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인천상륙작전의 병사들. [사진=인천상륙작전기념관] |
[헤럴드경제=김현경 기자] “아무 일도 없었다고 해도, 원인은 반드시 존재한다. 전쟁은 우연이 아니라 결과다. 그 근원을 찾으려면 더 오래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영국 소설가 엘리자베스 보웬의 말처럼 6·25 전쟁의 비극은 단순한 군사적 충돌이나 우발적 사건의 차원을 넘어 치밀하게 얽힌 역사의 인과 관계가 응축돼 터져 나온 산물이었다.
한국 전쟁의 전세를 단번에 뒤바꾼 ‘인천상륙작전(크로마이트 작전)’은 그간 더글러스 맥아더라는 영웅의 직관이 만들어 낸 승리 신화로 이야기돼 왔다. 하지만 정치·안보 전문기자 출신인 김주환은 신간 ‘위기에서 승리로: 크로마이트 작전의 비사’에서 이 성공 신화를 거시사에서 미시사로 옮겨 온다. 1950년 여름과 가을 사이 가장 긴박했던 80일간을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미시적으로 재구성해 비극의 실체를 파헤친다.
저자는 한국 전쟁 개전 초기 80일을 ‘고통의 40일’과 ‘반격의 40일’이라는 두 축으로 나눠 살핀다.
전반기 40일은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남침 이후 밀려오는 조선인민군을 상대로 버티기 위해 지연 작전을 벌인 시기다. “공간을 내주고 시간을 번다”는 군사 전략이 얼마나 처절한 희생을 바탕으로 성립됐는지 구체적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후반기 40일은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하며 전세를 역전시키기 위해 워싱턴과 도쿄, 한반도의 산야에서 극비리에 크로마이트 작전을 설계하고, 실행에 옮긴 반격의 시기다. 저자는 이 두 시기를 유기적으로 연결하며 낙동강에서의 고통스러운 버팀이 없었다면 인천에서의 화려한 승리 또한 존재할 수 없었음을 서술한다.
책은 크로마이트 작전이 실행되기까지 군 수뇌부에서 벌어진 격렬한 대립을 그대로 드러낸다. 작전 수립 과정은 합리성과 직관이 충돌하는 치열한 정치의 장이었다.
당시 미국 합동참모본부 차장이었던 매튜 리지웨이를 비롯한 워싱턴의 군부 엘리트들은 인천상륙작전을 강하게 반대했다. 조수간만의 차가 최대 10m에 달하고, 상륙 가능 시간이 한 달에 단 몇 차례뿐이며, 배가 갯벌에 갇히면 전멸할 위험이 크다는 데이터가 그 근거였다. 리지웨이는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확률을 골프의 홀인원 확률인 3000분의 1보다 낮은 5000분의 1이라 혹평하며 반대했다.
반면 극동군 사령관 맥아더는 “적이 불가능하다고 믿기에 오히려 허점을 찌를 수 있다”는 역발상적 직관으로 맞섰다. 그는 “민주주의를 위한 군대는 있어도, 군대 내에 민주주의는 없다”는 말로 참모들의 반대를 잠재우며 작전을 밀어붙였다. 만약 실패했다면 한반도는 물론 아시아의 안보 지형이 뒤바뀌고, 미국의 위상도 달라질 수 있었던 위험한 선택의 순간이 긴장감 있게 그려진다.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매섭게 작전을 비판했던 리지웨이는 1951년 4월 맥아더가 해임되자 후임 유엔군 총사령관으로 임명돼 자신이 반대했던 작전으로 지켜낸 전선을 직접 책임지게 된다.
작전 수립 과정에서 인천을 상륙 지점으로 맥아더에게 주지시킨 사람들은 전 일본 육군 정보부장 아리스에 세이조 중장과 그가 이끈 ‘대(對)연합군 육군연락위원회’였다는 점은 흥미롭다. 또한 정보가 완전히 통제된 기습이었다는 기존의 서사와 달리, 김일성 역시 유엔군의 인천 상륙 가능성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다고 저자는 이야기한다.
![]() |
책은 거물급 장성들의 영웅전에만 머물지 않고, 피비린내 나는 전장에서 직접 싸운 병사들의 헌신도 조명한다. 특히 낙동강 방어선을 사수할 수 있었던 데에는 어린 학도병들의 공이 컸다.
아울러 전쟁 과정에서 나타난 참상, 특히 양민 학살의 비극을 서술한다. 1952년 한국 정부 공보처 통계국이 발간한 ‘6·25 사변 피살자 명부’에 따르면, 당시 남한에서 희생된 민간인 수는 총 5만9964명에 이른다. 노근리 학살 사건, 국민보도연맹 사건, 대전형무소 학살 사건 등 좌파와 우파를 가리지 않고 권력을 잡으면 상대편을 무차별적으로 처형하는 악순환이 반복됐다.
저자는 인천상륙작전을 중심으로 전쟁을 다룬 뒤 후반부에서는 한반도의 분단과 한국 전쟁의 근원을 추적한다. 광복 이후 미국과 소련이라는 두 강대국의 편의에 따라 남북을 가르는 38선이 그어졌고, 한국 전쟁 이후에는 휴전선으로 경계가 바뀌어 이어지고 있다.
한국 전쟁으로부터 70여 년이 지난 현재, 평화가 지속되고 전쟁을 직접 겪었던 세대가 점점 사라지면서 그 기억이 희미해졌지만, 저자는 오히려 기강 해이를 경계한다. 그는 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이제 우리는 ‘전쟁은 어떻게 시작되는가’, ‘평화는 어떻게 유지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성찰해야 한다”고 절절하게 외친다.
위기에서 승리로/김주환 지음/아시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