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볼 수도 없던 벽, 이제 넘는다”…아비뇽이 선택한 한국어

제80회 아비뇽 페스티벌 초청언어 한국어
‘작별하지 않는다’ 낭독, 한강 작가도 참가
이자람, 구자하 등 9개 작품 세계 무대로

 

이자람 ‘눈, 눈, 눈’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 “저로서는 바라볼 수도 없는 벽이었어요. 정말 감개무량합니다.” (안무가 허성임)

올해로 80회를 맞는 세계 공연 예술 축제인 아비뇽 페스티벌에 한국어가 ‘올해의 초청언어’로 선정, 페스티벌로 향하게 된 한국의 예술가들이 저마다 벅찬 소감을 전했다. 한국어의 선정은 아시아 최초, 단일 국가 언어로도 최초이자 유일한 사례다.

김장호 예술경영지원센터 대표는 최근 기자들과 만나 “한국어를 기반으로 창작되는 동시대 공연예술의 창조성과 다양성이 국제적으로 주목받고 있다는 점, 한국 예술가들의 뛰어난 역량과 동시대적 감각이 국제적으로 의미 있게 평가받고 있다는 방증”이라고 밝혔다.

아비뇽 페스티벌의 ‘초청 언어’ 프로그램은 특정 언어권의 예술과 문화를 집중 조명하는 프로그램이다. 2023년 영어, 2024년 스페인어, 2025년 아랍어에 이어 올해 한국어가 네 번째 초청언어로 선정됐다.

이번 페스티벌(7월 4~25일까지)에서 한국어가 선정되며, 한국 작품 역시 총 9편의 작품이 공식 프로그램에 초청됐다. 한국 작품의 공식 초청은 1998년 ‘아시아의 열망’ 이후 28년 만이다.

‘눈, 눈, 눈’(7월 17~22일, 오페라 극장)으로 아비뇽에 향하게 된 소리꾼 이자람은 “이전에 창작판소리로 아비뇽 오프에 참여했다”며 “그때 맨날 밤에 교황청 담벼락에 앉아서 인(공식 초청) 공연들 얘기를 나누며 ‘우리는 언제 ‘아비뇽 인’에 올 수 있을까’ 맨날 물었다”며 지난 시간을 돌아봤다.

크리에이티브 바키를 이끄는 이경성 연출가는 ‘섬 이야기’(7월 4~6일, 오바넬 극장)로 아비뇽에 향하며 22년 전 기억을 꺼냈다. 그는 “2002년 대학 1학년 여름방학에 처음 아비뇽에 갔다”며 “저녁에 로마 황제 광장에서 맥주를 마시다 파리에서 경제학을 하다가 연극을 하겠다고 내려온 마임 아티스트를 만났다. 22년 만에 공연을 가지고 가게 되는데, 그 친구가 어디선가 또 잘하고 있으면 좋겠다”고 들려줬다.

제 80회 아비뇽 페스티벌에 참석하는 한국인 예술가들 [예술경영지원센터 제공]

아비뇽에서 선보일 작품들은 한국 공연예술의 다양한 진폭을 보여준다.

교황청 극장에서 올릴 메인 공연은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7월 15~16일)를 낭독하는 초연작 ‘새’다. 한국 배우 이혜영과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가 참여한다. 유럽 공연계가 주목하는 구자하 연출가는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 ‘하리보 김치’ 등 세 작품을 올린다.

이자람은 톨스토이 원작 창작판소리 ‘눈, 눈, 눈’을 선보인다. 그는 “판소리는 관객의 상상력과 제 상상력이 함께 힘을 쓰는 장르”라며 “각자의 상상력을 그 순간 얼마큼 힘을 쏟는가에 따라 저마다 다른 기억이 적힌다”는 말로 프랑스 무대에서의 소감을 대신했다.

‘코끼리들이 웃는다’의 ‘물질’은 제주 해녀와 난민을 연결한 작품이다. 이진엽 연출가는 “해녀의 숨, 노동, 생존의 감각은 난민 커뮤니티 삶과 연결됐다”며 작품을 소개했다. 크리에이티브 바키의 ‘섬 이야기’는 제주공항 활주로 아래 4·3 유해 발굴 이야기다. 이경성 연출가는 “70년 전 갑자기 사라진 아버지, 그 70년을 어떻게 견뎠는지 함께 돌아본다”고 했다.

현대무용가 허성임의 ‘1도씨’는 10살 아들과의 대화에서 출발해 기후위기라는 전지구적 문제를 다룬다. 그는 “무거울 수 있고, 회피하고 싶은 주제일 수 있다. 아들에게 가장 큰 걱정이 뭔지 물었을 때 기후 온난화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들이 ‘우리는 조금 더 걸어야 돼요. 걷는 것부터 시작을 해야 돼요’라고 말한 것에서 영감을 받아, 몸이 자연의 몸에서 산업화의 몸으로, 걷는 패턴을 통해 어떻게 변화하는지를 다뤘다”고 말했다. 리퀴드 사운드의 ‘긴: 연희해체프로젝트 I’은 전통 연희자의 몸이 현대 무대에서 어떻게 존재할 수 있을까를 묻는다.

한강 작가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의 낭독 공연 ‘새’에 출연하는 프랑스 배우 이자벨 위페르 [Christophe RAYNAUD DE LAGE]

페스티벌을 총괄하는 티아고 호드리게스 예술감독은 “한국어에서 역사적 유산과 생동하는 동시대 창작을 발견했다”며 “한국 공연예술에서 매혹적이었던 것은 전통과 역사 사이의 대화를 어떻게 수립하는가였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한국 공연예술은 전통과 혁신, 과거와 현재, 역사와 미래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라며 “지금 한국 사회와 예술의 단면을 가장 잘 보여줄 작품을 소개하고자 했다”고 말했다.

‘한국어’가 공통 언어로 초청됐으나, 이번 페스티벌엔 한국어의 ‘말맛’을 더 잘 드러낼 전통 연극은 포함되지 않았다.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은 “규모 면에서 아쉬운 부분도 있지만 한국 미학의 새로운 면을 보여주는 작품을 선정하는 데 주력했다”며 “텍스트를 토대로 하지 않더라도 새로운 경향의 연극으로 볼 수 있는 작품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한국 공연예술은 어떤 맥락에서 세계와 만나야 할 것인가가 첫 질문이었다”며 “지속 가능한 교류 창대를 만들고자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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