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 그 사람] ‘진짜’를 연기하고 싶은 배우, 김민재

[헤럴드경제=이혜미 기자] “전 작품 안에 놓여져 있을 뿐이예요. 그 안에서 제가 해야 하는 역할이나 위치를 잘 파악하려고 하죠.”

지난 5월 영화 ‘무뢰한’(감독 오승욱)을 보고 김민재(36)를 만나고 싶었다. 그가 연기한 ‘민영기’의 잔상이 오래 남았던 탓이다. 민영기는 진흙탕같은 현실 맨 밑바닥에서 뒹구는 여자 김혜경(전도연 분)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인물이다. 혜경의 단란주점을 찾아가 그녀를 협박하는 장면, 그가 나즈막히 읊조리는 거친 말들은 묘한 리듬감과 함께 긴장감을 일으킨다. 눈에 힘 주고 소리를 내지르는 것도 아닌데 위협적이다. 돋보이려고 애쓰지 않는데도 이상하게 그에게 시선이 갔다. 


마침 개봉을 앞둔 두 편의 영화에 참여했다는 근황을 구실(?)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류승완 감독의 새 영화 ‘베테랑’에선 많은 분량은 아니지만 비리 경찰 역으로 얼굴을 비춘다. 곧이어 개봉하는 ‘뷰티 인사이드’에선 김대명, 박서준, 이범수, 유연석, 배성우 등과 함께 날마다 얼굴이 바뀌는 주인공 ‘우진’을 연기했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그는, ‘무뢰한’에서의 연기가 인상적이었다는 말을 건네자 쑥스러운 듯 손사래를 쳤다.

“사실 연기에 대한 칭찬을 들으면 엄청 작아져요. 내가 ‘진짜’를 표현했다기 보다, 알고있는 것에서 흉내만 낸 느낌이 들거든요. 캐릭터에 창의성있게 생명력을 부여했는지, 관습적으로 머리로만 접근하려고 한 건 아닌지 반성하게 돼요.”

영화 `무뢰한`의 한 장면 [제공=사나이픽쳐스]

배우들의 무르익은 연기, 기존 영화와는 결이 다른 멜로라는 강점에도 ‘무뢰한’은 상업적인 성공을 거두진 못했다. 흥행 실패가 아쉽지 않은 배우는 없다. 동료들과 스태프들이 고생해서 찍은 영화를 더 많은 관객들이 봤으면 하는 건 당연하다. 더 많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릴 수 있다는 점에서, 흥행은 개인의 입장에서도 욕심낼 만한 목표다.

다만 김민재는 예상을 비껴난 대답을 내놨다. 그는 “이 작품으로 제가 잘 되고 안 되고는 생각할 수도 없다”고 선을 그었다. 대신 그는 ‘이 작품이 우리가 생각했던 방향대로 완성됐는지’, ‘작품으로 인해 우리에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되짚어본다고 말했다. 그렇게 그는 작품의 목표나 성취에 대한 답변에서 ‘나’보다는 ‘우리’라는 표현을 즐겨 썼다. 그건 아마 김민재가 자신에게 시선이 쏟아질 때보다, 작품 안에서 동료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순간을 더 즐기기 때문일 것이다.

대구에서 연극 무대에 섰던 김민재는 좋아하는 일을 더 잘 하고 싶어서 서울로 향했다. 20대 시절 우연히 본 영화 ‘오아시스’(2002)가 그의 인생을 뒤흔들었다. 영화는 보는 내내 그를 불편하게 했지만, 극 중의 불편한 주변 인물들이 나와 다르지 않다는 생각에 이르렀다. 지금까지 주변을 돌아볼 생각조차 하지 못했는데, 타인의 문제가 결국엔 내 문제로 연결된다는 깨달음을 얻기도 했다. 이창동 감독을 무작정 찾아간 그는, 작은 역할이든 연출부 일이든 뭐든 함께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밀양’(2007)의 단역을 시작으로 그의 영화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살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한 것 같아요. 제가 아버지처럼 생각하는 두 분이 이상우 연극 연출가 선생님, 그리고 이창동 감독님이예요. 제가 어렵고 보잘 것 없을 때 아껴주셨죠. 그 분들이 제게서 대단한 걸 발견한 게 아니라, 정말 작은 부분을 좋게 보신 것 같아요. 제가 뭐 하나 작은 것을 받더라도 굉장히 감사하게,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런 건 있거든요.”

사진=영화 `뷰티 인사이드`의 한 장면 [제공=NEW]

최근 몇 년 간 김민재가 쌓아온 필모그래피를 훑다보면 숨이 찰 정도다. 작년 한 해만 ‘역린’, ‘우는 남자’, ‘국제시장’ 등 5편에 출연했다. 물론 아직까진 그의 이름을 검색해 본 뒤에야 ‘아, 이 사람!’ 하고 고개를 끄덕이는 이들이 더 많을 지 모른다. 충무로 씬 스틸러에서 주연급 배우로 성장한 동료들을 보면 조급한 마음이 들진 않을까. 그는 “예전엔 다른 사람들과 비교하면서 예민해졌던 때가 있었다. 이기고 싶은 욕망도 생기고 질투도 생겼는데, 점점 그런게 사라지는 것 같다“며 ”그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계속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아는 동생이 그런 말을 하더라고요. 현실에서 도망가려고 하지 말고, 지옥에서 같이 희망을 찾자고. 실은 모든 게 서로 사랑하면 되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작품이 끝나면 서로 보고 싶어야 하는데, 안 보고 싶다면 문제가 있는 거잖아요. 진짜로 작품과 역할에 애정 쏟지 않은 이상, 마음이 아닌 머리로 접근하는 데 그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정성을 들이지 않는데 어떻게 화분에 꽃이 피겠어요. 그렇죠?”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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