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 회사 성장할수록 누증적 구조
상법 본래 취지 상실…기업 옥죄는 현실
기업생태계, 생존→스케일업 전환 없인
투자·고용·경제 성장에도 부정적 영향
성장기업에 보상·인센티브로 지원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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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왼쪽부터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김준호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 |
“현장에서는 ‘성장은 고사하고 국내에서 생산을 해야 되냐’는 회의적인 반응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주 52시간제, 최저임금 인상, 노란봉투법에도 버티던 기업들이 더 세진 개정 상법 앞에선 “더 이상 기업 경영을 할 수 없다”며 하소연을 하고 있다. 특히 회사가 성장할수록 규제는 누적되는 구조 속 경영자의 권한까지 축소하는 개정 상법이 최근 국무회의를 통과하면서 기업들 사이에서는 “한국에 남아있을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까지 조성되고 있다.
개정 상법이 국회를 통과하기 전에도 우리나라 기업 생태계는 성장할수록 규제가 늘어가는 누증구조였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자산총액 5조원이 되면 공시 대상 기업집단이 되고, 10조원으로 키우면 상호 출자 제한 기업집단이 되는 등 기업이 덩치가 커지면 규제는 더 쏟아진다”며 “상법이 본래 취지와 달리 사실상 규제법처럼 운영되는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TSMC 같은 기업 못 키우면 국가경제 부정적”=기업을 옥죄는 법안이 이어지면서 국제통화기금(IMF)은 지난 7월 정책의 불확실성 증가 등의 이유로 글로벌 주요국과 달리 한국만 성장률 전망을 0.8%로 낮췄다. 반면 대만은 TSMC와 같은 대규모 기업을 기반으로 성장률 전망을 3%로 상향했다. 김준호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TSMC와 같은 덩치 큰 기업을 (한국이) 키우지 못하면, 투자·고용 뿐 아니라 국가 경제 성장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이제는 기업 생태계의 무게중심을 ‘생존’에서 ‘스케일업’으로 옮겨야한다”고 지적했다.
성장을 두려워하지 않는 기업을 육성하려면 규제 완충지대를 마련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일본의 경우 대규모 기업이 각자의 사정에 따라 감사위원회·감사회·혼합형 등 유연하게 선택할 수 있도록 했다”며 “규모에 따라서 급격하게 달라지는 규제 수준에 완충 지대를 둬 부작용을 막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준호 한국경제인협회 기업제도팀장은 “기업의 성장에 따라 직면하는 규제 장벽, 지원 절벽의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 지원 수준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완충 장치’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고도 덧붙였다.
▶“全주기적 관점 기업지원 필요”=단기적 지원 정책을 넘어 기업 성장을 전주기적 관점으로 보는 긴 호흡의 육성 정책이 나와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재계 관계자는 “일본 아베노믹스 정책은 주주가치 보호를 강조하면서도 기업 성장을 지원하는 제도 설계에 중점을 뒀다”라며 “(한국의 경우) 산업 구조 개편을 위해 제도적 정비가 필요하며, 특히 수출 주도 경제 구조이기 때문에 글로벌 수출 지원 방안도 함께 긴 호흡으로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역진적 지원제도 정비방식에 대한 개선 필요성도 언급됐다. 박일준 대한상의 상근 부회장은 기업성장포럼 킥오프 회의에서 “투자·고용 효과 측면에서 지역경제 기여 효과는 대기업이 크지만, 현재의 인센티브 구조는 역진적”이라며 “지방투자촉진보조금은 중소·중견기업에 한정(입지보조금)돼 있거나 기업규모별로 차등 지원(설비투자보조금)하고 있고, 국회에 제출된 기회발전특구 관련 법안에도 가업상속공제 적용대상은 중소기업과 매출액 5000억원 미만 중견기업으로 제한되어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를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박양균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정책본부장은 “성장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하는데, 덩치 큰 기업은 경제와 사회에 더 큰 기여를 하는데도 외려 역차별을 받고 있다”며 “자산 총액 및 매출액 기준으로 규제할 뿐 아니라 종업원을 많이 고용할수록 규제가 느는 등 규제의 형태는 다양하다. 기업 규모에 따른 규제도 정비할 필요가 있다”고 짚었다.
기업이 스스로 성장하고 싶도록 유인 구조를 재설계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기업 규모별 차별규제 해소, 각종 금융·세제상 지원 차별 완화,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죄와 같은 과도한 경제 형벌 개선이 필요하다는 분석이다.
▶성장은 도약 아닌 악재?=이런 가운데 국내 기업들에게 대기업으로의 성장은 도약의 기회가 아닌 ‘악재’로 여겨지는 게 현실이다. 2016년 셀트리온이 대기업으로 지정됐다가, 지정 기준이 상향되며 다시 해제됐을 때에도 셀트리온 측은 이를 오히려 호재로 받아들였다. 가장 큰 이유는 연구개발(R&D)에 대한 혜택 문제였다. 셀트리온은 “바이오 산업의 특성상 R&D 투자가 많고 기간도 오래 걸리기 때문에 세액공제 혜택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기업 지정 해제에 환영한다”고 밝혔다.
대기업은 물론 상장을 검토하는 중소·중견기업들에게도 위험 요소가 커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기업이 경영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기업지배구조를 가장 큰 문제점으로 짚었다. 특히 주주 권리 확대를 골자로 한 상법 개정에 정부가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면서 이 같은 우려는 더욱 커진 상황이다.
이와 관련 박양균 본부장은 “기업 입장에선 기업의 이익을 위해서 경영적 판단을 하더라도 일부 주주의 이해관계에 반하면 소송이 발생할 수 있다”며 “글로벌 산업 환경은 특정 분야를 선점하는 기업이 시장을 독식하는 형태로 변화하고 있는데 신속하고 빠른 의사결정이 불가능해지는 구조”라고 설명했다.
최준선 교수는 “상장하면 소액주주의 공격에서도 자유로울 수 없는데 경영권 보호 장치는 부족하고, 마지막 장치인 자사주 소각까지 의무화하는 상황”이라며 “한국에서는 상장 자체가 위험한 도박”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기업 입장에서의 리스크는 큰 반면에 성장을 촉진할 수 있는 제도는 부족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표적인 것이 고성장 중소기업이 규모를 키우는 주요 방식인 다른 중소기업 대상 M&A에 대한 혜택이다. 현재는 기술혁신형 중소기업 주식취득 때에만 기술가치 금액의 5% 세액공제가 전부다.
강석구 대한상의 조사본부장은 “우리나라 기업 성장정책은 기업이 성장하면 형평성을 이유로 지원이 단절되거나 축소되는 ‘성장 역차별 구조’”라며 “성장 가능성이 높거나 실제로 빠르게 성장 중인 기업에는 보상과 인센티브를 제공해 글로벌 시장에서도 경쟁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도록 뒷받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혜원·박지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