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로·첩보·스릴러영화 등 강한 존재감
끝없는 연기열정·따뜻한 카리스마
철저한 자기관리로 후배들 롤모델로
-은관문화훈장 원로영화배우 남궁원
남궁원은 서구적인 마스크를 지닌 배우다. 그가 영화배우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1960~80년대에는 남궁원처럼 키가 크고 덩치도 있으며 서구적인 얼굴을 가진 배우가 거의 없었다. 여배우들도 키가 작아 ‘투샷’이 잘 잡히지 않았다.
“신상옥 감독이 남궁원을 가리켜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고 한 적이 있다. 한 10년 뒤에 태어났어야 할 미래형 배우라고 했다.”
신영균예술문화재단 이사인 김두호(70) 전 영화평론가협회장의 말이다. 너무 잘 생기고 키가 큰 게 오히려 배역의 제한을 받았다는 말이다. 당시에는 표준형 호남인 신영균과, 이지적인 이미지의 김진규, 잘 생겼는데 반항과 우울의 정서를 함께 지닌 신성일이 배역을 따내기가 좋았다. 만약 1970~80년대에도 지금처럼 다양한 장르의 영화가 존재했다면 남궁원은 훨씬 더 디테일하고 멋있는 남성성을 보여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궁원은 그런 절대 불리를 수많은 작품에 출연해 연기력을 다져나감으로써 극복해 나갔다. 돋보이는 외모의 배우가 연기도 잘하니 자연스럽게 주목받을 수 있었다. 그는 멜로뿐만 아니라 첩보, 스릴러, 검술, 가족영화에 두루 출연했다. 60년대 후반부터 ‘간첩작전’(1966년) 등 007영화 같은 영화들이 한국에서도 제작되기 시작하자 한국의 제임스본드로 수사물에서도 진가를 발휘했다. 첩보 스릴러에서는 그의 서구형 외모가 플러스 효과를 가져와 국제적으로 통할 배우라는 인식이 더욱 강하게 심어졌다.
1964년 영화 ‘빨간 마후라’에서 전투기 조종사 최무룡과 최은희가 사랑에 빠지는데, 남궁원은 역시 조종사로 작전 수행중 죽은 최은희의 잘생긴 전애인으로 나와 존재감을 발휘하기도 했다. 1967년에는 임권택 감독의 검객 영화 ‘풍운의 검객’에서 검객으로 나왔고, 이 때의 경험 축적은 2001년 일본에서 로케이션한 영화 ‘싸울아비’로 이어졌다. 1968년에는 신상옥 감독의 ‘내시’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임금 역할을 연기했다.
남궁원은 이렇게 해서 한국 영화계에서 큰 족적을 남길 수 있었다. 조금 젊은 세대들은 남궁원 하면 고급 양복 광고가 잘 어울리는 품위있는 남자배우 또는 멜로영화의 미남 신사 정도로만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나이가 40대인 문화평론가 정덕현은 “남궁원 하면 토속적이고 전통적인 느낌이 아닌 서구적인 외모로 중저음 목소리가 기억에 남는다”고 했다. 역시 40대 평론가 하재근도 “남궁원은 한국영화 황금기인 60~80년대 서구적인 마스크의 원조 꽃미남 이미지로 활약한 선배배우다”면서 “그렇게 화려한 시절을 보낸 배우가 나이가 들면 초라해지는 경우가 있지만, 남궁원은 철저한 자기관리로 좋은 이미지를 유지해오고 있다. 기업활동도 한 재력가 이미지가 있는데도 모범적인 가정과 사회생활로 후배들에게도 롤모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남궁원이 2011년에는 SBS 드라마 ‘여인의 향기’에 출연한 적이 있다. 데뷔 52년만에 처음으로 안방극장에 선을 보인 것이다. 여기서 그는 서효림의 아버지 J그룹 임중희 회장 역으로 중후함을 뽐냈다.
존재 자체만으로도 좌중을 압도시키는 강한 카리스마를 드러내 드라마 연기자로서의 모습도 보여주었다. 안방극장에서 처음 본 남궁원은 그 자체로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남궁원은 당시 촬영장에서 “신인이니 잘 부탁드린다”고 말하고는 긴 대사를 NG 없이 소화해내 관록의 연기력을 보여주었다.
남궁원은 훤칠한 풍채와 조각 같은 외모로 ‘한국의 그레고리 펙’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하지만 거기에 만족하지 않고 영화계에서 새로움이라는 넓이와 캐릭터의 변주라는 깊이에 도전해 배우로서의 아우라를 만들어냈다. 그는 여전히 연기에 대한 열정과 호기심이 풍부하다. ‘여인의 향기’ 출연을 결정할 때도 “브라운관을 통해 비춰지는 내 모습이 궁금하다. 젊은 배우들과 연기할 생각에 설렘 반, 두려움 반이다”라고 열의를 보였다.
김두호 이사는 “남궁원을 상징하는 단어는 돋보이는 외모를 지닌 미남 외에도 성실함과 선함이 있다”고 남궁원의 인품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남궁원은 2015년 제5회 신영균문화예술상 아름다운 예술인상 공로예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남궁원이 품격 있고 여전히 배우로서의 향기가 느껴지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다.
서병기 선임기자/wp@heraldcorp.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