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시뮬레이터·6월 AMS동 가동
R&D 전 과정 디지털 재편
AI·디지털 트윈·3D프린팅으로 개발 기간 단축
‘만들고 시험’에서 ‘가상 검증 후 제작’ 시대로
개발기간·비용 줄이고 완성도 높이는 미래차 연구 현장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센터(DMC)에서 연구원이 광학식 3D 스캐너를 활용해 차량 부품의 형상과 치수를 정밀 측정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
[헤럴드경제=정경수 기자] “예전에는 테스트용 차를 먼저 만들고 시험했다면, 이제는 가상공간에서 대부분의 검증을 끝낸 뒤 실제 차량을 만듭니다.”
지난 1일 찾은 경기도 화성 현대자동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에서 만난 한 연구원은 “‘디지털 개발’은 더 이상 미래 기술이 아니라 이미 일상이 됐다”며 이같이 설명했다.
남양기술연구소는 올해 2월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를 도입한 데 이어 6월에는 ‘첨단모빌리티솔루션동(AMS동)’을 새롭게 구축했다. 그동안 연구소 곳곳에서 시험해온 첨단 장비와 개발 방식을 현대차그룹의 차량 개발 체계에 맞게 최적화하고, 흩어져 있던 디지털 측정센터(DMC)와 적층제조솔루션센터(AMSC) 등 주요 기능을 새 건물 한곳에 모았다.
단순한 시설 확충이 아니라 차량 개발 전 과정을 디지털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실제 차량을 제작하기 전 가상공간에서 주행 성능을 검증하고, 3D프린터로 필요한 부품을 빠르게 만들며, 완성차의 단차와 조립 품질까지 데이터로 예측하는 체계를 갖췄다.
이날 만난 연구원들은 “실물을 만들기 전에 대부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목표”라고 입을 모았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에 구축된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전경. 이 시설은 실제 차량 제작 전 가상환경에서 주행 성능을 검증하는 디지털 개발 플랫폼이다. [현대차·기아 제공] |
대표적인 시설은 드라이빙 시뮬레이터다. 겉으로 보기에는 대형 게임 장비처럼 보였지만 내부는 실제 차량 개발을 위한 연구 시설이다. 제네시스 G80 실차와 같은 운전석이 설치돼 있었고, 6축 모션 플랫폼과 270도 스크린이 실제 주행 상황을 구현했다. 고성능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결합해 실내에서 운전자 기반 주행 성능을 평가하는 장비다.
![]() |
| 현대차 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주요 디지털 개발 시설 |
직접 본 시뮬레이터는 생각보다 현실감이 뛰어났다. 요철을 지날 때의 진동과 차체 움직임, 급차선 변경 시 차량이 기우는 느낌까지 실제 차량과 큰 차이를 느끼기 어렵다. 화면만 보는 수준이 아니라 몸 전체가 차량의 움직임을 함께 느끼도록 설계돼 있다.
비결은 도로를 그대로 옮겨 놓은 디지털 트윈 기술이다. 연구진은 국내 시험로는 물론 해외 주요 시험 코스까지 라이다(LiDAR)로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밀 스캔해 가상 공간에 구현했다. 벨기에 포장도로, 미국 고속도로 등 국가별 도로 특성도 그대로 반영했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드라이빙 시뮬레이터 내부 모습. 270도 곡면 스크린과 6축 모션 플랫폼을 통해 실제 도로 주행 환경을 구현한다. [현대차·기아 제공] |
이전에는 방대한 데이터를 불러오는 데만 수십 초에서 수분이 걸렸지만, 자체 기술을 개발하면서 실시간 수준으로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이를 통해 실제 차량을 제작하지 않고도 승차감과 핸들링, 타이어, 서스펜션 세팅 등을 다양한 조건에서 반복 검증할 수 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변화는 개발 속도다. 정필영 주행성능컨셉개발팀 책임매니저는 “유럽이나 미국 도로를 직접 가지 않아도 동일한 환경에서 평가가 가능하다”며 “기존에 한두 달 걸리던 시험을 1~2주 수준으로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실차 시험은 여전히 필요하지만 가상 검증을 통해 개발 속도와 효율을 크게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센터(DMC)에서 접촉식 3차원 측정 장비가 차체의 주요 측정 포인트를 정밀 계측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
다음으로 이동한 곳은 디지털 측정센터(DMC)였다. 자동차 품질은 단순히 외관 단차가 보기 좋게 맞는지의 문제가 아니라, 차체와 부품이 제 위치에 정확히 맞물리는지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작은 단차 하나도 바람 소리와 누수, 주행 소음으로 이어질 수 있고, 차체와 부품의 위치가 어긋나면 고급감은 물론 내구성과 정숙성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DMC에서는 차량 한 대당 약 1000개의 측정 포인트를 잡고, 이 데이터를 다시 600~700개의 평가 항목으로 조합한다. 단순히 어느 한 지점이 기준값에 들어오는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포인트의 거리와 평행도, 좌우 균형을 함께 따져 완성차에서 문제가 생길 가능성을 미리 판단하는 방식이다.
한진수 파이롯트품질검증팀 팀장은 “포인트 하나하나만 보는 것이 아니라 여러 포인트를 조합해 실질적인 품질을 판단한다”며 “외관이 깨끗하게 맞을지, 문이 잘 닫힐지, 소음과 누수가 생기지 않을지 등을 데이터만 보고도 미리 판정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디지털 측정센터(DMC)에서 연구원이 포터블 3D 스캐너를 활용해 차량 부품의 형상과 조립 상태를 측정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
이날 현장에서는 로봇 팔에 장착된 3D 스캐너가 부품 형상을 읽고, 자율주행 운반 로봇이 측정 대상을 옮겼다. 과거에는 사람이 손으로 검사구에 부품을 맞춰보며 확인했다면, 이제는 3D 데이터로 가상 장착을 해보고 문제 원인을 추적한다.
올해 들어 남양연구소의 디지털 전환은 공간 재편과도 맞물렸다. DMC는 6월 AMS동에 관련 장비와 인력을 모으고 프로세스를 새로 구성했다. 흩어져 있던 측정 기능을 한곳에 모아 개발 단계에서 확보한 품질 기준을 양산 공장까지 그대로 넘기는 체계를 강화한 것이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적층제조솔루션센터(AMSC)에서 액상 레진을 자외선으로 경화시켜 부품을 제작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
3층 적층 제조 솔루션 센터(AMSC)에서는 금속과 수지를 쌓아 부품을 만들고 있었다. 흔히 3D프린팅으로 불리는 적층 제조는 금형 없이 설계 데이터만으로 부품을 만드는 방식이다. 현장에는 액상 레진을 자외선으로 굳혀 만든 부품, 금속 와이어를 녹여 쌓은 샘플, 분말을 레이저로 녹여 제작한 모터스포츠 부품 등이 놓여 있었다.
AMSC 관계자는 “품질을 바라보는 조직이 있다면, 저희 업무는 그 품질을 현실로 만들어내는 것”이라며 “고비용과 기존 공법의 한계를 넘기 위한 제조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곳에서는 개발용 시작품뿐 아니라 헤리티지 차량 복원, 단종 부품 대응, 모터스포츠용 경량 부품 제작까지 하고 있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적층제조솔루션센터(AMSC)에서 액상 레진을 경화시켜 제작한 현대차 포니 부품. [현대차·기아 제공] |
특히 오래된 포니 부품을 3D 스캔으로 복원한 사례가 눈길을 끌었다. 도면이 남아 있지 않은 부품도 실물을 스캔해 3차원 데이터로 바꾸고, 이를 다시 3D프린팅으로 구현하는 방식이다. 해외에서 들여오느라 시간이 오래 걸렸던 금속 노즐도 필요할 때 직접 제작할 수 있어 재고 부담과 리드타임을 줄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 |
| 현대차·기아 남양기술연구소 노바 랩(NOVA Lab)에서 연구원이 와이어카를 활용해 차량 기능과 제어기 작동 상태를 검증하고 있다. [현대차·기아 제공] |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노바 랩(NOVA Lab)이다. 이곳에는 완성차 대신 차체 형태의 테스트 벤치 위에 배선과 제어기, 전장 부품을 연결한 ‘와이어카’가 놓여 있었다. 차체는 없지만 차량의 전기·전자 시스템은 실제와 가깝게 구현했다.
김상현 파이롯트전장제어개발팀 파트장은 “시험차가 제작되면 제어기가 차체 깊숙이 들어가 있어 교체나 점검이 어렵다”며 “신차 제작 전에 전장 부품을 모아 기능을 검증하고 문제점을 1차로 개선하자는 아이디어에서 와이어카가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노바 랩에서는 램프, 공조, 시트 같은 기본 기능부터 통신 오류, 저전압·과전압 조건, 암전류, 충전 시퀀스까지 검증한다. 주행 조건도 단순히 상상으로만 구현하지 않는다. 소형 다이나모미터와 구동 부하 장치를 활용해 차량 속도에 따른 오토 도어락, 회생제동, 운전자 경고 기능까지 확인한다.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검증 공간에서는 변화가 더 뚜렷했다. 기존 차량의 수십 개 제어기는 고성능 차량용 컴퓨터(HPVC)와 존 컨트롤러 중심으로 통합되고, 전원 체계는 12V에서 48V로, 통신은 CAN에서 고속 이더넷으로 옮겨가고 있다.
이호진 책임매니저는 “통합 제어기가 차량 주요 기능을 담당하면서 개발 복잡성과 검증 난이도도 높아졌다”며 “와이어카 상태에서 SDV 검증을 이어가며 완성도를 높여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