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혜미의 무비 for U]슬픔을 잃어버린 소녀…기쁨이 달콤할까

디즈니·픽사 애니메이션 ‘인사이드 아웃’

‘슬픔이라는 감정을 못 느낀다면 어떨까?’ 한 번쯤 해볼 만한 상상입니다. 어쩌면 꽤 괜찮은 삶이 펼쳐질 지 모릅니다. 실연을 겪어도 즉각 추스르고 일상으로 복귀할 수 있겠죠. 실패를 거듭해도 분노할 지언정 상처 받지는 않을 것입니다. 단순히 공상에 머무를 수 있는 소재를 디즈니·픽사는 기어이 눈 앞에 펼쳐놓습니다. 자칫 허무맹랑할 수 있는 해프닝도 이들의 손을 거치니 웃음과 눈물은 물론, 모험의 스릴까지 있는 역작으로 탄생했습니다. 


‘인사이드 아웃’(감독 피트 닥터)은 모든 사람들의 머릿속에 감정을 제어하는 본부가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합니다. 이곳에서 기쁨, 슬픔, 버럭, 까칠, 소심 등 다섯 감정들은 저마다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죠. 11살 소녀 ‘라일리’는 익숙한 고향을 떠난 뒤, 새로운 환경에 맞닥뜨리고 당황합니다. 정든 집도, 친구들도, 하키 팀도 이제 없습니다. 하필 이 시기에 라일리의 머릿속 ‘기쁨’과 ‘슬픔’이 본부를 이탈하는 비상 상황이 벌어집니다. ‘기쁨’을 잊은 라일리로 인해, 라일리의 가족도 웃음기를 잃어갑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없을 때 펼쳐질 상황은 불 보듯 뻔합니다. 시험 공부에 매달리는 수험생도, 아침마다 힘겹게 눈뜨는 직장인도, 모두가 기쁘고 즐거운 삶을 위해 하기 싫은 일도 참아냅니다. 그런데 맛있는 것을 먹어도, 좋은 곳에 가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도 기쁨을 느낄 수 없다니… 삶의 이유 자체가 없어지겠죠. 이건 너무 당연해서 재미가 없습니다.

사실 영화가 말하고자 하는 건 ‘슬픔의 역설’입니다. 기쁨과 슬픔은 고난 끝에 라일리의 머릿속 본부와 가까워지지만, 슬픔은 기쁨에게 자신을 버리고 가라고 말합니다. 자신의 존재가 라일리에게 짐이라고 판단한 거죠. 정작 라일리 가족의 금간 관계를 이어붙이는 건 기쁨이 아닌 슬픔입니다. 이들은 단란했던 과거를 그리워하고 슬픔을 느끼면서, 비로소 관계를 회복할 의지를 품죠. 누군가를 잃고 비탄에 잠긴 뒤에야, 그 사람의 소중함을 깨닫는 것처럼 말이죠. 아울러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기에, 그 뒤에 찾아오는 기쁨은 더 달콤한 것이기도 합니다.

일찌감치 슬픔의 가치를 알았던 명사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영국의 한 시인은 슬픔을 ‘오해된 즐거움’이라고 했고, 프랑스 작가 로맹 롤랑은 ‘가장 좋은 친구’라고 불렀습니다. 유명 극작가 오스카 와일드는 ‘슬픔은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정서 가운데 최고의 것’이라고 그 가치를 찬양했죠. ‘인사이드 아웃’을 본 관객들에게도 슬픔이 귀찮고 떨쳐내고 싶기만한 존재는 아닐 것입니다. 슬퍼하는 행위를 더이상 시간 낭비 쯤으로 치부하지 않을 지도 모르죠. 과거의 고통스러웠던 기억과 당시의 감정이, 지금의 ‘나’라는 인간을 만든 자양분이었다는 깨달음은 덤입니다. ‘인사이드 아웃’은 어린이 관객들에겐 모험의 즐거움을, 성인 관객들에겐 유쾌한 웃음과 눈물이 핑 도는 뭉클함을 선물할 완벽한 애니메이션입니다.
 
ham@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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