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 - 인간의 선함 뒤 서늘한 진실 ‘더 디너’]도덕성이 묻다, 내 아이가 범죄자라면…

‘또 음식 영화인가?’ 제목만 들었을 땐 ‘먹방’, ‘쿡방’ 유행에 숟가락을 얹는 영화겠거니 싶었죠. 예상은 빗나갑니다. ‘더 디너’(감독 이바노 데 마테오)는 서로 다른 신념의 두 형제가 예기치 못한 사건을 겪은 뒤, 각자의 신념을 어떻게 배반하게 되는 지를 그린 심리극입니다. 물론 저녁식사 장면이 몇 차례 나오긴 합니다. 형제 부부의 모임에선 석탄을 활용한 에피타이저가 등장하는데, 실은 인물들의 미묘한 갈등을 드러내는 장치입니다. 집에선 랍스터 파스타가 저녁 메뉴로 오르고, 가족들은 한 식탁이 아닌 각자의 공간에서 식사를 합니다. 화목한 가정치곤 이상한 풍경이다 싶었는데, 돌이켜보면 이들에게 들이닥칠 비극의 전조였던 모양입니다. 

변호사인 형 ‘마시모’와 소아과 의사인 동생 ‘파올로’는 형제라고 하기엔 너무도 다릅니다. 형이 냉정하고 속물적이라면, 동생은 온화하고 양심적이죠. 평온한 일상을 보내던 이들에게 어느 날 뜻 밖의 일이 벌어집니다. 마시모의 딸 ‘베니’와 파올로의 아들 ‘미켈레’가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 것입니다. 평소대로 자신의 권력을 이용해 사건을 무마하려던 마시모는, 베니의 반성없는 태도를 보며 자괴감에 빠집니다. 반대로 파올로는 미켈레의 범행에 격분하지만, 막상 아들을 신념대로 벌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아이들의 범죄 행각이 만천하에 드러난 상황이라면 고민할 것도 없겠죠. 영화가 던져놓은 딜레마는 나 하나만 눈 감으면 자식의 범행을 덮을 수 있는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과연 자신있게 도덕적인 선택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극 중 인물들의 갈등을 지켜보며, 관객들 역시 ‘나라면 어떤 선택을 할까’ 고민에 빠질 수 밖에 없습니다. 극단의 입장을 취하는 형과 동생, 어느 쪽도 쉽게 비난할 수가 없죠. 이처럼 영화는 인간이 실제로 도덕적인 딜레마에 놓였을 때, 신념대로 행동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지를 깨닫게 합니다. 


아울러 ‘더 디너’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사랑이 어떤 방식이여야 하는지 질문을 던집니다. 만일 자신에게 닥친 상황이었다면 파올로는 양심적인 선택을 했을 지 모릅니다. 하지만 자신의 소신 만을 따르다간 아들이 평생 범죄자 낙인을 찍은 채 살 수도 있다는 생각에 괴로워하죠. 마시모 역시 자식의 일이 아니었다면 이번에도 수단 방법 가리지 않고 실속을 챙겼을 것입니다. 이번엔 자식의 죄를 덮어주는 것이 아이를 괴물로 만들 수도 있겠다는 위기감에 휩싸이고, 결국 아이들이 자수할 것을 주장합니다. 두 형제의 입장 차는 좁혀지지 않고, 이들의 갈등은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됩니다. 유리 한 귀퉁이에 금이 가면 금세 두 동강이 나는 것처럼, 형제의 욕망과 가치관 차이로 생긴 균열은 끝내 이들의 관계를 산산조각내죠. 강렬한 엔딩에 마음이 무거워져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었습니다. ‘더 디너’는 인간이 입으로 떠드는 신념이 얼마나 연약한 지를 보여주는, 서늘하고도 황량한 드라마입니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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