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 선택한다는 ‘착각’…자유의지는 ‘환상’이다 [북적book적]

뇌과학·신경생물학 바탕으로 ‘결정론’ 증명
인간 행동은 생물학·환경의 상호작용 결과
유전자부터 수 세기간 축적 문화로부터 영향
조현병·뇌전증 사례 “변화의 가능성 있어”


[게티이미지뱅크]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테드 창의 단편소설 ‘우리가 해야 할 일’에는 ‘예측기’라는 기계가 등장한다. 버튼과 등불이 달린 이 장치는 사람이 버튼을 누르기 1초 전에 먼저 불을 밝힌다. 사람들은 버튼을 누르지 않으려고도 해보고, 심지어 속이려 해보지만 결과는 항상 같다. 불은 언제나 먼저 켜진다. 그 순간, 우리가 스스로 선택했다고 믿었던 행동은 이미 결정된 과거가 된다.

어떻게도 피할 수 없는 예측기의 절대적인 예측능력 앞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는 무력해진다. 그리고 자연스레 의심이 떠오른다. 우리가 선택하며 살아간다고 믿는 삶이 사실은 이미 정해진 결과물인 것은 아닐까.

‘SF(Science Fiction) 거장’의 이러한 상상력은 비단 허구에 머무르지 않는다. 1983년 신경과학자 벤저민 리벳은 한 실험에서 피실험자들에게 원할 때 버튼을 누르고, 언제 누르기로 결심했는지 보고하게 했다. 이 과정에서 뇌파를 측정한 결과, 리벳은 사람들은 스스로 결심했다고 느끼기 약 300밀리초 전에 이미 뇌가 행동을 준비하고 있었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리벳의 연구는 급진적이고도 파격적인 주장이라 평가받으며 논쟁의 씨앗이 된다. 자신이 결정한 것처럼 느껴질 때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라는 주장이다.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로버트 M. 새폴스키는 저서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에서 이러한 관점을 더욱 확장해 “자유의지는 신화”라고 강하게 주장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간의 모든 행동은 생물학적 조건과 환경적 요인의 연쇄적인 결과이다. 하나의 의도는 또 다른 원인에 의해 발생하며, 그 원인은 끝없이 이어진다. 이는 마치 세계가 거북이 위에 놓여 있고, 그 아래에도 또 다른 거북이가 계속 이어진다는 이야기와 같다. 어떤 거북이도 공중에 떠 있는 채로 존재할 수 없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양병찬 옮김/문학동네


인간의 행동 역시 마찬가지다. 특정 행동은 단지 그 순간에 ‘짠’ 하고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의 경험과 신체 상태에 영향을 받는다. 예를 들어 피로가 쌓인 의사는 무의식적 편견에 더 취약해지고, 식사 시간이 지난 판사는 가석방을 덜 허가하는 경향을 보인다. 스트레스 호르몬의 증가 역시 충동적이고 공격적인 행동을 유도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태아기의 환경,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유전자, 심지어 오랜 시간 축적된 문화까지 현재의 행동에 영향을 미친다. 이 모든 요소는 개인이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새폴스키는 이러한 사실을 통해 인간이 자신의 삶을 스스로 통제하고 있다는 믿음에 반박하며, 개인의 성취나 실패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 때문이 아니라는 점을 강조한다. 결국 인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조건들의 총합일 뿐이라는 것이다.

“졸업식에 참석한 대학 졸업생과 주변 쓰레기를 수거하고 있는 환경미화원이 서로의 유전자를 갖고 태어나도록 바꿔보라”는 그의 예시는 이를 잘 보여준다. 그는 “미화원의 삶은 배고픈 상태에서 잠자리에 들거나 노숙자가 되거나 서류 미비로 추방당할 수 있는 위협이 아닌, 피아노 레슨과 가족 오락의 밤으로 가득 차야 한다”면서 “두 사람이 통제할 수 없는 요인을 모두 바꾸면, 졸업 가운을 입은 사람과 쓰레기통을 비우는 사람이 바뀔 것이다. 이것이 내가 말하는 결정론이다”고 말한다.

이러한 결정론은 중요한 윤리적 질문을 낳는다.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것들의 총합”일 뿐이고, 그에 따라 자유의지가 없다면 책임이나 도덕적 의무도 사라지는 것이 아닐까. 이에 새폴스키는 유신론자와 무신론자 중 누가 더 정직하고 관대한 행동을 하는가에 대한 연구를 바탕으로 “자유의지를 거부한다고 해서 나쁜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는 낙관적 결론에 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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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죄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새로운 접근을 제안한다. 범죄가 개인의 선택이 아니라 생물학적·환경적 요인의 결과라면, 응보적 처벌은 정당화되기 어렵다. 대신 사회는 위험한 개인을 격리하고, 재활의 기회를 제공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과거 ‘악마’가 들렸다며 처벌받고 낙인찍혔던 뇌전증이나 조현병이 오늘날 생물학적 기능장애로 밝혀져 처벌의 대상이 되지 않는 것이 이러한 ‘자유의지’에 대한 의심과 과학적 진전이 도출할 수 있는 긍정적 변화 중 하나다.

저자는 ‘가난하게 죽는 것은 당신의 책임이 아니다’는 제목의 마지막 장을 통해 미국 사회에 팽배한 능력주의를 언급한다. 그러면서 경제적 잠재력이 평등하다는 허황한 말로 가지지 못한 이들을 향해 ‘장애와 결점 등을 극복하지 못한 당연한 결과’라 믿게 만들고, 그것을 ‘개인의 실패’로 낙인찍는 사회의 위선을 꼬집는다.

그러면서 저자는 시인 모리스 로즌펠드가 작사한 노래 ‘내가 쉬는 곳’의 가사를 빗대 다시 한번 강조한다. “당신의 삶과 사랑이 졸졸 흐르는 시냇가에서 펼쳐질지, 아니면 그을음과 연기로 질식할 것 같은 기계 옆에서 펼쳐질지는 1초 전에서 백만 년 전에 일어난 사건에 의해 결정된다”라고.

저자는 ‘결정론’을 완전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현실도 함께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99%쯤은 이런 사고에 완전히 실패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단히 노력해야 한다”면서 “우리가 스스로 변화를 선택하는 것은 아니지만, 더 나은 방향으로 가는 것을 포함해 변화할 가능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강조한다.

모든 것은 결정되어 있다/로버트 M. 새폴스키 지음·양병찬 옮김/문학동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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