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살인마에게 아내 수경(윤승아 분)을 잃은 뒤, 승현(김성균 분)의 삶은 하루아침에 망가집니다. 수경의 오빠인 강력계 형사 태수(김상경 분) 역시 술 없이 버티지 못합니다. 살인마 조강천(박성웅 분)은 이미 붙잡혔지만, 사형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목숨을 부지합니다. 이 상황에 분노하던 승현은 급기야 개인적인 복수를 꿈꾸기에 이릅니다.
영화 ‘살인의뢰’(감독 손용호ㆍ제작 ㈜미인픽쳐스,㈜영화사 진)는 살인범을 뒤쫓는 스릴러가 아닌, 끔찍한 사건 후 남겨진 이들의 삶을 담은 드라마입니다. 살인범은 애초에 정체를 드러내고, 심지어 어떤 교란 없이 덜미를 잡힙니다. 범인이 잡힌 시점부터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유명무실한 사형제도 아래 범인은 삶을 이어가고, 피해자 가족은 분노와 고통 속에 살아갑니다. 결국 ‘살인의뢰’는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으로 내몰리는 모습을 통해, 집행이 18년째 중단된 사형 제도에 대해 쓴소리를 냅니다.

앞서 제작보고회 당시 손용호 감독은 “현재 사법체계에 대해 찬반을 다시 한 번 이야기하는 영화가 됐으면 좋겠다”는 연출 의도를 밝혔습니다. 출연 배우들 역시 영화가 사회에 어떤 화두를 던지길 바라는 속내를 드러냈죠. 제작진과 출연진의 바람이 실현될 지는 미지수입니다. 대중들이 이 같은 문제 의식에 공감하지 못 해서가 아니라, 극 중 인물들의 심리나 행동이 충분히 공감할 만큼 밀도 높게 그려지지 못한 영화의 약점 때문입니다. 게다가 살인마 ‘조강천’은 노골적으로 피해자 가족을 비웃거나, 다른 재소자와의 난투극에서 터미네이터 같은 전투력을 보이는 등, 다소 만화적인 캐릭터로 묘사돼 오히려 몰입을 방해하는 면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현실의 피해자 가족들을 떠올리면 평정심을 유지하기 어렵습니다. 사적 복수를 꿈꿀 만큼 가해자에 대한 분노와 사법 체제에 대한 불신을 호소하는 이들이 주위에 분명히 있기 때문이죠. 사형 제도의 집행 여부를 두고 당장 찬반을 따지는 것은, 공론화 과정을 충분히 거치지 않은 상황에서 시기상조처럼 보입니다. 그렇다면 적어도 ‘살인의뢰’를 계기로 사회 구성원들이 피해자 가족들의 고통에 보다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가 이들에 대해 보다 현실적인 지원 방안을 고민한다면 이 또한 영화의 의미있는 성과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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