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1700여개 협력사 궁지로…삼전 노조 연대 가치 되새겨야


“우리는 뭐 먹고 삽니까.”

평택 삼성캠퍼스 P4·P5팹 건설현장에는 해도 뜨지 않은 새벽에도 대낮같다. 하루라도 더 벌기 위해 인부들은 늘 조기출근을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달 23일, 현장은 유독 한산했다. 삼성전자 노조 총파업 결의대회로 8차선 도로가 막히면서 공사 차량과 출근 버스 진입이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결국 적지 않은 협력업체가 하루 휴무를 택했다.

한 인부는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데, 배부른 줄 모르는 노조 때문에 일당 15만원이 날아갔다”며 허탈해했다. 공사 현장 인근에서 노점을 하는 부부는 매일 오후 10시부터 새벽 3시까지 김밥 수백 줄을 싼다. 하지만 이날엔 다 못 팔고 돌아갔다. 삼성전자 직원의 출근길을 책임지던 택시기사는 도로 통제로 이날 10만원도 못 벌었다. “300만원 벌려면 한달 내내 하루 10시간, 화장실도 못가고 죽어라 일해야 된다”며 푸념했다. 그 반대편에서는 성과급 상한 폐지와 약 40조원이 넘는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써야한다고 삼성전자 노조 4만명이 모였다.

평택 고덕신도시는 ‘삼성에 살고 삼성에 죽는다’는 말이 과언이 아닐 정도로 삼성 의존도가 높은 지역이다. 반도체가 호황이면 평택도 살고, 반도체가 불황이면 평택도 흔들린다. 공장을 짓기 위해 전국에서 인부들이 유입되니 김밥 노점도 생기고 한식뷔페도 생기고 원룸도 들어선다. ‘낙수효과는 끝났다’고 하지만 적어도 평택에선 아직 유효하다. 삼성전자 공사 현장의 불빛 하나가 수십만 평택 시민을 먹여살리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일대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건 ‘셧다운의 기억’이다. 삼성전자는 2023년 반도체 불황 당시 P4·P5 공사를 사실상 멈췄다. 인부들이 빠져나가자 식당은 줄폐업했고, 상가와 건물 상당수가 경매로 넘어갔다. 당시 나온 경매 물건은 아직도 남아 있다. 지역 상인들이 노조 파업 소식에 불안해하는 이유다. 혹시 또 공사가 멈추고, 사람들이 떠나고, 도시 전체가 얼어붙는 것 아니냐는 공포다. 한 음식점 사장님은 “이번에 망하면 진짜 못 일어난다. 이 상황에서 몇억 달라는 건 집단 이기주의 아니냐”고 토로했다.

이번 총파업의 충격은 반도체 생태계로도 뻗친다. 라인이 멈추는 순간 가장 먼저 타격을 받는 곳은 납품 물량이 끊기는 협력업체들이다. 그곳에서 일하는 비정규직·파견·용역 노동자들 역시 생계의 불안을 떠안게 된다. 삼성전자 지속가능경영보고서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삼성전자와 연결된 1·2·3차 협력사는 1700여개에 달한다.

만약 노조가 끝내 타협 없이 총파업을 강행한다면 국가 핵심 산업 전체가 흔들릴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클린룸 환경이 무너지는 순간 공정 중이던 웨이퍼는 전량 폐기물로 변한다. 실제로 2018년 단 28분이 멈췄 평택 공장 정전사고는 500억원의 손실을 불렀다. 이를 하루 단위로 환산하면 약 2조6000억원, 노조가 예고한 18일간의 파업이 현실화할 경우 최대 20조~30조원이라는 천문학적 피해가 예상된다. 국가 전체로 봤을때 피해가 얼마나 커질지는 가늠조차 하기 어렵다.

삼성전자 노조는 결의대회에서 “반도체 세계 1위를 만든 건 조합원의 헌신 덕분”이라며 “18일간의 파업 기간으로 18조원 가까운 공백이 생긴다. 이것이 숫자로 보일 수 있는 우리의 가치”라고 설명했다. 노조의 셈법은 틀렸다. 협력업체 직원들의 월급이, 하청업체의 생존이, 지역민의 생계가 빠졌다. 손실에는 삼성전자 협력사, 하청업체, 지역사회, 국민의 피와 땀과 눈물이 포함돼야 한다. 이 모든 것을 포함한 손실은 수백조원에 달할 것이다.

생존권을 볼모로 잡는 투쟁에 박수 칠 이는 없다. 공동체의 고통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몫만 요구한다면, 노조 역시 시장과 국민으로부터 냉정한 고지서를 받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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