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수집과 창작이 어떻게 공공의 문화자산으로 활용되는지 조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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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럴드경제=박대성 기자] 전남도립미술관(관장 이지호)은 2026 기증작품전 ‘정기용 컬렉션 : 플럭서스에서 모더니즘까지, 김영덕 : 시대의 염원’전을 개최하고 있다.
오는 3월 8일까지 열리는 이번 전시는 지난해 연말 ‘원화랑’ 고(故) 정기용 대표 유족이 기증한 작품 99점과 지난해 6월 김영덕 작가 유족이 기증한 작품 10점을 중심으로 개인의 수집과 창작이 어떻게 공공의 문화자산으로 활용되는지 조망하는 전시다.
개인의 미술품 수집은 단순한 취향의 수집을 넘어, 한 시대의 미술사적 흐름과 시대적 맥락을 기록하는 행위로 평가된다.
실제로 현대 미술관의 역사 역시 개인이 오랜 시간 축적해 온 작품들이 공공의 자산으로 편입되며 형성되어 왔다.
이번 전시는 이러한 기증의 과정을 통해 예술이 사적 영역을 넘어 공공의 유산으로 확장되는 지점을 집중적으로 다룬다.
고 정기용 대표는 1978년 원화랑(서울 인사동, 1980년대 명동화랑, 동산방화랑과 함께 한국의 3대 화랑)을 설립한 이후 한국 모더니즘을 재조명하고, 백남준을 비롯한 국제 전위 예술과 해외에서 활동하던 한국 작가들을 국내에 소개하며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을 도모했다.
그가 평생에 걸쳐 수집한 작품들은 상업적 흐름을 따라가기보다 동시대 미술의 가능성과 방향을 읽어낸 안목의 결과물이다. 이번 기증을 통해 그의 수집품은 개인이 소장하던 공간을 떠나 전남도립미술관의 소장품으로 기증되었다.
원화랑 기증작품, 정기용 컬렉션 99점은 한국 추상미술, 백남준과 플럭서스, 프랑스 쉬포르 쉬르파스, 국내외 사진 컬렉션 이외에 마르크 샤갈, 앙리 드 툴루즈 로트레크 판화 작품 등이 포함된다.
한국의 추상에는 한국 현대 미술사의 중추를 이루는 거장들, 고암 이응노(1904~1989), 수화 김환기(1913~1974), 박서보(1931~2023) 작품들을 비롯해 1980~90년대에 제작된 회화(문미애, 차우희, 황호섭), 조각(이형우, 박종배, 민균홍, 최기석), 판화(강승희), 드로잉(정현) 등이다.
이번 기증 작품들은 재현(Representation)’을 넘어 추상(Abstract)’으로 이행한 한국 미술사의 중요한 변화와 발전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서 그 가치가 크다.
이번 정기용 컬렉션의 핵심은 99점 중 33점에 이르는 플럭서스 관련 예술가들(백남준, 요제프 보이스, 존 케이지)의 작품들이다.
백남준을 국내 미술계에 소개한 사람은 바로 정기용 대표였다. 그는 1984년 2월 원화랑에서 백남준의 국내 첫 전시를 열며 그를 세계 미술계에 알리기 시작했다.
정기용 대표는 백남준이 1984년 신년에 펼쳐진 세계 최초의 위성중계 예술 프로젝트 ‘굿모닝 미스터 오웰’이 열릴 수 있도록 미리 2만 달러의 작품을 사주며 후원했다.
이번 기증에 포함된 요제프 보이스와 존 케이지가 함께 제작한 ‘보이스 복스’로 명명된 작품과 백남준의 판화 20점은 이번 기증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더불어 백남준과 플럭서스 계열의 작품들이 개념과 행위의 기록’을 보여준다면, 프랑스의 실험 미술 그룹인 쉬포르 쉬르파스 작가들의 작품들은 회화란 무엇인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며, 컬렉션의 의미를 한층 두텁게 만든다.
이 외에도 튀르키예의 서구 표현주의와 초현실주의, 이슬람 신비주의 전통 등을 융합한 현대작가 에르긴 이난의 작품들, 중국 작가 후샹동의 회화, 쉬용의 사진 등 이번 컬렉션의 폭이 꽤 넓다.
이처럼 고 정기용 대표는 국내 미술계에서 백남준, 김환기, 김종영 등 주요 작가들을 가장 먼저 알아봤고, 그들의 대표작을 선별해 내는 남다른 감식안을 지닌 화랑주였고, 뛰어난 컬렉터였다.
이번 기증으로 그의 대표 컬렉션이 전남도립미술관에 안착하게 된 것은 미술관과 이 지역민들의 커다란 영광이다.
고 김영덕(1931~2020, 충남 서산 출신) 화백은 전쟁과 분단, 인간 존엄의 문제를 평생의 화두로 삼아온 한국 구상 회화의 대표적인 작가로 유족들에 의해 10점의 작품이 기증되었다. 그는 1950년 일본 미술대학 진학을 준비하던 중 한국전쟁이 발발해 부산에 머물게 되었고, 이 시기 국제신보(현 국제신문) 기자로 활동하며 전쟁의 참상을 직접 목격한다.
기자로서 마주한 현실은 이후 그의 회화 세계를 규정하는 핵심적 토대가 되었으며, 그의 회화는 현실을 증언하는 수단이 되었다.
1960년에는 서울로 이주한 뒤 ‘구상전(具象展)’ 창립회원으로 작품을 발표했고,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 박경리의 ‘토지’ 등 신문 연재소설 삽화를 맡아 대중과의 접점을 넓혔다.
그의 작품은 한국 근현대 구체적인 역사적 사건뿐만 아니라 다양한 소재로 역사의식과 민족의식을 보여주며 우리의 산천, 민중의 한과 염원을 표현한다.
이번에 기증한 ‘국토기행’ 연작과 ‘인탁’ 작품은 김영덕 화백의 대표작들로 평생에 걸쳐 인간의 실존과 전쟁의 아픔을 무겁게 다루었던 그의 후기 화업의 대서사시라 할 수 있다.
정기용 컬렉션과 김영덕 유작으로 마련된 ‘A Legacy of Giving’ 전은 기증을 단순한 작품 이전이 아닌, 한 시대의 예술적 판단과 가치가 다음 세대로 전달되는 문화적 행위로 바라본다.
이번 기증은 그동안 지역 미술사 중심으로 형성되어 온 미술관 소장품에 백남준, 존 케이지, 요제프 보이스 등 플럭서스 실험미술사의 한 획을 그은 작가들의 작품이 새롭게 더해진 사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