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품업계 대표들 줄구속 사태…거짓말에 휘둘린 ‘우지파동’, 책임은 누가? [미담:味談]

1989년 11월3일 검찰이 삼양식품, 삼립유지, 서울하인즈, 오뚜기식품 등 5개 식품업체 대표와 임원을 우지를 사용한 혐의로 구속하고 있다. [헤럴드DB]

[헤럴드경제=채상우 기자] “제가 끓인, 우리 임직원들이 만든 라면이니까 편안하게 드세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이 자사의 우지라면을 소개하다 왈칵 눈물을 흘렸다. 우지파동으로 고통받은 시아버지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우지파동으로 힘든 세월을 겪은 고(故) 전중윤 삼양식품 명예회장을 떠올리며 눈물 흘리고 있는 김정수 삼양식품 부회장. [삼양식품 제공]

1989년 라면 등에 사용된 기름이 공업용 우지라는 익명의 제보가 검찰에 접수됐다. 검찰은 무리하게 라면에 사용한 우지를 위험한 음식인양 발표했다. 이것은 식품업게에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다. 검찰은 삼양식품을 비롯한 5개 식품업체 대표와 실무자를 ‘보건범죄 단속에 관한 특별조치법’ 및 ‘식품위생법’ 위반 혐의로 구속했다. 시민단체와 언론은 앞다퉈 우지를 사용한 기업들을 저격했다.

마녀사냥의 최대 희생양은 삼양식품이었다. 당시 대표 라면 회사였던 삼양식품은 직격타를 받아 회사의 존폐마저 위협을 받을 정도였다. 삼양식품의 시장 점유율은 40%에서 5%로 곤두박질쳤다. 라면 100만 상자를 폐기했고, 수백억 원의 손실이 발생했다. 직원 3000 명 중 1000 명이 회사를 떠났다. 회사는 결국 법정 관리에 들어갔다.

보건사회부가 전수 조사한 결과 우지는 식용으로 문제가 없는 것으로 밝혀졌지만, 이미 여론은 돌아선 뒤였다. 아무리 우지가 나쁘지 않다고 설명을 해도 건강과 직결된 인식은 쉽게 뒤바뀌지 않았다.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도 우지에 대해서 상당수가 나쁘다는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면 당시 여파가 얼마나 큰 것인지 가늠할 수 있다.

80년대까지 한국을 대표하는 라면이었던 삼양식품의 삼양라면, 우지파동 이후 매출뿐 아니라 기업 이미지에 큰 타격을 입었다. [삼양식품 제공]

우지파동 여파로 돼지기름인 라드유마저 한국에서 불량식품으로 낙인찍히고 말았다. 단순히 우지에 대한 공포를 넘어 동물성 기름 자체가 나쁘다는 인식이 퍼진 것이다. 이는 단순한 풍문으로 끝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이 나서 라드유를 먹지 말고 식물성 기름을 먹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라드유가 비만과 당뇨, 뇌졸중, 성인병 등을 발병할 수 있다고 공포감을 만들었다.

이후 우지와 라드유는 식품계에서 자취를 감췄다. 이는 한국 식품의 맛을 몇 단계 떨어뜨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기름은 음식의 향과 풍미, 식감과 감칠맛과 같은 특유의 기름맛을 낸다. 특히 우지와 라드유와 같은 동물성 기름은 농후한 맛과 풍미로 대체제를 찾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

많은 기업이 우지를 대신해 포화지방 함량이 높고 가격이 싼 팜유를 선택했다. 또 콩기름과 같은 무향 무취에 가까운 식물성 식용유가 건강한 기름으로 우지와 라드유의 자리를 대신하면서 한국 식품에서 기름의 풍미는 사라지고 말았다.

항산화·심혈관 질환에 도움…우지·라드유, 건강 효능 과학적 입증

1989년 우지파동 당시 국회에 ‘우지실태진상조사위원회’까지 만들어졌다. 삼양라면 서울공장에서 국회 차원의 실태조사가 이루어졌다. [삼양식품 제공]

실상은 사람들의 인식과 달랐다. 우지와 라드유는 발열점이 높아 대부분의 식물성 기름과 달리 고온에서 산화되지 않아 알데하이드와 같은 유해 물질과 염증 유발 물질 발생 가능성이 낮다. 높은 온도는 조리에도 적합해 튀김이나 볶음 요리에 맛을 내는데도 탁월하다. 우지에는 비타민 A, D, E, K와 같은 지용성 비타민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어 뼈 강화와 시력 보호, 항산화 작용을 돕는다.

우지뿐 아니라 라드유가 건강에 좋다는 건 과학적으로도 입증됐다. 불포화지방 함량이 높아 심혈관 질환 건강에 도움을 줄 수 있고, 자연 상태의 라드유는 트랜스지방도 거의 없다. 탄수화물을 에너지로 전환하는 비타민B1와, 뼈·치아 형성, 면역력 강화에 필요한 비타민D도 다량 함유하고 있다. 여기에 뇌 기능과 간 기능 향상에 도움을 주는 콜린 성분도 풍부하다. BBC는 라드유를 세계 8위 건강식품으로 소개하기도 했다.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우지파동 이후 삼양라면의 결백함을 호소하는 전중윤 명예회장과 임직원들. [삼양식품 제공]

이런 효능이 입증됐음에도 사람들의 인식은 쉽게 변하지 않은 게 현실이다. 우지파동의 여파는 여전히 현재 진행 중인 것이다. 김성주 삼양식품 부회장은 우지라면으로 불리는 ‘삼약1963’에 대해 “정말 맛있는 제품이고, 꼭 나와야 하는 제품이지만 (소비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에 대한 걱정이 됐었다”고 말하기도 했다.

전중윤 명예회장을 마지막 순간까지도 우지파동의 한을 풀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누가 졌을까. 안타깝게도 당시 문제를 일으킨 익명의 제보자 그리고 제대로 된 검증 없이 위험성을 발표한 검찰 그리고 공포를 증폭시킨 당시 언론 누구도 그 책임을 지지 않았다. 피해자는 있지만, 책임지는 이는 아무도 없던 사건이었다.

여전히 몇몇 언론은 우지나 라드유를 불량식품처럼 자극적인 제목으로 호도하고 있다. 또, 몇몇 업체들은 과장광고 등으로 이들에 대한 불신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이런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우지파동의 누명은 벗어나기 힘들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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