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법 개정 후 경영진 ‘소송 공포’ 현실화…임원배상책임보험 계약 10년 새 5배↑

보험연구원 CEO리포트
임원배상책임보험 시장 과제
“질적 성장 단계로 전환해야”


임원배상책임보험 수입보험료와 계약 건수 변화 추이. [보험연구원 제공]


[헤럴드경제=박성준 기자] 디지털 전환,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확산, 규제 고도화가 동시에 진행되면서 기업 경영진의 법적·재무적 책임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다. 내부통제 실패나 감독의무 위반이 임원 개인의 법적 책임으로 연결되는 사례가 늘면서 임원배상책임보험(D&O보험)이 선택적 비용이 아닌 핵심 리스크관리 수단으로 재평가받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26일 보험연구원에서 발간한 CEO리포트 ‘기업 경영환경 변화와 임원배상책임보험 시장의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국내 D&O보험 시장은 지난 2023년 기준 672억원으로 집계됐다. 최근 10년 동안 연평균 15.5%씩 성장했다. 계약 건수도 2024년 기준 1712건으로, 2014년보다 5배 늘었다. 상장사 가입률도 2003년 31.6%에서 2023년 70% 이상으로 올랐다.

D&O보험 수요 확대의 직접적 배경으로 제도 변화가 꼽힌다. 지난해 7월 공포된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기존 ‘회사’에서 ‘회사와 주주’로 확대했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제, 대주주 의결권 제한(3% 룰)도 도입돼 이사회 독립성과 견제 기능이 강화됐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가 이사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나 배임 관련 소송을 제기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기술혁신도 경영진 책임 구조를 바꾸고 있다. 인공지능(AI)·데이터 기반 경영이 확산하면서 알고리즘 오류, 정보보호 실패, 사이버 침해 등 복합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 과거에는 기술 실패를 실무부서의 운영 문제로 인식했지만, 현재는 ‘AI 거버넌스’가 이사회 책임 영역으로 격상되면서 사이버사고나 시스템 장애가 경영진 배상책임 리스크로 전환되는 추세다. 국내 기업 사이버 침해사고 신고 건수는 2010년 53건에서 2025년 2383건으로 급증했다.

다만 상장기업 중심 구조로 인해 양적 성장에는 한계가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김동겸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향후 시장이 가입률 확대보다는 보장한도 증액, 방어비용 선지급 구조 강화, 주주 간 분쟁 담보 범위 명확화 등 보장 수준 고도화를 중심으로 재편될 것으로 전망했다. 중장기적으로는 산업안전, 개인정보 보호 책임 등 법적 책임 확대가 잠재 수요를 자극해 중견·비상장기업으로 수요 기반이 점진적으로 확산할 가능성도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시장이 양적 성장과 더불어 질적 성장 단계로 전환하려면 보험회사의 역량 강화가 선행돼야 한다고 짚었다. 현재 D&O보험은 지배구조·내부통제 등 정성적 평가 비중이 높은데도 보험사별 언더라이팅 수준 차이가 커 동일 위험군에서도 보험료와 담보조건 편차가 발생하고 있다. 재무정보 중심의 심사를 넘어 ESG 관리 체계, 사이버 대응 역량 등 비재무 위험요소까지 반영한 평가모형 구축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제도적 뒷받침도 요구된다. 현재 일정 규모 이상 상장사에 보험 가입 여부만 공시하도록 하고 있지만, 보장한도·자기부담금 등 핵심 정보는 제한적으로 공개되고 있다. 보고서는 지배구조 공시와 연계해 D&O보험이 형식적 가입에 그치지 않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봤다.

이 외에도 중견·중소기업의 시장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표준약관 마련과 상품 단순화, 자기부담금 설정을 통한 도덕적 해이 방지 등도 향후 정책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로 제시했다.

김 연구위원은 “기업 리스크의 복합화와 경영진 책임 확대는 D&O보험이 기업 지배구조와 리스크관리 체계를 보완하는 전략적 인프라로 부각되고 있다”며 “이에 상응하는 상품 고도화와 정책적 정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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