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군이 학교폭력으로 팔을 다쳤다고 주장하며 찍은 사진(좌), A군으로부터 가해자로 신고당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학교 앞에서 '허위신고를 그만하라'며 집회를 하는 모습(우)[KBS '추적60분' 캡처] |
[헤럴드경제=김성훈 기자]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초등학교에서 6학년 학생이 1년 6개월 동안 같은 반 친구 23명을 학교폭력(학폭)으로 신고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마련된 제도를 악용해 사소한 갈등까지 무분별하게 신고를 하고, 심지어 상대방을 괴롭히거나 금전을 뜯어낼 목적으로 허위 신고를 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최근 남양주의 한 초등학교에서는 6학년 A 군이 같은 반 친구 23명을 학교폭력으로 신고해 논란이다. 반 친구들이 A 군을 집단 따돌림 하는 상황이 아님에도 23명이 각기 다른 이유로 학교폭력 신고를 당한 것이다. 여러 차례 신고를 당한 학생도 다수였다.
11일 방송된 KBS '추적60분'과 지난달 방송된 MBC '실화탐사대'에 따르면, 한 학생은 학교에서 계단을 걷다가 갑자기 다른 친구들과 함께 A 군을 폭행했다는 등의 구실로 9번이나 신고당했고, 다른 학생은 칼로 위협했다는 구실, 또 다른 학생은 손가락 욕을 했다는 구실로 신고당했다. 조롱하는 눈빛으로 쳐다봤다는 등의 구실로 6번 신고당한 학생도 있었고, '가위를 챙겨야지'라 말하며 째려봤다는 등의 구실로 3번 신고당한 학생도 있었다.
그 같은 일들이 실제 있었는지는 확인되지 않는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은 그 같은 사실 자체가 없다고 반박했다. A 군이 제대로 된 증거나 목격자를 제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A 군이 주장하는 내용이 당시 주변 정황이나 알리바이와도 맞지 않고, 심지어 A 군이 증거를 꾸며내 일방적으로 허위 사실을 주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학폭으로 신고당한 한 학생의 모친은 "쳐다봤다고 신고하고 '야' 했다고 신고하고, '어' 대답했다고 신고하고, 옷깃만 스쳐도, 눈만 마주치면 신고하는 거다"라고 토로했다.
실제 A 군이 신고한 50여건 중 1건만 교육청으로부터 '서면 사과' 조치를 받았을 뿐, 나머지는 모두 '조치 없음'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A 군이 이처럼 무차별적인 학폭 신고를 한 배후에는 A 군의 부친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된다. 그가 A 군에게 허위 주장을 하도록 강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A 군 측이 어린이 보험에 가입해 '학교폭력 위로 보험금'을 타냈다는 사실이 주목받고 있다. 타낸 보험금은 50만원씩 5~6차례로 알려졌다. 학폭이 실제 있었는지와 상관없이 학폭을 신고해 학교폭력심의위원회(학폭위)만 열려도 보험금이 지급되기 때문에 허위 신고를 남발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가해자로 지목된 학생들의 부모들은 학교 측의 미온적인 대응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한 학부모는 "처음부터 A 군이 허황된 이야기를 할 때 잘 지도했으면 여기까지 오지 않았을텐데 '내가 신고하니까 아이들이 벌을 받네, 내가 원하는 대로 되네' 그래서 막 휘두르는 거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교육지원청과 학교 측은 법적으로 허위 신고를 걸러낼 권한이 없다고 하소연하고 있다. 학폭 신고가 접수됐을 때 중간에서 중재를 하려들면 자칫 '사건을 축소·은폐하려 드는 거냐', '가해자 편드는 거냐'는 누명을 쓸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 A 군의 5학년 담임 교사의 경우 A 군 학폭 신고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A 군 측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았다며 아동학대로 신고당했고, 이로 인한 우울증과 공황장애로 현재 병가를 낸 상황이라 알려졌다.
법원은 최근 A 군을 부친과 분리하는 임시보호조치를 내렸다. 학폭 신고 남발 등 정서적 아동학대가 의심된다는 것이다.
A 군에게 학교폭력 가해자로 신고당한 학생들의 학부모들이 모여 있다. [KBS '추적60분' 캡처] |
무분별한 학폭 신고는 A 군의 사례만이 아니었다. 학교폭력을 근절하겠다며 2004년 '학교폭력예방 및 대책에 관한 법률'을 도입한 이후, 학폭 신고는 상대방을 괴롭히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추적60분'에 따르면, 8살 짜리 초등학생 딸을 둔 B 씨는 지난해 학부모 단체채팅방에서 다른 학부모와 대화를 하다가 사소한 문제로 짧은 언쟁을 벌였는데, 상대 학부모가 돌연 "'더 글로리'(학폭 드라마)처럼 복수해야겠다. 학폭을 걸어야겠다"라더니 실제로 B 씨의 딸을 학폭으로 신고했다고 한다. B 씨의 딸이 "걔랑 놀지 말고 나랑 놀자"라고 말하거나 무표정한 얼굴을 한 것이 학교폭력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B 씨는 딸의 누명을 벗겨주기 위해 1500만원을 들여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두 달간 학폭위 준비에 시달려야 했는데, 정작 학폭위가 열리기 하루 전날 상대 학부모 측은 일방적으로 학폭 신고를 취소했다고 한다. 그런 뒤 상대 학부모는 '쟤(B 씨 딸)가 학폭 가해자인데, 우리가 용서해주기로 했어'라는 말을 주변에 퍼뜨리고 다녔다고 한다. B 씨는 누명은 누명대로 쓴 채 변호사 선임비 1500만원만 날린 셈이 됐다.
그러나 학부모 입장에서는 허위 신고를 당하더라도 '우리 아이는 결백하다'며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상황이다. 단순한 갈등으로 기분 나쁜 것까지 학폭으로 광범위하게 인정해주는 현실 속에서 제 아무리 허위 신고라도 상대 측에서 학폭 전문 변호사를 선임해 꼬투리를 잡으려 들면 얼마든지 학폭 가해자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는 것이다. 학폭이 인정돼 생활기록부에 남게 되면 추후 대학 진학 등에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 이에 학부모들은 적게는 수백만원 많게는 수천만원의 변호사 선임비를 들여 학폭위에 대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분쟁이 학폭위에서 끝나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행정심판과 소송으로까지 가면 1·2·3심 올라갈 때마다 변호사비가 더 들어간다.
전문가들은 현재의 학교폭력예방법이 정하는 학교폭력의 범위가 지나치게 광범위하며, 단순한 갈등까지 가해자와 피해자가 화해할 기회 없이 둘을 분리하고, 가해자에게 엄벌을 내리는 식의 대책에만 한정돼 있다고 지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