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성심당의 본점 건물 앞에서 임영진(왼쪽) 로쏘 대표, 임선 이사, 김미진 이사, 임대혁 이사가 가족사진을 촬영했다.[성심당 제공] |
[헤럴드경제=김희량 기자] “가성비란 말을 안 좋아해요. 성심당은 많은 이가 부담 없이 살 수 있는 ‘보편성을 가진 가격’을 지키려는 겁니다. 부자가 와도 초라하지 않고, 가난한 이가 와도 주눅 들지 않는 그런 빵집이 되고 싶기 때문이죠.”
‘성심광역시 대전’이란 말이 있다. 대전이 아니면 맛볼 수 없는, 전국 1위 동네 빵집은 이제 대전을 키우는 착한 빵집으로 자리매김했다. 1956년 피란민이자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창업주 임길순이 대전역 앞 찐빵집으로 시작한 성심당은 68년 후, 직원 1246명의 일터이자 1000억원대 매출을 올리는 한국의 대표 향토기업이 됐다.
헤럴드경제는 최근 서울역 인근의 한 카페에서 성심당 3세이자 장녀인 임선(42) 로쏘 이사를 만나 올해 성심당의 변화와 이들이 전하고 싶은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가족기업인 성심당은 현재 임영진 대표가 경영을, 아내인 김미진 이사가 홍보마케팅을, 자녀들 중 임선 이사와 임대혁 이사가 각각 외식부문과 제과제빵 부문을 맡고 있다. 임 이사는 오는 30일 대전에서 열리는 모두를 위한 경제(EoC) 국제포럼에서 성심당의 사례 발표를 진행한다.
19일 대전 성심당 본점. 김희량 기자 |
대전 성심당 본점에서 손님들이 빵을 고르고 있다. 마치 회전초밥집에서 초밥을 집는 것처럼 재빠르게 원하는 빵을 선점해야 한다. 김희량 기자 |
올해 성심당은 ‘이슈 메이커’였다. 임산부를 배려한 ‘프리패스’ 정책은 임산부 뱃지 품귀 현상이라는 해프닝을 일으켰고, 성심당 구입 빵·케이크를 보관해주는 ‘빵장고’(으능이랑성심이랑 상생센터)까지 대전에 생겼다. 대전 도심에는 성심당 영수증 등을 제시하면 할인이나 빵을 위한 식기를 제공하는 곳이 4월 기준 20여 곳에서 70곳(9월)으로 늘었다.
‘전국구’ 빵집이 되면서 직원도 대전, 충청도를 넘어 각지에서 몰려들었다. 대전 원도심에도 청년들로 활기가 넘친다. 임 대표는 “저희는 ‘밀가루 머니’라는 농담을 하는데 원룸촌, 노래방 등 성심당 주변 상권인 활성화되고 대전에 와 가정을 이루는 직원들도 많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고물가와 경기 침체 속에서도 성심당에는 각지에서 끝없이 사람들이 몰려든다. 빵값이 착해도 교통비와 시간을 더하면 소위 말하는 ‘가성비’ 빵도 아닌데 말이다. 왜 이렇게 사람들이 끊이지 않고 오는 걸까.
임선 이사가 올해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과거 2014년 방한 당시 성심당이 제공했던 빵을 전달하는 모습. 당시 성심당은 KTX를 통해 대전에서 만든 빵을 서울로 실어날랐다. [성심당 제공] |
여름철 성심당에 늘어선 대기줄. 사진 속 초록 우산은 성심당이 고객 편의를 위해 제공하는 것으로 자체 환경 보호 프로젝트인 ‘에코 성심’을 상징한다. [성심당 제공] |
임 이사는 “빵집에 가서 돈을 쓰는 게 아니라 돈을 번다는 느낌이 들어 그런 게 아닐까”라며 “시루케이크를 보면 과일이 정말 듬뿍 들어간다. 착한 가격과 맛에 만족한 손님은 자발적으로 홍보하고, 저희는 원자재를 대량 구매해 원가를 낮추면서 선순환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창업주가 ‘하늘의 금고는 복리로 돌아온다’는 말을 늘 하셨는데 그 말이 현실이 된 거 같다”고 덧붙였다.
성심당하면 빠지지 않는 것이 착한 가격이다. 대표 제품인 튀김소보로는 올해 기준 1700원으로 2011년 1500원 대비 13년 동안 13% 올랐다. 가격을 올릴 때 가장 큰 문턱은 임영진 대표다. ‘이대로는 안 된다’며 직원들이 건의를 해도 임 대표의 반대로 1년을 흘려보낸 적도 있었다. 임 이사는 “올해 기준 1000원대 빵이 17종류다. 형편이 어려운 분이 와도 사갈 수 있는 제품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원칙”이라며 “접근 가능한 가격을 지키는 것이 고객에 대한 나눔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2005년 대형 화재로 문을 닫을 뻔 했던 성심당. [성심당 제공] |
성심당은 수익을 구성원과 이웃에게 나누는 빵집으로도 유명하다. “나누기 위해 빵을 판다”라는 말이 어울리는 창업주의 이념을 68년째 지키고 있다. 지난해 기준 성심당은 2억6300만원을 후원했다. 매월 약 7000만원의 빵을 130여 개 복지단체에 나누고, 분기마다 직원에게 영업이익 15%를 인센티브로 지급한다. 성심당은 2005년 대형 화재로 문을 닫을 뻔했지만, 직원의 노력으로 일어나기도 했다. 직원의 힘을 믿는 이유다. 수십 년간 대출 이자를 내기도 벅찼던 상황에서도 나눔의 정신이 2013년 빚을 청산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했다.
한 곳만 바라보는 뚝심은 전국에 성심당 팬을 만들었다. 코레일유통이 내부 규정을 근거로 지난 4월 계약이 끝난 대전역점에 기존의 4배 가까운 임대료를 요구했을 때도 성심당을 구한 건 대전시민과 전국의 고객이었다. 국민적 사안으로 떠오르자, 감사원이 개입해 성심당은 기존 임대료보다 낮은 월세로 향후 5년간 운영할 수 있게 됐다. 임 이사는 “많은 분들의 관심 덕분에 원만하게 해결할 수 있었다”고 돌아봤다.
올해 4월 김미진 이사가 성심당 70주년을 위한 기록도서관 사업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성심당 제공] |
성심당의 요즘 고민은 ‘어떻게 하면 고객이 더 편하게 빵을 구입하고 대기시간을 즐길 수 있을까’다. 빵집에 와서 빵을 사는 행위를 행복한 경험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다.
모친인 김미진 이사의 영향도 컸다. 미술을 전공한 김 이사는 1980~90년대부터 성심당의 매장 이벤트와 콘텐츠를 기획하며 ‘빵케팅(빵 마케팅)’을 시작했다. 김 이사는 ‘손님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면서 어린이날에 방송국에서 인형탈을 빌려올 정도였다. 임 이사는 “어릴 적부터 전국 최초의 발렌타인 행사, 부활절 옥상에서 풍선 뿌리기 같은 이벤트를 보고 자랐다”면서 “성심당이 빵을 매개로 기쁨을 전하려는 마음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판타롱 부추빵, 카카오순정, 안녕크레페, 토요빵 등 성심당은 빵 이름도 그냥 짓지 않는다. 김 이사는 대전의 정서와 동심을 담은 ‘빵작명’ 제도와 빵 개발자, 일자, 레시피, 제작 의도가 기록된 ‘빵 호적등본’을 만들었다. 성심당엔 별도 R&D팀이 없다. 매년 1회 열리는 사내대회와 직원들의 아이디어로만 신제품이 나온다. 이달에도 롯데백화점 대전점 매장에서 MZ직원 아이디어로 ‘안녕 크레페(크레페 활용 과일 케이크)’가 나왔다.
성심당 직원 단체 사진. [성심당 제공] |
임 이사는 “성심당의 특징을 꼽으라면 대가를 바라지 않는 ‘무상성’”이라며 “직원들이 배워서 나가는 게 아깝지 않냐고 물으시는 분들이 있는데 저희에겐 이 분들이 마치 포도송이처럼 성심당의 문화를 확산시켜주는 보물들”이라고 말했다.
성심당은 직원과 하나되는 공동체를 위해 인사고과의 40%는 동료를 얼마나 사랑했느냐로 평가한다. 매주 발행하는 한가족신문에는 생일 축하를 주고 받은 경험, 아픈 가족을 위해 근무표를 바꾼 동료에 대한 고마움 등 크고 작은 일들이 세세하게 담긴다. 임 이사는 “서로 격려하고 웃으며 만드는 빵은 맛없을 수가 없다”면서 “처음엔 억지로 하다가 나중엔 자연스레 서로 돕고 배려하는 것이 회사의 문화로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 결과 성심당에는 5년 이상, 10년 이상 장기 근속자들이 각각 180명, 69명에 달한다. 가격 못지 않게 사랑 받는 맛을 위해 지난해 105명 직원들을 벨기에, 프랑스 등 해외 연수를 보냈다. 일본 제과점에는 1년 파견 근무를 보내는 제도도 운영한다.
성심당의 우유팩 재활용 모습. 지난해 기준 총 42톤, 30년산 나무 840그루와 맞먹는 재활용휴지를 순환시켰다. [성심당 제공] |
지난 14일 성심당 전사가 하루 휴무한 후 진행한 성심당 한가족 캠프의 모습. [성심당 제공] |
성심당은 전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1년에 딱 하루, 한가족 캠프를 진행한다. 이날에는 매장 문도 닫는다. 이달부터는 본점 인근에 직장어린이집을 열어 직원의 양육까지 지원한다. 임 이사는 “어린이집은 의무는 아니지만, 사회적 책임을 다하기 위해 3년 동안 준비한 결과물”이라며 “직원들 사이에서는 아이들이 한글보다 반죽과 배합을 먼저 배우지 않겠냐는 농담이 나올 정도로 기대감이 크다”고 웃었다.
성심당은 이제 환경과 1대 창업주의 이념을 다음 세대까지 지켜나가는 것이 목표다. 2019년부터는 에코성심프로젝트를 시작해 우유팩 재활용을 의무화했다. 지난해 기준 42톤, 30년산 나무 840그루와 맞먹는 재활용휴지를 순환시켰다. 60주년 기념 도서를 비롯해 이미 4권의 책을 출판한 성심당은 70주년(2026년) 기념 사사 편찬을 준비 중이다. 임 이사는 “시대가 변하고 그 보폭이 어마어마해지고 있다”며 “위기 상황이 왔을 때 성심당의 사람들이 어떤 결정을 내렸는지, 사랑과 나눔이라는 본질이 앞으로도 이어질 수 있도록 가이드라인을 만드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대전 외에서는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철학에는 변함이 없다. 대신 ‘옛맛 솜씨(전통과자 전문점)’, ‘튀소정류장(튀김소보로 전문매장)’ 등 세컨드 브랜드를 대전에서 선보이고 있다.
성심당은 사람들에게 어떤 빵집으로 기억되고 싶을까.
“저희의 존재가 용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세금을 잘 내고 직원들의 몫을 충분히 주더라도 망하지 않는다는 희망이라고 할까요. 그래서 ‘나도 저렇게 해볼까’라는 마음들이 커지는 것. 그게 저희의 바람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