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죄 조직 ‘마가흥업’의 우두머리 ‘엄마’(김혜수 분)는 아끼는 식구 ‘일영’(김고은 분)에게 나지막히 이릅니다. 일영은 엄마의 말에 그대로 얼어붙습니다. 엄마는 피도 눈물도 없는 권력자입니다. 길에 쓰러져 있던 개의 숨통을 끊은 뒤 어린 일영에게 “너도 쓸모 없어지면 이렇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사람이죠. 그 날부터 일영은 오직 ‘살아남는 것’을 목표로 살아왔습니다. 일영은 응징해야 할 대상에 대한 연민과 자신의 생존 사이에서 고민한 끝에, 마침내 칼을 들고 거리로 나섭니다.

‘차이나타운’(감독 한준희ㆍ제작 폴룩스픽쳐스)은 잔혹한 누아르 영화이지만, 극 중 조직의 생리를 들여다보면 현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경쟁사회를 살아가는 ‘미생’ 모두가 일영과 같은 마음으로 아침마다 집을 나섭니다. 엄마가 시키는 일을 제대로 해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듯, 현실에서도 조직이 원하는 성과를 내야 존재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결국 사회의 생존 법칙도 차이나타운과 마찬가지로 ‘쓸모 있는 자 만이 살아남는 것’에 다름 아니죠. 그렇다 보니 소신과 양심을 지키다간 낙오되기 십상입니다. 밀려드는 자괴감과 주위의 비난, 멸시는 오롯이 개인이 감당해야 할 몫입니다. 효율성 만을 강요하는 사회 시스템의 문제를 논하는 건 언감생심 꿈도 못 꿀 일이죠.
게다가 맞설 상대가 분명하지 않은 현실의 싸움은 더욱 고독합니다. ‘차이나타운’에서 일영은 결국 절대권력 엄마를 상대로 맞서는 길을 택하죠. 막상 현실에선 상대해야 할 대상이 특정인이나 특정 조직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한 조직이 아닌 거대 시스템을 상대해야 할 때 개인들은 막막해집니다. 취업 준비생들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 어려운 취업 현실에에 대해 누구에게 책임을 묻고 어떻게 저항할 수 있을까요. 물론 자신의 존재 가치를 끊임없이 증명하지 않아도 되는 생존 공간을 찾아 나서는 경우도 드물게 있겠죠. 대다수는 자신의 무능력을 탓하며 스스로를 채찍질 해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쪽을 택합니다.
최근 인터뷰에서 만난 김혜수는 “모르는 누군가 만든 기준에 따라 우리는 삶을 지속한다. 영화에서처럼 칼이 들어오는 건 아니지만, 스스로 쓸모있는 존재라는 것을 매일 증명하길 사회적으로 강요 당한다”며 씁쓸함을 드러냈습니다. 인간이란 그 자체 만으로도 가치 있는 존재인데, 자신의 가치를 입증해야만 하는 현실이 슬프다고도 했습니다. 실제로 대다수 직장인들이 성과에 따라 등급이 매겨지는 일상을 반복합니다. 기자들 역시 존재 가치를 입증하기 위해 의미보다 화제성 있는 글을 쓰도록 내몰립니다. 차이나타운의 인물들은 날 때부터 익힌 생존 법칙대로 살아가는 것이지만, 우리는 교육 받아온 가치와는 동떨어진 삶을 살도록 강요받는 현실에서 혼란을 느낍니다. 정의와 배려, 존중, 공생의 미덕을 배우지만 막상 사회에 나오면 이같은 가치는 박제된 단어에 불과하죠. 우리가 발 딛고 선 현실이야말로 ‘차이나타운’보다 더 비정한 곳인지 모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