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과학칼럼] 기술사업화 성공의 조건


우리나라 공공연구기관의 기술사업화 정책은 오랫동안 ‘기술이전 확대’에 초점을 맞춰 발전했다. 실제 많은 연구기관은 기술이전 계약 건수, 기술료 수입, 특허 확보 등의 지표를 중심으로 사업화 역량을 평가받는다. 이런 성과는 공공 연구성과의 산업적 활용이라는 측면에서 분명 중요한 의미가 있다. 그러나 현장에서 기술사업화를 수행해보면 진정한 사업화의 어려움은 기술이전 계약 자체보다 그 이후 단계에 훨씬 더 크게 존재한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된다. 특히 최근 인공지능(AI), 반도체, 소프트웨어와 같은 첨단 기술 분야에서는 특허와 기술문서만으로 기업이 곧바로 제품과 서비스를 완성하기 어렵다. 연구성과에는 논문이나 특허에 담기지 않는 수많은 암묵지가 존재해서다.

결국 기술사업화의 핵심은 단순한 ‘기술이전’이 아니라 연구자와 기업이 함께 기술을 발전시키고 시장에 적용해가는 ‘공동 성장(Co-creation)’에 있다. 기술이전 계약 이후에도 연구자와 기업이 지속해서 협력하며 기술을 개선하고 시장 요구에 맞게 보완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실제로 많은 기업이 기술이전을 받은 이후 가장 어려움을 겪는 부분도 바로 이 지점이다. 기술의 원리를 이해하는 것과 이를 시장에서 안정적으로 구현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기 때문이다.

해외 선진 연구기관들은 오래전부터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인식하고 산·연 협력 기반의 기술사업화 체계를 발전시켜왔다. 독일 프라운호퍼 연구회는 기업과 공동연구실 및 응용연구센터를 운영하며 연구자와 기업이 장기간 함께 기술을 개발하고 사업화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다. 대만의 ITRI 역시 오픈랩과 공동 프로젝트 체계를 통해 기업이 기술개발 초기 단계부터 참여하게 하며, 연구자들이 사업화 과정 전반에 지속 관여하는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기관들은 단순한 기술이전 계약보다 ‘협력 생태계 구축’을 기술사업화의 핵심 경쟁력으로 인식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이젠 기술사업화 정책의 중심축을 단순한 기술이전 건수 중심에서 ‘사업화 성공 중심’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공공연구기관과 기업이 공동으로 실증을 수행하고, 연구자가 기업 현장에 직접 참여하며 기술성숙도 향상과 시장검증을 함께 추진하는 구조가 더 강화돼야 한다. 특히 공공기술 분야에서는 연구·개발(R&D)과 사업화 사이 존재하는, ‘죽음의 계곡(Valley of Death)’을 극복하기 위한 후속 스케일업 R&D와 지속적인 산·연 협력체계가 필수다. 필자가 몸담은 연구원 또한 이러한 방향에서 ‘연구성과 확산 통합전략 체계(e-STAMP)’를 기반으로 기술사업화 혁신을 추진하고 있다. e-STAMP는 단순한 기술이전을 넘어 연구자·기업·사업화 지원조직이 함께 참여해 기술의 스케일업, 실증, 시장 연계, 후속 협력까지 이어가는 협력형 사업화 플랫폼이다. 기술이 연구실을 나오는 순간 사업화가 끝나는 것이 아니라 시장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창출할 때까지 연구자와 기업이 협력하는 구조를 만들어가고자 하는 것이다.

기술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일수록 진정으로 중요한 것은 연구성과가 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활용되고 새로운 시장과 산업을 창출하며 국가경쟁력으로 이어지는 선순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이제 기술이전은 ‘기술사업화의 끝’이 아니라 ‘협력의 시작’이라는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공공기술의 미래 경쟁력 역시 바로 그 지점에서 결정될 것이다.

신정혁 ETRI 사업화본부장IT과학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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