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력과 능력 밖 ‘우연’과 ‘운’의 역할 간과
“능력주의 사회 속 삶은 은밀한 복권같아”
![]() |
| [게티이미지뱅크] |
[헤럴드경제=손미정 기자] 2015년, 당시 13살이었던 소녀는 오빠와 함께 만든 곡 하나를 스트리밍 플랫폼 ‘사운드클라우드’에 올렸다. 대단한 목적이 있었던 건 아니다. 안무용으로 쓸 생각으로, 댄스 선생님에게 곡을 들려줄 가장 손쉬운 방법이었을 뿐이다.
‘오션 아이즈(Ocean Eyes)’라는 제목의 이 노래는 예상치 못한 반향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재생 횟수는 100회에서 1000회로, 다시 수만 회로 순식간에 불어났다. 별 뜻 없이 올린 노래 한 곡이 전 세계에 퍼져나갔고, 소녀는 하루아침에 ‘월드 스타’가 됐다. 그녀의 이름은 빌리 아일리시. 현시점 가장 유명한 팝스타 중 한 명인 그의 성공은 운일까, 노력일까, 아니면 실력일까.
‘무에서 유가 창조되지 않는다’, ‘노력은 성공의 밑거름이다’. 인생에서 우리는 이런 류의 이야기를 수없이 들으며 살아간다. 자기계발서는 물론 예능에도 밑바닥에서 시작해 자수성가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넘쳐난다. 그렇듯 사회는 끊임없이 ‘성공’을 선전하고, 그것에 도달하는 방법이 오롯이 ‘당신의 노력’에 있다고 반복해 주입한다.
“당신만이 당신이 원하는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아널드 슈워제네거의 자서전이 손쉽게 베스트셀러 반열에 오르는 시대, “노력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구호는 오랜 시간을 거쳐 많은 이들에게 내면화된다. 오늘도 부단히 돌아가는 삶의 쳇바퀴는, 오늘의 땀이 언젠가는 보상을 줄 것이라는 믿음의 결과다.
독일 작가 베른트 크라머는 저서 ‘성공의 배신’을 통해 우리 사회 전반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이 ‘성공 숭배 문화’에 날카로운 질문을 던진다. 정말 노력은 배신하지 않고, 최선의 끝에는 그에 합당한 성공이 기다리고 있을까. 저자는 이를 현대사회의 신화라고 부르며 “믿음은 강력하고 매혹적이지만, 유감스럽게도 현실은 그렇지 않다”고 말한다.
저자는 성공에 대해 단순히 발버둥 친다고 도달할 수 있는 지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무엇보다 성공이라는 것을 쉽게 정의할 수도 없을뿐더러, 그 안에는 측정 불가능한 성과와 우연, 불평등이 숨어 있다는 것. 저자는 이를 증명하고자 다양한 사례를 사회학과 심리학, 철학적 관점에서 조목조목 짚어나간다.
![]() |
| 성공의 배신/베른트 크라머 지음·이은미 옮김/추수밭 |
우선 저자는 ‘우리는 왜 이토록 성공에 집착하는가’에 대한 탐구에서 시작한다. 계층과 특권이 표면적으로 사라진 현대 사회에서는 누구에게나 성공의 기회가 열려 있다는 믿음이 강하게 자리 잡는다. 야심을 가로막았던 신분의 족쇄는 사라진 지 오래다. 오늘날 많은 사람은 좀 더 나은 집, 좀 더 높은 직급을 쟁취해 남들보다 나은 위치에 있으려 애쓴다.
저자는 “평등을 기치로 한 민주주의는 시민들이 지위 쟁취를 위해 작은 싸움을 벌이도록 자극한다”면서 “만인의 만인에 대한 경쟁이 일어나고, 인간이 인간의 경쟁자가 된다”고 말한다.
하지만 저자는 애당초 성공에 도달하기 위한 ‘성과’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호한 개념인지를 짚는다. 하물며 특정한 성과 안에서 노력과 재능의 비중을 따져 묻는 것조차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성과의 모호함과 측정 불가능성을 파고드는 것이 다시 ‘노력’이라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노력과 재능의 지분을 나눌 수 없으니, 사람들은 “충분히 노력하면 타고난 재능을 가진 이들과 같은 자리에 설 수 있다”는 믿음을 손쉽게 정당화해 버린다.
심지어 성공은 노력과 재능만의 문제도 아니다. 똑같이 노력하고 비슷한 재능이 있어도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한다. 성공에 대한 집착과 노력에 대한 믿음과 달리, 현실은 노력하는 만큼 성과를 보장하지 않는다는 점은 쉽게 드러난다.
많은 이들이 장 바스키아를 요절한 천재 화가로 기억하지만, 그와 함께 그래피티 작업을 했던 ‘SAMO(세이모)’의 알 디아즈를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빌리 아일리시처럼 우연히 올린 노래 한 곡이 공전의 히트를 쳐서 스타가 되는 경우도 있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무대 한 번 서보지 못한 아티스트가 훨씬 더 많다. 이를 설명하려면 어쩔 수 없이 ‘운’과 ‘우연’의 역할을 언급할 수밖에 없다. 노력과는 별개로 언제 태어났고 어떤 이름을 가졌는지가 명문대 진학률과 프로 입성 가능성을 좌우한다는 실제 통계 역시 이를 뒷받침한다.
저자는 “스스로 깨닫기도 전에 우리를 무작위로 보내는 조그만 전환점이 발생한다”면서 “처음에는 눈치채기 힘들 정도로 작은 이점이지만, 다음 결정적인 단계로 나아갈 때 남들보다 아주 조금 더 앞서서 출발하게 되고, 마지막엔 그 차이가 엄청나다”고 말한다.
성공 숭배와 능력주의의 또 다른 부작용은 그 책임이 고스란히 개인에게 전가된다는 점이다. 기회는 모두에게 ‘균등’하게 돌아갔기 때문이다. 수많은 우연이 있었더라도, 사람들은 승자에게도 패자에게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고 믿는다. 세상이 공정하고 누구나 자신이 한 일에 대가를 치른다는 생각은 “스스로 위기를 자초했을 것”이라며 약자를 경시하고 불평등을 고착화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진다.
우연성을 배제하기 어렵고, 운까지 통제하기 어려운 인생을 저자는 ‘제비뽑기’에 비유한다. 능력주의 사회에서 삶은 은밀한 복권과 같다는 것이 그의 결론이다. 다만 저자는 ‘노력이 성공을 보장한다’는 명제를 끊임없이 의심할 뿐, ‘노력이 불필요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공의 배신’은 노력이란 단어에 짓눌려 스스로를 끊임없이 채찍질하는 이들에게, 성공을 향한 막다른 골목에서 발버둥 치는 이들에게 건네는 나지막한 응원처럼 들린다.
성공의 배신/베른트 크라머 지음·이은미 옮김/추수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