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타리 뒷면까지 칠하라” 제프 쿤스 LACMA 관장, 스티브 잡스 소환한 이유

제프 쿤스. [제네시스 유튜브]

[헤럴드경제=문영규 기자] ‘풍선 개’를 예술작품으로 승화시킨 현대 미술의 거장 제프 쿤스가 정보기술(IT) 혁명가였던 고(故) 스티브 잡스 애플 창립자를 언급하며 자신의 예술적 완벽주의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것이었다고 밝혔다.

최근 현대차 브랜드 제네시스의 유튜브 채널에 올라온 제프 쿤스와 마이클 고반 로스앤젤레스 카운티 미술관(LACMA) 관장과의 대담 영상에 따르면 쿤스는 자신의 예술관을 지탱하는 완벽주의의 뿌리가 아버지에게 있다고 고백했다.

지난해 12월 이뤄진 이 대담에서 쿤스는 윌터 아이작슨이 쓴 스티브 잡스 전기의 일화를 인용했다. 잡스의 아버지는 어린 아들에게 집 울타리를 칠하게 하며 “아무도 보지 않는 뒷면까지 완벽하게 칠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이웃이 볼 수도 있고, 무엇보다 네가 알지 않느냐”는 것이 이유였다. 보이지 않는 회로 기판의 배열까지 아름다워야 한다고 믿었던 애플의 디자인 철학은 바로 이 뒷마당 울타리에서 시작됐다.

제프 쿤스(오른쪽)와 마이클 고반 LACMA 관장. [제네시스 유튜브]

쿤스는 “스티브 잡스는 자신이 만드는 모든 제품의 디자인에 그토록 신경썼고, 제품을 열었을 때 수리하는 사람을 위한 배려까지 담아냈다”며 “뭔가를 만들어서 내가 당신(관객)을 존중한다는 것을 보여줄 기회가 이것뿐이라는 걸 안다. 나는 존중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그리고 관객이 보기에 가치 있는 무언가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쿤스 역시 인테리어 디자이너였던 아버지로부터 비슷한 가르침을 받았다. 그의 아버지는 고객의 집에 램프 10개를 들고 가서 이것저것 맞춰보는 식의 임기응변을 허용하지 않았다. 대신 모눈종이 위에 치밀하게 설계하고, 전등갓의 크기, 받침대의 색깔 등까지 미리 계산했고, 색상과 비례를 완벽히 계산해 단 하나의 정답만을 가져갔다.

그는 “저는 아버지로부터 이런 점을 어느 정도 물려받았다고 생각한다”며 “아버지는 누군가의 집을 디자인할 때면, 당시엔 컴퓨터 프로그램이 없었으니 모눈종이를 펴놓고 모든 걸 디자인했다. 모든 것이 완벽하게 비례에 맞았다”고 했다.

쿤스가 스테인리스 스틸 풍선 조각의 용접 이음새를 눈에 보이지 않을 때까지 연마하고, 재료 과학의 극한까지 밀어붙이는 집착은 단순한 강박이 아니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곳까지 신경 쓰는 것이 곧 상대를 향한 존중”이라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행위였다.

그는 “저는 아버지가 저에게 배려(caring)와 배려하는 법을 가르쳐주셨다는 걸 깨달았다”며 “제 아이들과 아내에게 우리가 삶에 대해, 무엇이 중요한지에 대해 가르칠 수 있는 게 있다면, 그건 바로 ‘배려’라고 말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배려할 때 자존감이 생기고 타인을 배려하면 공감 능력이 생긴다. 그리고 감사하게 된다”며 “세상에 열려 있고 감수성을 갖게 된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학이나 이 모든 것들은 배려의 영역 안에 있다”면서 “배려가 가장 중요하다”고 했다.

제프 쿤스의 작품 ‘스플릿 로커’ [제네시스 유튜브]

쿤스는 이번 대담의 주제였던 거대 식물 조각 ‘스플릿 로커(Split-Rocker)’의 탄생 비화를 공개하기도 했다.

쿤스는 전 부인인 일로나 스탈러와의 양육권 분쟁으로 아들과 생이별하는 아픔을 겪었다. 아들의 방에 남겨진 파란색 흔들 목마와 공룡 장난감을 보고 두 장난감의 반쪽을 갈라 하나로 합쳤다. 서로 다른 두 장난감의 단면이 불완전하게 맞물려 틈(Split)이 생겼다.

그는 “집 안 침실에 있는 아들의 장난감들을 보고 있었는데, 한쪽을 보니 폴리에틸렌(플라스틱)으로 만든 파란색 흔들 목마가 있었고 부드러운 곡선에 머리 부분으로 노란색 손잡이가 관통해 있었다”며 “방 반대편을 봤더니 공룡 장난감이 있었는데, 똑같은 손잡이가 머리를 관통해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 두 흔들 장난감의 정중앙을 갈라버리고, 두 개를 합쳐서 두 윤곽선이 일치하지 않는 그 측면(프로필)을 경험하게 하면 흥미로울 것 같다고 생각했다”며 “‘스플릿 로커’는 거기서 나왔다. 내 작업은 세상을 바라보고 모든 것에 열려 있는 직관에서 나온다”고 밝혔다.

한편 쿤스가 지난 2000년에 제작한 ‘스플릿 로커’는 장소를 옮겨 지난해 말 LACMA에 영구 전시됐다. 작품은 200개 이상의 스테인리스스틸로 형상을 만들고 그 위에 ‘지오텍스타일’이란 특수 섬유와 철망, 배양토를 이용해 표면을 만들어 형태를 갖췄다. 여기엔 4만5000개의 식물을 심고 작품 내부에 관개시스템을 구축해 물과 영양분을 공급할 수 있도록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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