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는 홍보사의 아이디어였다. 영상물등급위원회(이하 ‘영등위’)의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자구책이었던 것이다.
당초 이 포스터는 성적 황홀경을 연상케 하는 배우들의 적나라한 표정으로 화제를 모았다. 이걸 영등위가 가만히 둘까 싶었는데 역시 예외는 없었다. ‘청소년 관람불가’ 등급의 영화라도 포스터는 일괄 ‘전체관람가’ 등급이어야 하는 것이다.

포스터 속 홍보 문구도 심의 반려됐다. “나의 모든 구멍을 채워줘”란 영화 속 대사를 인용한 홍보 문구는, “보여줄 수 없는 걸 보여주고 싶다”는 추상적이고 철학적인 문구로 대체됐다.
26일 개봉한 ‘어바웃 체리’도 포스터 2종을 극장가에선 볼 수 없게 됐다. 첫 번째 포스터엔 상반신을 노출한 배우 애슐리 힌쇼의 뒷모습이, 또 다른 포스터엔 주인공 이름과 같은 과일 ‘체리’의 단면이 담겼다. 둘 다 ‘보는 이들의 강렬한 에로티시즘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결국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넌센스다. 에로틱한 영화의 포스터를 에로틱하다 나무라면 그 영화는 관객에게 뭘로 어필해야 하나. 피 튀기는 액션이나 스릴러의 포스터도 너무 폭력적으로 보이면 안 되고, 공포영화 포스터도 지나치게 섬뜩하면 심의를 통과하기 어려운 형편이다.
혹시 영등위는 이 나라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하는 거 아닌가. 초등학생들도 손쉽게 ‘야동’을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성적 상상력을 자극하는’ 포스터가 이들에게 얼마나 대단한 해악일 지 모르겠다.

물론 영등위 입장에서도 고충은 있다. ‘민망한’ 포스터가 공공장소에 내걸렸을 때 일부 관객들의 항의도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들이 식견있는 예술계 인사들이라면 어째서 ‘영화 포스터도 하나의 예술’이라고 말하지 못 하나. 영화 포스터도 감독이 관객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와 포스터 디자이너의 예술적 감각이 결합된 하나의 작품이다. 이 포스터가 한국에만 건너오면 난도질을 당하니 씁쓸한 일이다.
여배우 가슴골이 노출됐다고 깊게 파인 옷을 소위 ‘포샵질’로 끌어올리고(‘아메리칸 허슬’), 허벅지가 많이 노출됐다고 스커트 길이를 제멋대로 늘리기도 한다.(‘관능의 법칙’) 인터넷에서 별다른 제재 없이 검색 한 번으로 여자 연예인의 가슴골 노출, 허벅지 노출 사진을 수 천, 수만 장은 찾아볼 수 있는 시대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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