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에세이집은 2009년 전국의 습지를 오토바이로 투어했던 기록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하루하루를 살아낸 그의 자유와 열정의 기록이다.
마야는 책 서문에서 ”2009년의 오토바이 투어는 나의 삶에 엄청난 변화를 주는 시작점이었음을 그 당시에는 알지 못했다. 무작정떠났던 그 여행이 스스로를 변화시키고 더 나아가 가수로 살아가는 데에 흔들리지 않는 가치관과 정체성을 찾는 계기가 되어 주었다“고 썼다.

책에는 서울에서 출발해, 강화, 태안, 목포를 거쳐 제주에서 다시 밀양과 강릉을 거쳐 서울로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재치있는 입말로 엮어낸 건 물론 중간중간 남다른 성장담을 담아 눈길을 끈다.
중고등학교 시절 6년 반장에 6년 장학생이었던 그는 12자매 일진의 멤버이기도 했다고 털어놨다. 후배들이 선생님보다 먼저 인사를 하는 해프닝이 있었을 정도로 그의 명성은 높았고, 학교가는게 그저 즐거웠다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장학금 200만원을 들고 극단에 들어가기 위해 서울로 튄 얘기는 당돌하다. 두 달째 잔고가 드러나면서 그는 공장인부들이 낮에 잠간씩 쉬는 구석 창고방을 밤마다 찾아들어가 잠을 자고 오토바이 배달부로 뛰었다.
6년동안의 연습생 시절얘기는 그에게 또 다른 시련이었다.
“얼굴이 안 예쁘네”“목소리가 매력이 없어.”“돈 되는 발라드를 해야지 락 음악을 하면 어떻게 해.”“차라리 시집이나 가라”등 그는 모진 소리를 이겨내는게 더 힘들었다고 말했다.
스물여덟, 여전히 한 발도 못 떼고 버텨내던 어느날, 연습실에서 몰입하고 있던 중 드럼 스틱이 날아왔다. 드럼 치는 오빠가 “졌다 졌어”라면서 스틱을 내던지고 나갔다. 그 오빠가 나중에 소주잔 기울이며 털어놓은 얘기. “드럼 연주 소리가 그 좁은 공간에서 얼마나 컸겠냐? 보컬 소리가 시끄러워 연습실을 나오기는 평생 처음이었다.”
그러던 중, 기획사 사장이 포기 비슷하게 “네가 하고 싶은 대로 앨범을 만들어 봐”라는 제안을 했다. ‘뭐지?‘ 의아해하며 그는 사장 말대로 누구도 의식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앨범을 만들었고 6개월간의 작업끝에 ‘진달래꽃’이 수록된 앨범을 완성했다. 앨범이 출시되자 반응은 뜨악했다. 그러다 2개월이 지난 어느날 길보드 리어카에서 그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그는 귀를 의심했다. ‘진달래꽃’은 그렇게 활짝 피었다.
데뷔곡 ‘진달래꽃’으로 하루 아침에 신데렐라가 됐지만 이후 마야는 이렇다할 성가를 올리지 못했다. 마야는 책에서 “‘진달래꽃’은 데뷔 때의 천진함과 순수함은 사라지고 원숙한 중견가수의 ‘진달래 할미꽃’이 되어버렸다”고 자조섞인 고백을 한다.
반복된 앨범 실패끝에 그에게 새로운 방향을 제시한 건, 국악과의 콜라보.
7년 만에 선보일 5집 앨범을 앞두고 있는 마야는 “대중의 반응을 이끌어내는 데 실패하더라도, 나는 한 점 부끄럽거나 슬퍼하지 않을 것”이라며, “나의 정체성을 찾고 신념과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만들어준 앨범”이라고 소개했다.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얘기와 재치있는 글, 감각적인 사진이 몰입도를 높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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