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성능 전기차 ‘가상 변속’에 꽂히다

현대차 ‘아이오닉 5 N’에 기술 적용
진동·소리로 전기차에 엔진 느낌
포르쉐·BMW·페라리 도입 긍정적
고성능EV 화두 ‘운전 재미’로 각광


현대차 아이오닉 5 N에 적용된 ‘N e-쉬프트’ 기능(빨간색 원). N e-쉬프트는 실제 변속기가 없는 전기차에서 소프트웨어로 변속감과 사운드를 구현해 고성능 주행감을 높이는 기술이다. [현대차 제공]


전기차 시대에 사라질 것으로 여겨졌던 ‘변속감’이 고성능 전기차 시장의 새 경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현대자동차가 고성능 전기차 ‘아이오닉 5 N’에 적용한 가상 변속 기술이 내연 기관 이상의 운전 재미를 부각시키는 해법으로 주목받으면서 이를 벤치마킹하려는 글로벌 고성능 브랜드들의 움직임도 감지된다.

10일 외신 및 완성차 업계에 따르면 포르쉐는 현대차의 가상 변속 기술 도입을 검토 중이다. 포르쉐 대변인 벤 와인버거는 지난달 말 자동차 전문매체 카세일즈와의 인터뷰에서 현대차의 가상 변속 기술에 관해 “관심 있게 살펴보고 있는 기술”이라며 “매우 흥미롭다. 솔직히 현대차가 정말 잘했다”고 호평했다.

포르쉐가 언급한 기술은 현대차가 아이오닉 5 N과 아이오닉 6 N에 적용한 ‘N e-쉬프트’다. 실제 다단 변속기가 없는 전기차에서 소프트웨어로 변속감과 사운드를 구현하는 기능이다. 운전자는 스티어링휠 뒤쪽 패들시프트를 조작해 가상의 업시프트와 다운시프트를 경험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인위적인 회전수 제한, 순간적인 출력 단절, 가상 엔진 회전수와 기어 단수에 맞춘 실내외 사운드가 함께 작동해 내연기관 고성능차의 듀얼클러치 변속기와 유사한 감각을 만든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뗄 때 들리는 후연소·버블링 사운드, 고출력 주행 중 업시프트 순간 터지는 ‘뱅’ 사운드도 몰입감을 높인다. 주행 모드에 따라 변속 로직이 달라져 운전자는 상황별로 다른 변속감과 소리를 체감할 수 있다.

전기차는 일반적으로 단일 감속기를 사용하기 때문에 내연기관차처럼 변속 충격이나 엔진 회전수 변화가 없다. 정지 상태에서 곧바로 강한 토크를 내는 점은 장점이지만, 일부 운전자들은 속도 변화에 따른 조작감과 몰입감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현대차는 이 지점을 파고들었다. 단순히 가속 성능을 높이는 대신 운전자가 차량과 상호작용한다고 느끼게 만드는 데 초점을 맞췄다.

처음에는 ‘가짜 변속’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하지만 아이오닉 5 N 출시 이후 분위기는 달라졌다. 해외 자동차 전문매체와 운전자들 사이에서 “전기차에서도 운전 재미를 살렸다”는 호평이 이어졌고, 더 나아가 포르쉐 등 일부 브랜드가 공개적으로 관심을 드러냈다.

아이오닉 5 N은 2023년 현대차 고성능 브랜드 N이 선보인 첫 전용 전기차다. 현대차가 월드랠리챔피언십(WRC) 등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축적한 데이터와 ‘롤링랩’으로 검증해 온 고성능 전동화 기술이 집약된 모델로, 단순히 빠른 전기차를 넘어 트랙 주행과 운전 재미를 동시에 구현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N e-쉬프트 역시 이런 방향성에서 나온 기술로, 전동화 시대에도 운전자가 차량과 적극적으로 교감할 수 있도록 한 대표 기능으로 평가된다.

포르쉐는 현대차 기술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와인버거 대변인은 “아직 결정된 것은 없다”면서도 “만약 도입한다면 포르쉐다운 해법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포르쉐가 향후 전기 718 박스터·카이맨 등에 유사한 기능을 적용할 가능성이 거론된다.

자체 가상 변속 시스템과 사운드 개발이 추진될 경우, 기존 스포츠카에서 느낄 수 있었던 엔진음과 변속감을 전기차 방식으로 구현하고 포르쉐의 상징으로 꼽히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음도 재해석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포르쉐 카이엔 일렉트릭 완성차 매니저인 마이클 헤드윅도 최신 전기차 모델에 가상 변속 기능이 추가될 가능성에 대해 “고객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들어볼 것”이라고 말했다.

현대차의 가상 변속 기술에 관심을 보이는 곳은 포르쉐만이 아니다. BMW는 차세대 전기 M 모델에 자체적인 가상 변속 기능을 적용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페라리도 전기차에서 패들을 활용해 회생제동과 토크 전달 방식을 조절하는 방향을 검토 중이다. 방식은 다르지만 고성능 전기차에서도 운전자가 차를 ‘조작하고 있다’는 감각을 되살리려는 시도라는 점에서는 맥을 같이한다.

업계 관계자는 “아이오닉 5 N은 현대차가 전기차에서도 운전 재미를 구현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 첫 사례”라며 “과거에는 포르쉐, 페라리, BMW M 등이 고성능차의 기준을 제시했다면, 전기차 시대에는 현대차의 해법을 전통 스포츠카 브랜드들이 참고하는 상황이 만들어진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현대차는 지난 2024년 ‘아이오닉 5 N’이 ‘월드카 어워즈’에서 세계 올해의 고성능 자동차에 선정된 데 이어 지난 4월 현대차 아이오닉 6 N이 다시 한 번 수상자 명단에 이름을 올리는 등 글로벌 고성능 전기차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했다.

정경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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