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도 폭염에 성지순례 1000여명 사망…“우리 탓 아냐” 발뺌한 사우디

지난 16일(현지시간) 이슬람 최고 성지인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 미나에 정기 성지순례 인파가 몰려 있다. 이날 메카 일대에서는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폭염으로 성지 순례객 최소 31명이 숨진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

[헤럴드경제=정윤희 기자]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성지순례(하지) 기간 1100명 이상이 숨진 것으로 확인된 가운데 사우디 정부가 자국의 책임이 아니라는 입장을 내놨다.

21일(현지시간) AFP 통신에 따르면 사우디 고위 관료는 성지순례 사태와 관련해 “국가가 (관리 책임에) 실패하지 않았지만 위험을 간과한 일부 사람들의 오판이 있었다”며 “극심한 폭염과 힘겨운 기상 조건에서 발생한 사태”라고 했다.

사우디 정부가 성지순례 사태 이후 입장을 내놓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AFP에 따르면 올해 성지순례 기간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 등으로 지금까지 1126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사망자 수를 1170명 이상으로 추산하고 있다. 이는 2015년 성지순례 기간 압사 사고로 2000명 이상이 숨진 이후 가장 많은 수치다.

사망자 가운데 절반 이상은 이집트 국적이며 미국인도 다수 포함돼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온열질환으로 입원한 사람이나 실종된 사람이 수백명이 넘는 상황이어서 사망자 수는 더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피해가 이처럼 컸던 것은 올해 성지순례 기간 대낮 온도가 52도까지 오르는 불볕더위가 이어진 데다 허가 받지 않은 순례자들이 몰려들었고, 이들은 냉방시설 등을 제대로 이용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외신은 지적했다.

매년 이슬람력 12월 7∼12일에 치러지는 성지순례는 무슬림이 반드시 행해야 하는 5대 의무 중 하나다.

무슬림들은 일생에 반드시 한번은 메카와 메디나를 찾아 성지순례를 해야 하는데, 사우디 당국은 국가별 할당제를 통해 인원을 제한하고 있다. 그 때문에 관광비자 등을 통해 사우디에 입국한 뒤 허가를 받지 않은 상태에서 성지순례를 시도하는 인원도 늘고 있다.

사우디 당국에 따르면 올해는 180만여명이 허가를 받고 메카를 찾았지만, 비공식 순례자 수도 40만명에 달한 것으로 전해진다.

사우디 당국은 현장에서 허가받지 않은 인원의 순례도 허용했지만, 이들에게는 에어컨 등 더위를 견딜 시설 등이 제공되지 않았다. 여기에 유일한 교통수단인 순례 버스 이용도 금지되면서 뙤약볕에 수 ㎞를 걸어 이동해야 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AFP는 이집트인 사망자가 658명으로 확인됐는데 이 가운데 630명이 허가받지 않은 순례자였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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