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커스] 한인은행권, 의류업계 불황에 따른 대출 제한

의류인들 “비올 때 우산 빼앗고 있다” 불만

“한인은행 자본 필요할 때마다 손 내밀더니…” 배신감 드러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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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A다운타운 의류업계가 전반적인 불황에 시달리는 가운데 한인은행권의 대출 규제가 강화되고 있어 자금압박을 받는 업체가 늘고 있다. 사진은 LA다운타운 의류상가.

철 지난 유행가 가사 처럼 불과 몇년전을 그리워하는 한인 의류업주들이 늘고 있다.

10여개의 한인 은행들이 치열하게 경쟁하던 10여년전 LA다운타운 한인의류업계는 은행권의 최고 고객들이 밀집해 있던 곳이다.

700여개에 불과하던 의류 업체수가 8년만에 2000개를 육박할 정도로 유입 입구도 많았고 또 의류업을 통해 업계의 매출과 수익도 급증하던 때다.

개별 회사와 함께 전체 업계가 급성장하던 때라 자연히 자금도 많이 필요했고 한인은행권은 이런 흐름에 맞춰 기업 대출를 통해 이자 수입을 올리기도 했다. 또한 업주뿐 아니라 중간 간부급 이상이 집을 비롯한 부동산 구매도 많아 기업대출 뿐 아니라 부가적인 대출 상품 판매로 호황을 누렸다.

불과 3년전까지만 해도 A은행에서 기업대출로 30만 달러를 받으면 얼마 지나지 않아 B나 C은행에서 많게는 두배 이상 대출 한도를 늘려주며 고객을 가로채는 일도 빈번하게 일어나곤 했다. 하지만 불과 2년 사이 상황은 급변했고 최근 들어 한인 의류업주들 사이에서 ‘한인은행들의 배신’이라는 말까지 서슴 없이 나오고 있다.

현재 상황을 보면 은행권과 의류업계에서 분명한 시각 차이를 느낄수 있다. 한인은행권의 기업 대출이 크게 축소되고 심사가 강화된 가장 큰 이유는 의류업체들의 매출과 수익률 감소에 있다. 안팎으로 의류 도매 시장 상황이 좋지 않고 당분간 이런 추세가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보니 한인은행권 역시 부실 대출 우려로 위축 될 수 밖에 없는 구조다.

의류 뿐 아니라 한인 경제계의 다양한 산업군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은행권 입장에서는 특정 산업군에 무리하게 대출을 늘려 줄수 없다는 분위기다.또한 매출과 수익율, 현금 유동성, 재고, 미래 매출 전망, 미수금, 외상 매입금 등 기업 대출 심사를 위해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심사 기준에 못미치는 업체들이 늘어나는 것 또한 대출을 꺼리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인은행은 최근 몇년사이 몇 차례 합병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 규모를 키우다 보니 과거처럼 인맥이나 회사의 평판 등이 대출 심사에 영향을 미쳤던 것과 달리 주류 대형 은행 처럼 철저하게 접수된 서류를 바탕으로 심사를 진행한다. 일부의 경우 기업대출에 담보를 요구하기도 한다.

“비올 때 우산을 빼앗고 있다”라는 의류업계의 시각도 일리가 없지는 않다.

한인은행 설립에 밑거름이 된 자본의 가장 큰 원천은 한인의류업계였다. 2008년 금융위기를 비롯해 한인은행들이 어려움을 겪을 때마다 증자 등 추가로 필요한 자금 확보에 나설 때면 누구보다 먼저 한인의류업계가 젖줄이 돼주었다.

한인 의류업주 K씨는 “의류업계 경기가 좋을 땐 서로 기업 대출을 해주겠다고 경쟁을 하고 한인은행들이 힘들 때 온갖 인맥을 동원해서 의류업주들로부터 자본을 조달해가더니 정작 업계가 힘들어지니 나몰라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뒤통수를 치고 있다”라고 볼멘 소리를 했다.

현실적인 판단과 미래에 대한 부정적인 전망도 있다.

또 다른 한인의류업주 J씨는 “솔직히 상당수 의류업체들이 세금을 줄이기 위해 매출이나 영업 이익을 줄이는 경우가 많았고 한인 은행권 역시 이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라며 “주류 대형은행에 비해 1~2%가량 높은 이자를 내면서까지 한인은행을 이용했던 것은 커뮤니티 은행이라는 말 처럼 그만큼 서로를 잘 알았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최근들어 합병을 통해 몸집을 키운 한인은행들이 시스템은 대형 은행을 따라가고 있지만 정작 이자율이나 각종 서비스는 크게 못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부실 대출 예방을 위한 한인은행권의 대출규제 강화가 장기적으로 봤을 때 부정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 섞인 목소리도 있다.

최근 창업하는 1.5세나 2세 의류업주와 부모들에게 회사를 물려 받은 차세대 한인 의류업주들에게 한인은행은 그다지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거래상대다.

부모나 선배 세대와 달리 매출에 따른 세금 보고도 정확하게 하는 경우가 많아 주류 대형 은행을 2~3년 이상 안정적으로 거래할 경우 보다 많은 금융 상품을 휠씬 싼 이자로 쓸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인의류협회 장영기 회장은 “한인 경제계의 큰 축인 의류업계와 한인 금융권이 힘을 모아야 현재 위기를 딛고 재도약의 틀을 마련 할 수 있다”라며 “당장 안정적인 이자 수익을 내면서 담보까지 확보한 대출 상품을 파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가주 한인경제의 근간산업인 의류업계의 성장 동력이 꺼지지 않도록 지원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경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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