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과 헤어질 결심’ 약물 회복자들이 6.26㎞를 달린 이유 [세상&]

남경필 전 지사가 이끄는 ‘은구’의 마라톤 대회
마약 끊고 회복하는 이들 모여 6.26㎞ 달리기
“숨기지 말고 함께 끝까지 단약 포기하지 말자”

지난 27일 마약 문제 해결에 뜻을 모은 시민단체 및 약물 회복자들이 경기 성남시 판교 탄천 인근에 모여 마라톤 행사를 진행했다. 김도윤 기자.


[헤럴드경제=김도윤 기자] “저는 필로폰 중독자입니다. 한때는 ‘나는 상장 폐지된 주식이 아닐까’, ‘마약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 아닐까’ 하며 삶을 포기하려 했습니다. ‘한 번 뽕쟁이(마약 중독자)는 평생 뽕쟁이’라고 생각했던 부모님도 이제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저를 응원하고 계십니다. 저는 약에서 벗어나기 위해 끝까지 포기하지 않겠습니다”

마약을 끊은 지 10개월째인 A(26) 씨는 자신의 과거를 숨기지 않았다. 고등학교 1학년 호기심으로 시작한 필로폰은 그의 삶을 무너뜨렸지만 이젠 중독을 인정하고 회복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마약에서 벗어나겠다”는 다짐을 안고 마라톤 출발선에 섰다.

지난 27일 오전 경기 성남시 분당구 황새울공원 앞에는 80여 명이 모였다. 마약 예방·치유단체 은구(NGU)가 마약 퇴치의 날(6월 26일)을 맞아 마련한 행사다. 마라톤 코스는 마약퇴치의 날을 상징하는 숫자를 따 6.26㎞로 정했다. 순위를 겨루기 위한 대회가 아니었다. 조금 늦더라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결승선을 통과하는 것 자체가 이날 행사의 의미였다.

남경필 은구 대표(전 경기도지사)와 한때 마약에 손을 댔던 장남 남주성 씨를 비롯해 마약 문제 해결에 뜻을 모은 시민들과 단약 회복자들이 함께했다.

인천다르크(마약중독 회복 공동체), 부산 NA(마약회복자 자조모임), 제주순오름치유센터 등 회복 공동체와 가수 돈스파이크·범키, 개그맨 이성미, 대학을 위한 마약 및 중독예방센터 답콕(DAPCOC), 조성남 전 서울시 마약관리센터장 등이 발걸음을 보탰다.

작곡가 겸 가수 돈스파이크가 6.26km 마라톤 결승선을 통과하고 있다. 남경필 은구 대표는 이날 결승선에서 완주한 참가자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응원의 메시지를 전했다. 김도윤 기자.


오전 9시 출발 신호가 울리자 참가자들은 탄천을 따라 달리기 시작했다.

2㎞를 넘어서자 이마와 티셔츠에는 땀이 맺혔다. 숨이 차오르기 시작하는 구간이었다. 걸음을 늦추는 참가자들도 하나둘 생겼지만 누구도 혼자 두지 않았다. 한 회복자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자 다른 참가자가 “같이 가요”라며 속도를 맞춰줬다.

앞서 완주한 참가자들은 결승선에서 뒤이어 들어오는 참가자들을 맞으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오전 10시30분께 마지막 참가자가 결승선을 통과하자 박수가 터져 나왔다. 참가자들은 함께 기념사진을 찍으며 “이노마”를 외쳤다.

‘이노마’는 ‘이젠 노(No) 마약’을 뜻하는 구호다. 단체 이름인 은구(NGU·Never Give Up)에도 약물 중독 사실을 숨기지 말고 도움을 요청하며 끝까지 회복을 포기하지 말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

지난 27일 오전 9시 ‘은구런’ 마라톤 참석자들이 출발 신호와 함께 힘차게 달리고 있다. 김도윤 기자.


초등학교 5학년 아들의 아버지인 김하람(38) 씨도 이날 가족과 함께 행사장을 찾았다.

그는 “미국에서 12년 동안 살면서 마약이 얼마나 쉽게 퍼지는지 직접 봤다”며 “한국을 포함해 전 세계에서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시대엔 마약으로부터 안전한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 아들과 함께 뛰었다”고 말했다.

야탑 만나교회 성도 20여 명과 함께 참가한 이바울(35) 씨는 “인생 첫 러닝을 뛰러 왔다”며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행사인 것 같아 참여했다. 최근 넷플릭스 ‘참교육’을 보면서도 느꼈지만 10대 마약 문제는 한국에서 더 이상 쉽게 여겨서는 안 될 문제 같다”고 말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처음 대마초를 접한 뒤 필로폰 중독으로 이어졌던 회복자 이경우(55) 씨는 현재 단약 1년 6개월째다. 그는 여러 차례 재발과 교도소 생활을 겪은 끝에 회복 공동체의 도움으로 다시 일상을 되찾고 있다.

이 씨는 “단약은 마음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며 “옆에서 붙잡아 주고 응원해 주는 사람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회복자 모임과 공동체가 없었다면 지금도 혼자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7일 조성남 전 서울시 마약관리센터장이 약물 회복자를 응원하고 마약 예방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열린 마라톤 행사에 참여해 함께 달리고 있다. 김도윤 기자.


조성남 전 서울시 마약관리센터장은 “마약 중독은 처벌만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 치료가 필요한 질병”이라며 “치료를 빨리 시작할수록 회복 가능성도 높아지고 회복 과정에서 건강한 생활 습관을 만들며 이전보다 더 나은 삶을 살아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날 56분 만에 마라톤을 완주한 남경필 대표의 장남 주성(35) 씨는 출발 2시간부터 공원을 미리 찾아 행사를 준비했다. 그는 “지난 4월에는 혼자 뛰었는데 오늘은 많은 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느낌이 많이 달랐다”며 “혼자보다 함께할 때 더 힘이 난다는 걸 다시 느꼈다”고 말했다.

이어 “저 역시 아직 회복 과정에 있다”며 “매일 운동하고 기도하고 제 일에 집중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은구를 통해 한국과 전 세계 마약 문제 해결에 기여하고 싶다”고 덧붙였다.

은구는 이날 마라톤 행사를 통해 거둔 수익금을 국내 최초 마약중독 치료 전문병원 설립을 위한 후원금으로 사용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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