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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국인 노동자 [연합] |
李 대통령 “인권침해 엄단”… 노동부, 인권 관점 제도 변화 추진
노동부 “의견 취합 중… 올해 상반기 입법, 방향성은 미정”
현장에선 “소 키울 사람 없다” “호남권은 노동력 씨 마를 판”
[헤럴드경제=홍석희 기자] #1. 경기도 소재 판금회사 리치니스의 강경준 대표는 최근 외국인 노동자(E-9 비자)에 대한 ‘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해 “화가 난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외국인근로자법은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기 위해 만들어진 법인데, 이제는 ‘인권 프레임’으로만 접근하고 있다”며 “용접을 배우는 데만 6개월이 걸리는데, 취업 제한 기간을 1~2년으로 줄이면 말 그대로 ‘일 좀 시킬 만하면 이직’하게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2. 경남 김해 소재 한 제빵·식품공장 간부 A씨는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권역 제한’ 완화 움직임에 비상이 걸렸다고 했다. 공장 위치가 외곽에 있어 생활 인프라가 취약한데, 권역 이동 제한이 풀릴 경우 근무를 지속할 노동력을 확보하기 어려워질 수 있어서다. A씨는 통화에서 “외국인 노동자들도 생활 인프라를 중요하게 본다”며 “권역 제한이 사라지면 다들 서울·수도권으로 몰릴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지방에서는 ‘소는 누가 키우냐’는 말이 절로 나온다. 정말 노동력이 없다”고 우려했다.
이재명 정부가 외국인 노동자에 대한 취업 제한 규정을 완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지난해 전남 나주 소재 한 벽돌공장에서 외국인 노동자가 지게차에 묶인 채 학대받는 영상을 보고 “야만적 인권침해를 철저히 엄단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른 후속 조치의 일환으로, 현재는 국내에서 일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전반의 처우 개선과 노동 환경 개선에 정책 방향이 맞춰지고 있다.
현행 고용허가제는 도입 취지부터 현재의 운용 방식까지 여러 이해관계가 맞물린 구조다. 외국인 노동자의 국내 취업은 ‘외국인근로자의 고용 등에 관한 법률(외국인고용법)’에 근거한 E-9(비전문취업) 비자를 통해 이뤄진다. 이 법은 2009년 제정 당시부터 목적을 ‘원활한 인력 수급 및 국민경제의 균형 있는 발전’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 기간은 최대 4년 10개월(3년+1년10개월)로 제한되며, 근무 지역 역시 수도권·충청권·전라·제주권·경남권·경북·강원권 등 권역별로 묶여 있다. 특히 최초 취업 사업장에서는 고용주의 동의가 없을 경우, 입국 후 3년 이내에 다른 사업장으로의 이동이 원칙적으로 제한했다. 애초 비자 설계 자체가 ‘비전문 인력’을 지역 중소기업에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장치였기 때문이다. 수도권 쏠림을 막고 지방 산업단지와 중소 제조업 현장의 인력난을 해소하겠다는 정책적 목적이 강하게 반영돼 있다.
다만 현장에서는 제도와 현실 사이의 간극이 커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현장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가 이직을 원할 경우, 고용주가 무리하게 막기보다는 분쟁을 피하기 위해서라도 허가를 내주는 분위기가 적지 않다”며 “제도는 ‘묶어두는 구조’지만, 현장은 이미 상당 부분 느슨해진 상태”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이 최초 문제를 제기했던 ‘나주 벽돌공장’ 피해 외국인 노동자의 경우, 이후 다른 직장을 구하지 못해 ‘추방 위기’에 놓였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는 권역 제한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해당 노동자는 전라·제주권 근무자였으나 전근을 희망한 지역이 울산이어서, 권역을 넘는 이동이 금지된다는 규정에 막혀 이전이 어려웠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기업계 관계자는 “규정상 무리한 요구였지만 대통령 지시가 내려오면서 공무원들도 더 신경을 쓸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고용노동부가 주축이 돼 진행 중인 제도 개선 논의는 큰 틀에서 ‘기간 제한’과 ‘권역 제한’을 완화하는 방향이다. 3년 이내 이직 금지 조항을 1~2년으로 줄이거나, 고용주 동의 없이도 이직이 가능하도록 하는 방안 등이 거론된다. 또 현재 최장 5년인 근무 가능 기간을 숙련도를 고려해 7년까지 늘리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권역 제한의 경우 5대 권역 체계는 유지하되, 비수도권에서 수도권으로의 이동은 제한하고, 비수도권 간 이동은 허용하는 안이 기본 방향으로 전해진다.
고용노동부 관계자는 “현재 TF를 중심으로 제도 개편 방향에 대한 의견을 수렴 중”이라며 “올해 상반기 중 방향을 정리해 입법을 준비할 계획이지만, 아직 구체적인 방향성이 확정된 단계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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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건은 A씨 사례처럼 도심에서 멀리 떨어진 지역의 경우 외국인 노동자들 역시 근무를 기피한다는 점이다. 이동권 보장을 이유로 권역 제한을 풀 경우, ‘노동력의 원활한 수급’이라는 법의 본래 취지가 훼손될 수 있다는 것이 중소기업 현장의 판단이다. 외국인 노동자 21명을 고용하고 있는 한 업체 관계자는 “비수도권들도 각자의 사정이 다르다. 만일 권역 제한이 풀릴 경우 동부·경상권은 그나마 낫지만, 호남권은 지역 경제를 떠받치던 노동력이 씨가 마를 판”이라고 말했다.
외국인 노동자를 붙잡기 위해 임금을 올리거나 복지 비용을 늘릴 수밖에 없게 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이는 곧 비용 부담으로 이어진다. 한 업체 관계자는 “외국인 노동자들 사이에서는 커뮤니티가 매우 활발하다”며 “외부에서 누군가 우리 회사 노동자를 만나기만 해도 곧바로 ‘이직하겠다’는 말이 나온다. 그를 잡으려면 돈을 더 줘야 하고, 그러면 나머지 인원들에 대한 월급도 올려주게 된다. 비용이 구조적으로 올라가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권역 제한이 풀릴 경우 ‘이직 브로커’가 늘어날 가능성도 제기된다. 고용주 동의 없이 이직이 가능해지면 외국인 노동자의 취업·이직 시장이 커지고, 정보 비대칭을 이용한 알선이 성행할 수 있다는 우려다. 업체 관계자는 “지금도 인력을 빼가는 일은 적지 않다”며 “붙잡으려면 임금을 더 줘야 하고, 그러면 기존 직원들 급여도 함께 올려야 한다. 결국 모든 변화는 지방 기업의 비용 부담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가 28일 공개한 중기 대상 조사에 따르면 응답 기업의 절반(48.7%)은 “외국인근로자 3년 취업 제한은 현행대로 유지돼야 한다”고 답했다. 응답 기업의 74.5%는 외국인 노동자로부터 사업장 변경 요구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응답했다. 사업장 변경 제한이 완화될 경우 ‘영세 중소기업 인력난 심화’를 우려한 응답도 61.3%에 달했다.
양옥석 중소기업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가장 큰 문제는 권역 제한”이라며 “이미 외국인 노동자들이 지방 경제를 떠받치고 있는 상황에서 권역 제한이 풀리면 수도권 쏠림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그는 “지방 소멸이 더 가속화되고, 결국 지역 경제가 말라붙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