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ㆍ정진영 기자의 채널고정> “직장은 결과만 대접…” 현실 꿰뚫는 촌철살인 ‘폭풍공감 ’

장그래
“바둑판 위에 의미없는 돌이란 없다”
작은 업무도 존재 이유·가치 있다

선지영 차장
“다시는 너를 미루지 않을게”
육아 병행 워킹맘의 애환 오롯이

장그래 어머니
“어른인 척 말고 어른답게 행동해 ”
고난에도 좌절하지 않는 모습 보여줘

명드라마는 명대사를 남긴다. ‘부활’(KBS2)의 “사람만이 희망이다”, ‘외과의사 봉달희’(SBS)의 “사람의 피가 36.5도인 이유는 적어도 그만큼은 뜨거워야 하기 때문이다”, ‘연애시대’(SBS)의 “산다는 건 어차피 외로움을 견디는 것” 등 시청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은 드라마들은 종영 후에도 회자되는 명대사로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오로라공주’의 “암세포도 생명인데 같이 살아야죠”처럼 온갖 패러디의 ‘떡밥’이 된 대사도 적지 않지만 말이다.

2014년 11월 현재 최고의 화제작은 단연 직장인의 애환을 다룬 케이블채널 tvN 금토드라마 ‘미생’이다.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하는 ‘미생’은 11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바둑기사를 목표로 살아가던 청년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해 종합상사에 인턴 계약직으로 입사해 회사라는 새로운 세계에 적응하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20부작으로 기획돼 지난 8일 8회 방송을 마친 ‘미생’은 이제 막 5부 능선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소문과 화제성은 여느 지상파 드라마 이상이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많았던 만큼 등장인물들이 쏟아낸 명대사들도 많았다.

고승희 기자의 선택 :“ 누구에게나 자신만의 바둑이 있다” 6회 中 장그래의 대사
                                      – 어쭙잖은 가치 판단 기준을 반성하고, 내게도 있을지 모른다는 희망을 품는다

정진영 기자의 선택 :“ 최선은 학교 다닐 때나 대우 받는 거고, 직장은 결과만 대접받는 데고” 2회 中 오 과장의 대사
                                      – 오 과장의 이 날카로운 충고보다 직장과 직장인의 위치를 일깨워줄만한 표현이 있을까?

▶ 오상식 과장 “최선은 학교 다닐 때나 대우 받는 거고, 직장은 결과만 대접 받는 데고”= 극중 노력의 자세를 강조하는 주인공 ‘장그래(임시완 분)’에게 ‘오 과장(이성민 분)’이 던진 충고는 직장의 본질을 통찰하게 만든 명대사로 꼽힌다. ‘오 과장’의 충고는 많은 직장인 시청자들에게 ‘남의 돈을 벌기는 쉽지 않다’는 당연한 사실과 ‘인생은 실전’이라는 사회의 치열함을 새삼 일깨운다. 이는 기존에 장소만 바꾼 로맨스나 다름 없었던 직장 드라마들의 낭만을 일거에 걷어내는 촌철살인이었다. 많은 직장인 시청자들이 ‘미생’을 단순히 드라마로 보지 않는 이유다. 윤석진 드라마 평론가(충남대 교수)는 “가장 현실적인 전장이 회사”라며 “현실의 불안감을 포착해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방식이 주효했다”고 ‘미생’의 인기 원인을 분석했다.

▶ 장그래 “바둑판 위에 의미 없는 돌이란 없다”= ‘미생’이 직장인들의 공감을 산 가장 큰 원인 중 하나는 업무 관련 장면과 등장인물들의 고민에 집중한 연출이다. 다른 이들보다 한 걸음 뒤떨어진 삶을 사는 것 아는가 고민하며 조바심을 내는 이들에게 장그래의 다짐은 위로였다. ‘미생’은 자칫 허드렛일로 보일 수 있는 업무들도 저마다 존재의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역설한다.

강명석 문화평론가(웹진 ‘아이즈’ 편집장)은 “재벌 2세 등 비현실적인 캐릭터들이 등장해 대리만족을 충족시켜줬던 기존의 직장 드라마들과는 달리 ‘미생’은 평범한 직장인의 일상을 그 자체에 집중했다는 점에서 궤를 달리 한다”며 “안정된 일자리를 찾거나 찾아도 버티는 삶이 점점 힘들어지는 현실을 사는 직장인들이 드라마 속 등장인물과 이야기를 자신의 처지와 동일시하는 것이 공감대 확산의 중요한 이유”라고 설명했다.

▶ 선지영 차장 “다시는 너를 미루지 않을게”= ‘미생’의 또 다른 볼거리는 주조연을 가리지 않는 호연이다. ‘선 차장(신은정 분)’은 ‘워킹맘’을 대변하는 등장인물로 ‘오 과장’과 입사 동기지만 먼저 차장으로 승진한 ‘커리어우먼’이다. 완벽한 모습과는 달리 ‘선 차장’의 집안일과 육아를 놓을 수 없는 일상은 팍팍하다. 어린이집에 아이를 맡기고 돌아선 ‘선 차장’이 문 앞에 잠시 멈춰 서서 뒤돌아보다 자신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딸을 발견하는 장면에 눈시울을 붉힌 ‘워킹맘’ 시청자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회사 업무에 적응하지 못해 사직서를 품고 다니던 ‘박 대리(최귀화 분)’이 술에 취해 “나만 생각하라지만, 난 나만 생각할 수가 없어. 집이 힘들어”라던 독백의 무게감 역시 컸다.

연출을 맡은 김원석 감독은 “배우를 섭외할 때 외적인 싱크로보다 내면과 닮아있는 배우들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컸다. 주연급부터 단역에 이르기까지 섭외에 공을 많이 들였고 약 60여 명에 달하는 모든 배역들에 캐릭터를 부여했다”고 전했다.

▶ 장그래 어머니 “어른인 척 하지 말고 어른답게 행동해”= 출근 준비를 하는 ‘장그래’에게 어머니는 “어른이 된다는 건 ‘나 어른이요’라고 떠드는 게 아니라 어른이 할 줄 알아야 하는 것들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어머니는 장그래의 아버지가 세상을 뜬 후 운영하던 감자탕집을 폐업한 뒤 공공근로로 근근이 일하고 있지만, 결코 아들에게 좌절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주변의 따돌림과 냉대를 딛고 회사에 적응해나가는 장그래에게 어머니의 존재는 어른으로 성장하는 든든한 발판으로 작용한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미생’의 등장인물들은 비뚤어진 시스템 속에 승복할 수밖에 없지만 생생히 살아있으며 그 속에서도 꿋꿋이 하루를 버텨냄으로써 ‘완생’을 꿈꾸는 존재”라며 “‘미생’은 단순히 직장인들의 판타지가 아니라 지독한 현실을 건드린다는 점에서 다른 드라마들과는 근본적인 차이를 보인다”고 말했다.

고승희ㆍ정진영 기자/123@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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