英 “감귤류 아니면 안돼!” vs EU “다 돼”…‘마멀레이드’ 기준 놓고 분노한 사연[나우, 어스]

새콤 달콤한 맛으로 사랑받는 오렌지 마멀레이드. 영국에서는 최근 마멀레이드 표기 변경을 두고 반발이 일고 있다. [헤럴드 DB]


[헤럴드경제=도현정 기자] 영국에서 때아닌 마멀레이드의 정의, 내지는 표기 변경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마멀레이드는 영국에서 ‘식탁 위 필수품’이라 불릴 정도로 두루 사랑받는 ‘국민 잼’. 이 명칭 내지는 표기를 바꿔야 하는 이유가 유럽연합(EU)과의 무역 활성화를 위해서라는 점이 영국 국민의 자존심을 건드린 것으로 보인다.

마멀레이드는 오렌지나 레몬 등 감귤류 과일을 껍질째 썰어 설탕을 넣어 만든 잼의 일종이다. 영국에서는 아침 식사에 자주 곁들이는 국민 식품으로, 오렌지 마멀레이드에 대한 영국인들의 사랑은 각별하다. 아동 문학으로 시작해 영화로도 만들어진 ‘패딩턴 베어’에는 가상의 곰 캐릭터 패딩턴이 마멀레이드를 좋아하는 설정도 나온다. 이런 설정은 2022년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 행사 당시 예고 영상에서도 활용됐다. 패딩턴 베어가 여왕에게 자신은 마멀레이드를 넣은 샌드위치를 비상식량으로 갖고 다닌다고 하자, 여왕이 “나도 그렇다”며 핸드백에서 마멀레이드 샌드위치를 꺼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마멀레이드가 영국인들이 그리워하는 여왕의 상징이 됐다는 분석도 있다.

지난 2022년 고(故)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즉위 70주년 기념 영상에서 여왕과 패딩턴 베어가 마멀레이드 샌드위치와 관련한 농담을 나누는 모습. 영국에서는 이를 계기로 오렌지 마멀레이드가 여왕을 떠올리게 하는 식품이 됐다. [영국 왕실 공식 유튜브 영상 갈무리]


영국에서 마멀레이드의 정의를 두고 논란이 된 것은, 유럽연합(EU)에서는 감귤류가 아닌 다른 과일로 만든 잼에도 ‘마멀레이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마멀레이드의 독일식 명칭인 ‘마르멜라데(Marmelade)’만 봐도 과일로 만든 저장 식품인 잼을 통칭하는 형태로 쓰인다. 영국이 EU를 탈퇴한 이후, EU는 회원국들이 과일의 종류를 명시하기만 하면 감귤류가 아닌 과일 스프레드에도 마멀레이드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도록 규정을 만들었다.

키어 스타머 총리가 이끄는 현 정부는 EU와 관계를 개선하고 무역도 늘리기 위해 식품 표기법도 EU 규정에 맞추려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이에 따르면 영국에서는 ‘마멀레이드’라고만 표기해도 됐던 것들을 앞으로는 ‘감귤류(citrus) 마멀레이드’라고 표기해야 한다.

이를 두고 영국 여론은 EU의 경직된 관료주의가 자국의 국민 식품의 권위를 훼손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AP통신에 따르면 야당인 보수당의 프리티 파텔 외교 대변인은 “스타머 정부가 위대한 영국의 마멀레이드를 공격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민주연합당의 짐 섀넌 의원은 “EU의 라벨링 규정이 우리 제품을 간섭하는 사례”라고 규탄했다. 영국 언론 데일리메일은 이달 초 마멀레이드 명칭 논란에 대해 “패딩턴이 뭐라고 생각하겠느냐”는 평론을 싣기도 했다.

영국이 EU의 규정을 따를 게 아니라, 감귤류가 아닌 다른 과일로 만든 잼에도 ‘마멀레이드’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게 한 EU의 규정을 고쳐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영국 국민 식품의 정체성을 보호해야 한다는, 다소 민족주의적인 발상에서 나온 주장이다.

자유민주당의 테사 먼트 의원은 한 고급 식료품점에서 딸기 마멀레이드나 배 마멀레이드를 팔고 있다며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그런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분노했다. 먼트 의원은 정부가 “마멀레이드라는 단어 앞에는 오렌지 등 감귤류 과일 이름만 올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고 촉구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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