루의 야경을 바라보는 경험은 꽤나 몽환적이다.

홍콩의 야경을 바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아쿠아루나 [홍콩관광청 제공]


지금까지는 매일 밤 8시에 맞춰 아쿠아루나를 타는 것이 가장 인기였다. 레이저와 음악이 어우러진 ‘심포니 오브 라이트’ 쇼를 선상에서 감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2004년 홍콩관광청의 주관으로 시작된 이 쇼는 기네스 세계기록으로부터 ‘가장 큰 상설 조명 및 음향 쇼’ 타이틀을 획득했을 만큼 홍콩 야경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홍콩관광청은 이 쇼가 역사적 사명을 완수했다고 판단, 올해를 끝으로 22년 만에 막을 내리기로 결정했다. 대신 시즌별·축제별로 장소를 옮겨가며 몰입감을 주는 대형 이벤트를 여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이에 아쿠아루나 탑승객들은 특정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승선해 야경을 즐길 수 있게 됐다.

배가 다시 돌아올 즈음, 부두 위 승객들은 붉은 돛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긴다. 목조 돛단배와 21세기 마천루가 한 프레임 안에 담기는 이 장면은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홍콩만의 독특한 풍경이다.

가파른 25.7도, 착시가 몸을 덮친다


빅토리아 피크로 가는 교통 수단인 ‘피크트램’ [홍콩관광청 제공]


아쿠아루나가 야경이 물에 녹아 흩어지는 경험을 전한다면, 빅토리아 피크는 빌딩 숲 전체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내려다보는 독특한 경험을 선사한다.

홍콩섬에서 가장 높은 해발 552m의 빅토리아 피크로 향하는 길은 탑승객에게 재미난 경험을 선사한다. 산 정상으로 이동하는 ‘피크트램’은 홍콩섬 중심가에서 빅토리아 피크 정상까지 운행하는 교통수단이자 필수 관광 요소다. 1888년 운행 시작 이래 130년이 넘는 역사를 품고 있다는 것도 놀랍다.

출발지는 언제나 인파로 북적이지만, 대기 공간에는 피크트램의 역사를 볼 수 있는 3D 미디어 아트와 역사 전시물들이 설치돼 있어 기다리는 시간도 지루하지 않다.

빅토리아 피크로 가는 교통 수단인 ‘피크트램’ [홍콩관광청 제공]


트램이 출발하면 곧 몸이 뒤로 쏠리는 느낌이 든다. 트램의 경사는 최소 4도에서 최대 25.7도에 이른다. 급경사에 접어드는 순간, 창밖의 초고층 빌딩들이 산 쪽으로 쓰러질 듯이 기울어져 보이는 ‘피크트램 일루전’ 현상이 발생한다.

피크트램 일루전은 일종의 착시 현상으로, 뇌가 산을 오르는 트램 내부를 똑바른 수직 상태로 인식하는 대신 창밖에 똑바로 서 있는 빌딩을 기울어졌다고 착각한다. 이 현상은 밤에 좀 더 뚜렷하게 나타나며 야경 관람의 또 다른 흥미 요소가 되고 있다.

부의 정점, 낭만의 무대가 되다


홍콩의 대표적인 랜드마크인 ‘피크 타워’ [홍콩관광청 제공]


반원 형태의 피크 타워는 쇼핑·미식·엔터테인먼트를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운영 중이다. 그중에서도 밀랍 인형 전시관인 ‘마담 투소 홍콩’은 한국인에게도 인기가 높다. 전 세계 유명 인사들의 모습을 실물과 똑같이 정교하게 재현해 놓은 밀랍 인형을 전시한 곳으로, 방문객들이 마치 실제 스타나 역사적 인물을 만나 함께 사진을 찍는 듯한 경험을 제공한다.

성룡, 이소룡, 장국영 등 홍콩을 대표하는 전설적인 스타들은 물론 데이비드 베컴, 테일러 스위프트, 버락 오바마 등 전 세계 스포츠 스타, 팝스타, 정치인들의 밀랍 인형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다. 한류 스타들을 한데 모아둔 ‘K-웨이브 존’에는 이종석, 수지, 정해인, 임시완, 현빈 등 한국을 대표하는 스타들의 밀랍 인형이 전시돼 눈길을 끈다.

데이비드 베컴의 밀랍인형은 전시한 ‘마담 투소 홍콩’ [김명상 기자]


건물 최상단의 전망대인 ‘스카이 테라스 428’은 야경 감상의 명소 중 명소로 꼽힌다. 이곳에 서면 홍콩 도심 전경이 광활하게 펼쳐진다. 발밑의 센트럴 빌딩 숲을 비롯해 빅토리아 하버와 구룡반도까지 한눈에 조망할 수 있어 ‘세계 3대 야경’이라는 홍콩의 명성이 허언이 아님을 체감할 수 있다.

별이 지상에 쏟아져 내린 듯한 도심의 화려한 빛의 향연은 마치 보석 상자를 열어젖힌 듯한 놀라움을 안겨 준다. 상쾌한 바람을 맞으며 마주하는 압도적인 야경은 홍콩 여행의 정점이라고 해도 부족함이 없다.

‘스카이 테라스 428’에서 사진을 찍는 관광객들 [김명상 기자]


예전에는 이곳에 오르는 것 자체가 특혜였다. 영국 식민지 시절 피크 일대는 시내보다 기온이 5~7도 낮아 쾌적했기 때문에 영국 고위 관료와 부유한 무역상들이 별장을 짓고 거주했다. 1904년부터 1947년까지는 중국인의 거주가 법으로 금지됐을 만큼 선택받은 계층의 공간이었다. 지금도 이곳의 단독 저택들은 매우 높은 가격을 형성하고 있다.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회장이 빅토리아 피크 주변에서 매입한 초호화 저택의 가격은 15억 홍콩달러(한화 약 2926억 원)에 달했다. 이는 면적당 가격 기준으로 세계에서 두 번째로 비싼 수준의 주택 거래로 화제를 모았다.

‘라 바슈’의 간판 [김명상 기자]


특별한 날을 이곳에서 축하하려는 이들의 발길도 꾸준히 이어진다. 피크 타워 내부의 레스토랑 ‘라 바슈(La Vache)’는 야경 감상과 식사를 겸할 수 있는 로맨틱한 공간이다. 창가 좌석 어디에 앉더라도 통창 너머로 펼쳐지는 야경이 분위기를 주도한다.

실제로 기자가 방문한 날에도 한 커플이 프러포즈의 순간을 만끽하고 있었다. 식사가 끝나갈 무렵 남성이 선물을 건네며 청혼하자 맞은 편의 여성이 눈물을 훔치며 고개를 끄덕였다. 환상적인 야경을 품은 빅토리아 피크가 누군가에게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무대가 된다는 사실은, 이 곳이 품은 낭만의 깊이를 잘 보여준다.

‘라 바슈’의 코너 창가석 [라바슈 제공]


물 위와 산 위에서 바라본 홍콩의 야경은 같은 도시를 전혀 다른 결로 비춘다. 두 개의 시선을 모두 눈에 담으려는 여행객의 발걸음이 분주한 이유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늦은 밤임에도 창밖으로 스치는 불빛은 홍콩이라는 거대한 도시가 뿜어내는 숨결처럼 역동적이다. 여행객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이 마천루의 향연은, 시대가 변해도 끊임없이 새로운 황홀경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확신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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