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교사들에 ‘직장 내 괴롭힘’ 의심
유족들 조사과정 정보공개 청구 불구
교육부 “관련자 진술, 해당 정황없어”
유족, 정보공개청구소송 1심서 승소
교육부 항소…“진실 알고 싶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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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의 유족이 고인의 생전 모습을 마지막으로 촬영한 사진. 가장 왼쪽이 고인. [제보자 제공] |
지난 2024년 2월, 중국의 한 한국국제학교에서 근무하던 초등부 교사가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발령받은 지 불과 1년 만이었다.
유서엔 직접적인 계기가 없었다. 고인은 “점점 자존감이 떨어졌다”며 “희망과 절망이 반복되는 롤러코스터 위에서 서서히 무너졌다”고 적었다. 유족이 유품을 정리하면서 황망함은 더해졌다. 직장내괴롭힘을 당한 것으로 보이는 정황이 다수 발견됐다. 고인이 생전에 남긴 메모, 탄원서가 근거였다.
하지만 고인이 세상을 떠난 지 2년 4개월이 지난 지금, 밝혀진 것은 아무것도 없다. 교육부가 직장내괴롭힘 조사 결과 보고와 진술서 등을 유족에게 공개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탄원서·메모에 ‘학교 일로 힘들면 안 돼’, ‘힘들다 이야기 금지’
2일 헤럴드경제 취재를 종합하면 고인 A씨는 초빙교사로서 중국의 국제학교에서 초등부 3학년 담임을 담당했다. A씨 동료교사와 유족이 나눈 통화 녹취록에 따르면 해당 국제학교엔 파견교사와 초빙교사 사이에 차별이 있었다고 한다. 파견교사가 주요 보직을 독점하고 초빙교사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하는 등 업무상 지휘·감독 관계가 존재한 것으로 나타났다.
유족은 총 9명의 교직원 중 파견교사 2명이 고인을 따돌렸다고 주장한다. 실제 녹취록에 따르면 A씨와 함께 초빙교사로 근무한 동료교사가 “(서로) 신분이 달랐다”며 “저도 겪었는데 (파견교사들이) 인사를 받지 않았다”, “파견교사들이 A씨를 포함해 초빙교사들을 엄청 싫어했다”고 유족에게 털어놓았다.
A씨가 생전에 작성한 탄원서엔 본인이 겪었다며 쓴 따돌림 내용이 적혀있었다.
하지만 그는 탄원서를 외부에 제출하지 않았다. 그의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었다고 생각했다는 게 유족 측 주장이다. 실제 녹취록에 따르면 동료교사는 유족에게 “관망했던 사람들도 똑같은 가해자라고 생각한다”며 “다른 교사들이 ‘하지 마라’고 하거나 중재를 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힘든 시기에도 A씨는 학생·학부모들 사이에서 신뢰를 받았다. A씨의 귀국 소식에 다들 아쉬움을 표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A씨는 삶의 마무리를 준비하고 있었다. 지인들에게 자신이 아끼던 노트북, 전기자전거 등을 선물한 뒤 세상을 떠났다.
교육부, 직장내괴롭힘 인정되지 않은 이유 밝히지 않아
직장내괴롭힘을 의심하게 된 유족은 지난 2024년 7월 국민신문고를 통해 관리·감독 책임이 있는 교육부에 신고했다.
하지만 조사는 차일파일 미뤄졌다. 교육부는 담당자가 변경됐다며 조사 결과 제공을 거듭 거부했다. 지난해 5월에야 조사결과 ‘답변서’를 제공했다. 이마저도 국가기관의 정식 조사결과보고서가 아닌 임의로 작성된 2페이지 분량의 답변서였다. 교육부는 이 사안을 직장내괴롭힘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답변서엔 직장내괴롭힘이 인정되지 않은 이유도 적혀있지 않았다. 조사 당시 내린 결론만 있었다.
교육부는 “관련자들의 진술을 종합적으로 고려했을 때 고인이 직장내괴롭힘을 받았거나 우월적 지위에 의한 갑질을 당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의 정황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답변했다. 결국 유족은 교육부에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직장내괴롭힘 조사 과정과 종결 사유를 구체적으로 알려달라고 호소했다. 유족 측은 “교육부의 이러한 태도는 유족에게 ‘왜?’, “어째서?’라는 의문을 영원히 지울 수 없는 상처로 남기고 있다”고 했지만 재차 기각됐다. 결국 법원을 찾아 소송을 하게 됐다.
법원, 유족 측 승소 판결…“교육부에 대한 불신 커질 수 있어”
법원은 유족의 손을 들어줬다. 이 판결 자체가 A씨의 직장내괴롭힘 피해를 인정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법원은 교육부의 정보공개 거부 처분을 취소하며 “유족이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선 상황에 대해 제대로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며 “해당 정보가 공개되지 않을 경우 유족이 교육부,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가지는 불신이 더욱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 이상덕)는 5월 28일 교육부의 정보 비공개 결정 중 관련자들의 주민등록번호·주소 등 개인식별정보를 제외한 나머지 부분에 대한 비공개 결정을 취소하라고 선고했다. 법원은 “해당 내용은 유족이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고 향후 가해자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등을 할 때 조사·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어 “유족은 고인이 남긴 자료를 통해 이미 가해교사로 지목된 자가 누구인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했다. 자료를 공개한다고 해서 가해교사의 개인정보가 추가로 유출될 우려가 없다는 취지다.
법원은 “이미 직장내괴롭힘 조사가 종료된 상황에서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특별한 이유를 찾기 어렵다”며 “유족에게 조사가 대충 허투루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줄 필요도 있다”고 했다. 끝으로, “만약 해당 정보를 공개하지 않을 경우 유족이 교육부, 더 나아가 대한민국 정부에 대해 가지는 불신이 더욱 커질 수 있다”며 “가급적 정보를 공개하는 것이 국정운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입법 취지에 부합할 뿐 아니라 유족의 권리구제를 돕는 데 긍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고 밝혔다.
교육부 항소로 2심서 계류…유족 “거부하는 이유 모르겠다…진실 알려달라는 것”
1심 판결에 대해 유족은 안도하지 못했다. 교육부가 1심 선고 3주 뒤 항소했기 때문이다. 2심이 서울고법에서 계류 중이다. 교육부는 1심 판결에 대한 입장을 묻는 헤럴드경제의 질문에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인 사안이라 자세히 말씀드리기 어려움을 양지해 주길 바란다”고 답했다.
유족은 헤럴드경제에 “가족의 사망 원인이라도 알려달라는 요청을 국가가 이렇게까지 거부하는 이유를 모르겠다”며 “누구의 책임을 추궁하겠다는 게 아니라 진실을 알려달라는 것”이라고 호소했다. 유족 측을 대리하고 있는 박성욱 변호사(법무법인 선)도 “통상 정보공개청구 소송은 1심에서 승소할 경우 처분청이 사법부의 판단을 존중해 즉시 공개한다”며 “항소를 하면서까지 비공개 하려고 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비판했다.
안세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