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 [로이터] |
[헤럴드경제=유혜림 기자] 인공지능(AI) 칩 선두 주자 엔비디아가 시장 예상치를 뛰어넘는 3분기 실적을 내놨다. 시장조사업체 LSEG 등 월가가 예상했던 매출(331억6000만달러)을 웃돌았다. 심지어 4분기 매출은 이보다도 높은 375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럼에도 시장은 ‘성에 차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실적 발표 직후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5% 가까이 빠졌다가 ‘블랙웰 출하 계획’에 가까스로 낙폭을 줄었다. 전문가들은 “엔비디아가 한껏 높아진 기대감을 뛰어넘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당분간 국내 증시에도 하방 압력이 커질 것으로 전망했다.
▶“호실적에도 약세…한껏 높아진 눈높이”=엔비디아는 20일(현지시간) 뉴욕증시 마감 후 올해 3분기 350억8000만달러(약 49조1190억원)의 매출과 0.81달러(1134원)의 주당 순이익을 기록했다고 발표했다. 이는 월가 예상치를 웃도는 실적이다. 다만, 4분기 매출 전망치는 ‘375억달러±2%’로 제시해 시장 기대(370억8000만달러)에 못 미쳤다. 정규 거래에서 전날보다 0.76% 내린 145.89달러를 기록한 엔비디아는 실적 발표 직후 시간외거래에서 3% 넘게 급락했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지난 6개 분기 실적 발표 당시와 비교해보면, 엔비디아가 시장 기대치를 웃도는 호실적을 내놓을 때 마다 주가는 시간외거래에서 실적 내용을 반영하면서 상승세를 보였다”며 “하지만 지난 2분기부터 ‘어닝 서프라이즈’ 자체에 거는 기대감이 많이 낮아진 모습”이라고 말했다. 투자자들이 엔비디아의 급격한 실적 상승에 익숙해지면서 웬만한 실적으론 한껏 높아진 기대치를 충족시키기 어렵다는 것이다.
▶“성장세 의심 없지만 IT버블 연상도”=전문가들은 엔비디아의 성장세는 여전히 탄탄하지만, 주가가 급등한 탓에 작은 잡음에도 변동성이 커질 수 있다고 진단한다. 1960년대와 1990년대에도 일부 소수 종목이 증시를 견인했던 사례가 있지만 이번 랠리에서 엔비디아의 시장 장악력은 유독 강하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날 종가 기준으로 엔비디아 주가는 올해 들어서만 약 200% 급등했다.
90년대 닷컴 버블을 연상케 한다는 진단도 제기된다. 박상현 iM증권 연구원은 “90년대 IT버블 당시 시스코시스템즈와 엔비디아 주가 추이를 비교해봤을 때 비슷한 궤적을 보이고 있다”면서 “단기적으로 주가가 워낙 올랐기 때문에 실적 등 작은 미스에도 일시적인 조정은 불가피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기술혁신 사이클이 소수의 기업을 중심으로 한 승자독식 게임이라지만 ‘M7(매그니피센트7)’으로 불리는 미국의 대형 기술주만으로 증시가 추가로 강한 랠리를 보이는 데는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했다.
▶“韓반도체 주가도 당분간 변동성”=엔비디아가 주도하는 ‘빅테크 랠리’가 주춤해지면서 국내 증시도 당분간 상승 동력을 찾기 어려울 전망이다. 이성훈 키움증권 연구원은 “국내 증시는 트럼프발 정책 불확실성 지속, 엔비디아 실적 발표 등으로 인해 뚜렷한 증시 방향성이 부재한 상황”이라며 “개별 업종, 종목 이슈에 따른 차별화 장세가 지속되고 있다”고 했다. 특히 엔비디아의 4분기 매출 전망이 시장 기대치를 충족하지 못한 만큼 반등하기 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그간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의 수혜를 많이 받았기 때문에 주가 흐름도 (엔비디아와) 비슷하게 흘러갈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실제 SK하이닉스는 엔비디아 실적 발표를 앞두고 지난 11일부터 20일까지 하루를 제외하고 6거래일 동안 하락세를 보였다. 삼성전자에 대해선 “그간 반도체 시장 악재에 유독 민감한 모습을 보였는데 그나마 최근 자사주 매입 카드를 꺼내 들면서 소폭 방어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은 환율 영향과 지정학적 리스크 자체에 더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다고 짚었다.
▶‘블랙웰’ 본격화 기대감도=다만, 엔비디아의 최신 AI 반도체 신제품 ‘블랙웰’의 출하가 본격화되면 분위기가 달라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김석환 미래에셋증권 연구원은 “주가는 항상 선반영해서 움직이다 보니 기대치 이상을 충족시켜주는 소식을 전해줘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블랙웰의 본격적인 생산 및 출하는 이번 4분기부터 시작하며, 내년에 점진적으로 확대된다는 게 엔비디아의 답변이다.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는 “블랙웰에 대한 수요는 여러 분기 동안 공급을 초과할 것”이라고 자신했다. 이와 관련, 이날 오전 10시 기준 국내증시에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개장 직후 약세로 출발했다가 상승세를 보이고 있다. 고영민 다올투자증권 연구원은 “특히 SK하이닉스는 HBM4에서도 후발주자들과 기술 격차 유지할 것”이라며 “고용량 eSSD 역시 강한 경쟁력이 지속되며 내년에도 AI 수요 확대에 따른 메모리 수혜 대표주자로서의 프리미엄이 부각될 전망”이라고 했다.
한편, 엔비디아의 서학개미 ‘최애’ 탈환도 쉽지 않을 전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에 따르면, 19일 기준 국내 투자자들의 엔비디아 주식 보관금액은 136억4595만달러로 전체 2위다. 지난 5월 28일 처음으로 보유액 1위에 올랐던 엔비디아는 이후 테슬라와 치열한 자리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하지만 최근 테슬라가 ‘트럼프 랠리’에 힘입어 매수세가 몰리면서 1위를 굳히고 있다. 이달 들어 국내 투자자들은 엔비디아(약 4022만달러)보다 테슬라(7729만달러)를 더 많이 순매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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