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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안효정 기자] 정부의 2025학년도 의과대학 정원 증원 규모 발표가 임박해지면서 정부와 의료계 사이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의료계는 ‘총파업’을 언급하면서 과거 약속대로 의대 증원 협의에 의료계가 참가해야 한다면서 ‘끝장토론’을 제안했고, 정부는 최소 1000명 이상의 의대 정원 증원을 발표할 태세다.
31일 보건복지부와 의료계 등에 따르면 정부는 이르면 2월 1일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 발표와 함께 2000명 안팎의 의대 증원 계획을 내놓을 것으로 알려졌다. 복지부와 의협은 지난해 1월부터 지난 24일까지 총 26차례에 걸쳐 의료현안협의체 회의를 열고 있다. 하지만 정부는 증원을, 의협을 비롯한 의료계는 불가 입장을 고수하면서 이들의 입장 차이는 좁혀지지 않고 있다.
지난해 12월 보건의료노조가 발표한 국민 여론조사에서 대부분의 응답자(89.3%)가 의대 증원에 찬성했음에도 이처럼 정부와 의료계의 갈등이 여전한 이유를 쟁점 중심으로 살펴봤다.
▶의대 정원 ‘얼마나 늘릴 것인가’=의대 정원 확대 논의의 핵심은 증원 규모다. 현재 의대 정원은 3058명이다. 이는 2000년 의약분업의 결과물로, 18년째 유지되고 있다.
장기간 고정됐던 의대 정원에 논란의 불이 붙기 시작한 건 코로나19였다. 2020년 펜데믹을 계기로 전 국민이 의료 인력 부족을 체감하면 의대 정원 확대 논의가 시작된 것이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중증·필수진료과목 의사 양성 계획과 공공의대 등을 검토했지만 의료계 총파업이 일면서 논의가 중단됐다. 대신 정부와 의료계는 ‘9·4 의정 합의’를 맺었고 코로나가 잠잠해지면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1월 복지부와 의협이 의료현안협의체를 재개했지만 아직까지 의대 정원을 얼마나 늘려야하는 것인지에 대한 합의점은 찾지 못한 상황이다.
우선 정부는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입장이다. 복지부가 분석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보건통계 2022’에 따르면 2020년 기준 한국의 인구 1000명당 임상의사 수는 2.5명으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평균(3.7명)보다 적다. 또 복지부가 의뢰해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이 진행한 ‘전문과목별 의사 인력 수급 추계 연구 보고서(2021년)’에서는 국내 의사 1인당 업무량이 2019년 수준으로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2030년 1만4334명, 2035년 2만7232명의 의사 공급 부족이 발생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반면 의료계는 의사 수는 현재로도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한국 의사 수는 매년 3000명 이상 증가하고 있는 데다 의사의 대다수가 55세 미만(2021년 기준 77%)이라, 향후 20년 활동 인력이 충분하다는 것이다(대한의사협회지 ‘의사인력관리 어떻게 할 것인가’, 이혜연, 2017년)
의협은 활동 의사 수가 아닌 ‘활동 의사 증가율’을 봐야 한다고 반박하기도 했다. 우봉식 의협 의료정책연구원장은 지난해 6월 국회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는 한국이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지만, 2010~2020년 한국의 활동 의사 연평균 증가율은 2.84%로 OECD 평균(2.19%)을 앞지른다”고 말했다. 우 원장은 또 “현행 인력 양성 구조를 유지해도 2047년 한국의 인구 1000명당 활동 의사 수(5.87명)는 OECD 평균(5.82명)을 넘어선다”고 덧붙였다.
▶의사 수 ‘어떻게 늘릴 것인가’= 두번째 쟁점은 ‘방법론’이다. 의대 정원 확대를 반대하는 의료계 역시 필수·지역의료에 의사가 부족한 현실은 공감하고 있다. 하지만 의대 정원을 늘린다고 해도 필수·지역의료 확충에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실제 국내 의사들의 특정 인기과 쏠림은 오래된 문제다. 젊은 의사일수록 ‘피안성(피부과·안과·성형외과)’과 ‘정재영(정신건강의학과·재활의학과·영상의학과)’ 전공을 선택하는 경향이 높다. 이 때문에 의료계는 의사 수를 늘리기 전에 필수·지역의료 분야 기피 현상이 왜 나타나는지 그 원인을 파악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이 먼저라고 강조한다. ‘현재의 의대 정원 내에서’ 의사를 비인기 전공이나 지방으로 유인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정부는 “의사 공급을 늘려야 필수·지역의료 분야 인력난도 해결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의대 정원을 늘리는 동시에 필수·지역의료 인프라 확충, 보상체계 개선 방안도 발표하겠다고 했다.
같은 선상에서 복지부는 ‘필수의료 정책 패키지’를 2월 1일 발표하는데, 여기엔 지역 국립대병원 등을 거점화해 수도권 ‘빅5 병원’ 쏠림을 완화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또 지역 공공병원 강화에 3000억원 이상을 투입함으로써 지역의료에 활기를 불어넣겠다는 계획과 필수의료 분야에 대한 보험 수가를 파격적으로 인상하고 인프라를 개선해 ‘응급실 뺑뺑이’를 줄이겠다는 등의 계획도 들어있다.
▶의학교육 둘러싼 정부-의료계 신경전도=이 외에도 의학 교육을 주제로 정부와 의료계의 신경전도 있었다.
복지부는 의대 정원 확대에 대응해 의대생과 전공의의 교육환경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지난 24일 제26차 의료현안협의체회의에서 정경실 복지부 보건의료정책관은 “단기간에 의대 정원을 대폭 늘릴 경우 의학 교육의 질이 떨어질 수 있다는 일선의 우려를 잘 알고 있다”며 “이를 감안해 학교 측이 수요에 맞는 교수 확보와 시설 실습 여건을 갖추기 위한 투자계획 등을 실현할 수 있는지 2개월간 검증했다”고 말했다. 앞서 복지부는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현재 확보된 재원으로 증원 가능한 규모와 투자 계획을 반영한 최대 수요를 조사한 바 있다.
의료계는 “정부가 의학교육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모른다”며 의대 정원이 늘어날 경우 의학교육의 질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맞섰다. 같은 날 의료현안협의체회의에 참석한 양동호 의협 협상단장(광주광역시의사회 대의원회 의장)은 “의학교육은 강의실에 의자 몇 개 더 갖다 놓는다고 해결되는 문제가 아니다”고 정부를 비판했다.
이어 양 단장은 “의학교육은 수많은 기초학 교수와 임상교수, 강의실, 기자재, 해부용 시신, 수련병원 등 막대한 자원이 투입돼야 할 큰 사업”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정부는 의대 정원 확대 문제를 의사 단체와 반드시 협의해야만 하는 것은 아니라고 밝혔다. 국가 정책을 추진할 때 특정 단체와 반드시 합의를 이뤄야 한다는 법적 근거가 있지 않은 데다 의료현안협의체를 통해 26차례의 회의를 거치는 등 오랫동안 의료계 의견을 수렴했다는 것이 정부의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