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토박이’ 우손갤러리, 서울 진출하며 선보인 작가는 이베르 [요즘 전시]

12년 만에 서울 성북동에 서울점 개관
이베르 “그림, 씨 뿌리면 성장하는 숲 같아”
“새 갤러리에 씨 뿌리는 마음 담았다”


파브리스 이베르, 모든 생애(Toutes les vies), 2024. [우손갤러리]


[헤럴드경제=이정아 기자] 12년 전 대구에서 출발한 우손갤러리가 서울에 진출했다.

12일 서울 성북동 소재 우손갤러리 서울은 개관 기념으로 1997년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숲의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Fabrice Hybert)의 회화와 조각 등을 전시장에 가득 채웠다. 생명을 머금은 토양으로 변모하는 화폭 속 인간 모습 너머로 김은아 우손갤러리 대표가 말했다.

“작가는 캔버스에 생각을 그리는 것이 땅에 씨앗을 흩뿌리면 나무가 성장해 숲을 이루는 것과 같다고 말해요. 그런 그의 철학처럼, 새로 문 연 갤러리에 씨 뿌리는 마음을 담았어요.”

우손갤러리는 지난 2018년부터 해마다 아트바젤 홍콩에 참가하는 한국의 10개 안팎의 갤러리 중 하나다. 특히 지난 6월에는 스위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규모의 아트바젤에 오묘초 작가와 함께 참여했고, 12월 초에는 최병소 작가의 첫 솔로부스로 아트바젤 마이애미에 첫 진출했다. 지난 9월에는 뉴욕 아모리쇼에서 최병소 작가의 작품을 판매했다.

우손갤러리 서울은 검은 철제와 회색 콘트리트로 대변되는 우손갤러리 대구와 달리 붉은 벽돌로 된 층고 높은 클래식한 주택을 떠올리게 한다. ‘예술과 사람이 만나는 문화공간’이라고 공간 정체성을 설정한 만큼, 이에 맞게 현대미술계를 선도하는 거장과 유망한 작가를 소개하는데 집중한다는 게 김 대표의 설명이다. 우손갤러리 대구에서 션 스컬리(2012년), 야니스 쿠넬리스(2013년) 등 세계적인 작가의 국내 최초 전시를 열었던 바 있다.

작가 파브리스 이베르 [우손갤러리]


파브리스 이베르, 계곡과 숲의 목소리(Le voix de lavallee et de la foret), 2024. [우손갤러리]


우손갤러리 서울에서는 이베르 개관전을 시작으로, 내년부터 이유진, 이헌정, 최병소, 카즈미 나카무라의 개인전이 열릴 예정이다.

이날 막을 올린 개관전은 ‘삶은 계속된다’를 주제로, 우손갤러리 서울과 대구에서 각각 ‘에너지’와 ‘상상’을 키워드로 한 이베르 개인전이다. 53점의 출품 작품 중 신작은 30여점이다. 전시장에서 만난 이베르는 “물과 뿌리 등 생의 시작과 삶의 촉매가 되는 요소에 관심이 많다”며 “그래서 작품은 학문적으로, 미학적으로, 그리고 철학적으로 생명체를 이해하고자 한 사적인 관심에 관한 이야기”라고 전했다.

이베르는 어렸을 적 사회·정치적인 이유로 단 하나의 숲만 남게 된 프랑스 방데 지역을 되살리고자 아버지와 함께 30만 평 규모의 숲을 조성했다. 그는 씨앗을 심지 않고, 뿌리는 방법을 선호했다. 식물과 땅 모두에게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서다. 극단적으로 사라진 자연을 되찾는 경작 과정이 마치 우리 인생과 같다는 게 작가의 설명이다.

실제로 그의 그림에는 땅과 나무, 숲 등 자연이 주로 나타나는데 작품에 따라 화폭에는 각 이미지를 설명하는 단어와 짧은 문장, 수학 기호 등이 적혔다. ‘두더지’, ‘풍경을 쓰다’ 등 한국 전시에 내놓은 신작에는 한글로 쓴 문구도 눈에 띈다. 예술대학에 입학하기 전 과학과 수학을 공부했던 만큼 다각적인 시각에서 자연의 진가와 생의 순간을 담아내려는 의도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작가는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보여주는 그림처럼, 단순하면서도 직관적이며 설명적인 작품을 만들려고 했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촉촉한 흙냄새가 나는 ‘모든 생애’ 유화 작품이 눈길을 끈다. 화폭에는 꽃과 식물이 자랄 수 있도록 뿌리의 토대가 된 인간의 형상이 수채화처럼 묘사됐다. 전시장 한 켠에는 이를 설치미술로 형상화한 작품도 놓여 있다. 수술대 위에 누워 치료를 받고 있는 것만 같은 인간의 몸체, 그런데 온몸이 흙으로 구성돼 있다. 그의 얼굴과 가슴 등에는 10여 개가 넘는 물 호스가 관통하고 식물이 자라고 있다.

이베르는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2022년), 이탈리아 루이비통 파운데이션(2023년) 등에서 개인전을 연 바 있다. 전시는 내년 2월 8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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