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반세기 전 ‘비핵화 공동선언’ 막전막후…남북 32차례 치열한 협상

남측 건넨 김일성 사진 실린 신문 찢은 북측 대표단 당황
북, 한미 팀스피리트 훈련 겨냥 ‘강도’ 비난
“북한 지연전술,한국 협상력 부재로 성과 제한”

 

통일부는 1990년대 서른 두차례에 걸쳐 진행된 남북 당사자 간 핵 문제 협상 과정 기록 문서를 30일 공개했다. [통일부 제공]

[헤럴드경제=문혜현 기자] 1990년대 초반 남북은 핵무기 사용·제조를 금지하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에 합의했지만, 서른두 차례의 치열한 협상을 거치고도 상호 핵 사찰에 대한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특히 북측은 당시 한미의 대규모 연합군사훈련인 ‘팀스피리트’를 문제 삼았는데, 사실상 ‘핵전쟁 연습’으로 규정하고 ‘강도’라고 표현하는 등 거친 언사를 사용했던 것으로 확인됐다.

통일부는 이 같은 내용의 1990년대 초 남북 간 핵 문제 협의 자료를 30일 공개했다. 해당 자료는 1991년 12월부터 1993년 1월까지 남북 간 핵 문제 협상 과정을 기록한 문서로, 3836쪽에 달한다.

남북은 1991년 12월 31일 핵 문제 협의를 위한 제3차 대표 접촉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 6개 항에 합의·가서명하고 3개항의 남북공동발표문까지 발표했다.

후속 조치로 국방부는 1992년 1월 팀스피리트 훈련 중단을 발표했다. 당시 김일성 북한 주석은 우리 대표단 면담에서 “공동선언 발표는 평화와 통일 지향에 획기적인 이정표”라며 “우리는 핵무기가 없고, 만들지도, 만들 필요도 없다. 동족을 말살시킬 핵무기 개발은 상상할 수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후 북한은 주한미군 주둔과 훈련을 문제 삼아 핵무기 상호 사찰을 거부하며 협정 서명·비준을 지체하기 시작했다. 또 팀스피리트 훈련 재개를 두고선 “신성한 조선땅에서 핵전쟁 연습을 하겠다는 게 강도”라고 비난했다.

결국 양측은 최종 미합의 상태로 논의를 마쳤다.

같은 해 12월 핵통제공동위 제13차 회의에선 공로명 남측 위원장이 김 주석과 스탈린의 사진이 게재된 우리측 신문을 건네자 최우진 북측 위원장이 “그런 건 가져가라”며 사진을 찢었다.

이에 공 위원장이 “위대한 지도자 사진인데, 왜 찢느냐”고 말하자 최 위원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이 크게 당황하면서 “완전히 도발”이라고 반발하는 등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공개된 문서는 당시 남북한 당사자 해결 원칙에 따라 비핵화 협상 원칙과 북한의 우라늄 농축 시설 포기,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의 내용을 담고 있다”며 “공동선언 이행 협의 과정에서 핵 문제 협의 과정과 검증 대상, 사찰 대상에 대한 입장차로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결과적으로 대화는 중단됐고 최종협상은 결렬됐다”며 “당시 이례적으로 남북 간에 핵 문제가 수십차례 논의됐다. (다만) 북측의 비타협적인 자세와 지연 전술, 우리 측의 협상력 부재로 성과가 제한적이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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