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이은지 기자] 무려 8년이다. 엄마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1인 2역을 해온 시간이다. 다큐멘터리 감독 아슬레우 홀름(Aslaug HOLM)은 8년 동안 자신의 두 아들 마르쿠스와 루카스를 필름에 담았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다큐멘터리 감독으로서 저한테 많은 영감을 준 작품이에요. 큰 상도 받긴 했지만, 한국에서 상영하게 돼서 더욱 기쁩니다.”
완성된 106분의 결과물은 ‘2016 EIDF(EBS 국제 다큐멘터리 영화제, EBS International Documentary Festival)’의 개막식을 빛냈다. EIDF의 개막작 ‘브라더스(Brothers)’다.
[사진=EBS 제공] |
지난 23일 서울 광화문의 한 호텔에서 ‘브라더스’ 감독 아슬레우 홀름을 만났다.
아슬레우 홀름은 노르웨이에서 인정받는 다큐멘터리 감독 중 하나로, 부산국제영화제 상영작이자 노르웨이 흥행 신기록을 세운 다큐멘터리 ‘쿨 앤 크레이지’(2001)를 제작했다. 이번 EIDF 개막작 ‘브라더스’는 올해 ‘핫독스영화제’ 최우수국제다큐멘터리상을 수상, 이 작품으로 노르웨이 국내 개봉작을 대상으로 한 ‘아만다 영화상’ 최우수 감독상의 영광을 안았다.
‘브라더스’는 두 아이들의 성장 과정을 통해 아이들의 꿈과 희망, 사춘기와 더불어 인간 본성에 대한 고찰을 담았다.
“처음에 시작할때는 단순히 아이들이 잠자리에 들기 전에 하는 이야기를 담았는데 점차 철학적이고 본질적인 질문이 나왔어요. 아이들이 던지는 질문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또 그 생각들이 시간이 흘러가면서 변하더라고요. 우리 아이들이 이렇게 철학적인 줄 몰랐어요.”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이뿐만이 아니었다. 그건 “존중”이었다. “아이들 학교에 카메라를 들고 갔는데 아들이 왜 동의를 구하지 않느냐고 했어요. 그때 놀랐던 것 같아요. 아이들이 제 주인공이니까 그들에 대한 존중이 있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던 거죠. 감독뿐 아니라 엄마로서 선을 넘어선 안 될 부분이 있다는 걸 배웠어요. 아이들이 여자를 만나러 가거나 파티에 가는 것까지 따라갈 순 없는 거니까요. 아이들의 개인적인 공간과 시간을 확보해 주는 게 중요하다는 걸 알았죠.”
이는 “카메라 뒤에서 더 좋은 엄마였던 것 같다”고 말한 이유이기도 하다. 그녀는 덕분에 아이들의 독립적인 활동을 더 지원해 줄 수 있었다고 말한다. “엄마로서만 있었다면 아이에게 더 집착하고 더 영향을 미치려 했을 것 같아요. 감독으로 거리를 유지하다 보니 아이들의 결정에 덜 개입하면서도 아이들이 무엇을 고민하고 어떤 상황에 처했는지를 알게 됐죠. 아이들은 좋았을 것 같은데요? (웃음) 각자 꿈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독립적으로 생각할 수 있었으니까요.”
이러한 ‘존중’은 영화에서도 그대로 드러났다. 감독 혹은 엄마의 시각으로부터 아이들을 독립시켰다. 카메라는 늘 아이들의 눈높이를 넘어서지 않았다. 카메라만 켜 놓고 자리를 비운 적도 많았다. “아이들을 제가 아래로 바라보면서 관찰하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관점을 가지고 발전하고 변화하는 주체로 보여주고 싶었어요. 저는 이 영화에서 과거의 목소리를 내는 사람이고, 그다음에 내용을 이끌어 가는 건 아이들이라고 생각했어요.”
감독이기 이전에 엄마였기에 어려움도 없지 않았다. “엄마로 있을 것인가, 감독으로 있을 것인가”하는 ‘딜레마’였다. “아이들도 엄마의 직업이 다큐멘터리 감독이라는 걸 알았지만, 막상 촬영은 달랐어요. 엄마와 감독 사이에 선택의 순간들이 매번 찾아왔죠. 아이들이 세상 밖을 나와서 어려움과 마주했을 때 엄마라면 일으켜 세워줘야 하고, 감독이라면 이를 그냥 지켜봐야 하기 때문이죠. 그런 딜레마를 모두 담아내려 했어요.”
8년 새 모자(母子) 관계도 이전과는 분명 달라졌다. “힘의 관계로 설명한다면, 전에는 엄마인 제가 아이들을 도와주고 영향을 미쳤다면 이제는 그 힘의 균형이 맞춰졌다는 생각이 들어요. 이 영화를 통해서 저도 아이들에게 영향을 많이 받았으니까요.”
영화를 찍은 뒤 아들 루카스는 소극적인 성격에서 적극적인 성격으로 바뀌었다. “자신감이 없고 개인적인 아이라서 그룹 활동을 잘 못했는데 자신감도 생겼고 친구들과 함께하는 단체활동에도 적극적으로 변했어요. 지금은 축구에 푹 빠져 있어요. (웃음)”
다음 작품의 주인공은 누구일까. “휴가 가서 아이들을 찍으려고 카메라를 꺼내니 다들 이젠 그만 하라고 손사래를 치더라고요. 가족을 찍는 건 그만해야 할 것 같아요.” 그래도 “가족” 이야기를 하고 싶다고 했다. “장편영화와 픽션 영화에서 배우와 작업을 하는 걸 도전해보고 싶어요. 다큐멘터리를 했던 경험이 픽션 영화에 어떻게 영향을 미칠지 궁금하기도 하고, 펀딩(Funding)을 받은 것도 있고요. 제 다음 작품은 가족에 대한 픽션 영화가 되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