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 유발 사극 ‘징비록’의 시청 효과

[헤럴드경제=서병기 선임기자]KBS 사극 ‘징비록’은 분노 유발 드라마이다. ‘지난 잘못을 경계하여 삼간다’라는 제목처럼 과거의 잘못을 보면서 화가 나게 만든다. 시청자들은 임진왜란중 도성을 버리고 도망다니는 선조(김태우)를 보면서 한심하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한다. 선조는 38회에서 한양으로 환도했지만 민심은 싸늘하게 돌아섰다. 겁이 많은 선조의 무책임과 무능은 지금의 대중들에게 많은 걸 환기시켜준다.


이런 한심한 선조에 대해, “그러시면 안됩니다”라고 단호하게 의견을 피력하는 류성룡(김상중)을 보면서 그나마 안도하게 된다. 류성룡은 “백성이 근본이다”는 믿음과 반대로 가는 상황에서는 언제라도왕에게 직언할 수 있었다. 왜군과의 진주성 2차전에서 죽어간 백성들을 보며 오열하는 류성룡 같은 신하가 한 명이라도 더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전란중 바보 짓을 하는 찌질한 선조와 이를 혼내는 류성룡. ‘징비록‘은 이런 구도로 한동안 진행됐다. 하지만 이제 원리원칙만을 강조하고 시종 윤리교과서를 읊는 류성룡이 옳기는 하지만, 조금 지루해진 감도 있다. 실제로 류성룡은 처세술도 발휘할 줄 아는 재상이자 학자였다. 그런 점에서 명나라가 광해(노영학)에게 하삼도를 맡겨 나라를 나누려고 하는 등 외세의 개입에 대해 류성룡이 선조가 선위할 뜻이 없음을 알아채고 명의 술수에 넘어가지 않으려고 세자의 석고대죄를 유도하는 장면은 꽤 흥미로웠다.

초반에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두 장수, 고니시 유키나가(이광기)와 가토 기요마사(이정용)가 대조적인 캐릭터를 보이며 조선 침략 경쟁을 벌이는 모습에 열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은 명나라의 조선에 대한 내정 간섭에 더욱 화가 난다.

명나라 2차 원군의 총사령관인 경략 송응창(최일화)은 무능한 선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고, 광해를 조선의 왕으로 내세우려 한다. 명의 심유경은 이순신에게 군량미를 명나라 군사에게 보내라고 다그친다. 명나라 사신 사헌은 아예 조선을 분할역치(나라를 나누고 임금을 바꾼다)하려고 한다.

명나라가 조선의 상황을 잘 이해하고 광해를 왕으로 세우길 바랬다면 충고의 마음만은 이해하지만, 송응창은 선조와 광해 사이를 흔들어 조선의 국정을 농단하려는 의도를 알고 있기에 더욱 분노가 인다.

명나라 군사를 1만명만 남기고 제멋대로 요동으로 철군시켜버린 송응창이 좌의정 윤두수(임동진)에게 “조선의 대신들은 무능한 십상시 같구만. 쓸데없는 고민만 성인의 반열에 올랐다더니”라며 거만을 부리는 게 도를 넘었다.

이순신(김석훈)이 남도 해안을 잘 지키고 있고, 권율 곽재우 등의 명장, 이덕형 이항복 이원익 등 좋은 보좌진도 있었지만, 컨트롤 타워인 선조의 무능에 실망을 금할 수 없다.

무책임하고 자존심도 없는 선조에 화나고, 왜장의 조선 침략에 열받고, 조선을 도와주러 온 것처럼 해놓고 사실은 자신의 잇속만 챙기는 명나라 대신에 분노하고, 그러는 사이 ‘징비록’은 어느새 종반으로 접어들고 있다. 화를 내면서 우리는 무엇을 돌아봐야 할까?

서병기선임기자/wp@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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