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갑다고 손을 잡으면 어색해 할까? 너무 바라보면 기분이 상하려나?감동을 받았다는 인사를 건네야 할까, 아니면 아무렇지도 않은 듯 대해야 할까?그녀와의 만남에 사람들은 항상 고민이 많다. 23세 꽃다운 나이에 자동차 사고로 곱디 고운 얼굴과 섬섬옥수 같은 손가락을 잃은 여자. 뼈가 녹는 듯한 고통의 시간을 너무도 담담히 전하며 되레 희망을 이야기하는 여자.그런 그녀가 해맑은 웃음으로 우리를 무장해제시킨다.”저 이지(easy)한 여자에요. 쉽게 대해주세요”이지선, 우리를 들었다 놨다 하는 ‘보물’같은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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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7월 30일….그리고 <지선아 사랑해>
‘어젯밤 11시 반쯤 서울 한강로 1가에서 만취 상태의 운전자가 몰던 갤로퍼가 마티즈 승용차 등 여섯 대와 충돌했습니다. 이 사고로 마티즈 승용차에 불이 나서 차에 타고 있던 스물세 살 이 모 씨가 온몸에 3도의 중화상을 입고… ‘<지선아 사랑해 중에서>
2000년 7월 30일. 지선씨는 그 사고를 만났다.
그리고 전신 5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응급실로 옮겨졌을 때 그녀의 얼굴과 몸은 까맣게 타버린 채였고 숨은 가느다랗게 붙어있었다. 그녀의 생존은 기적이었다.
하지만 더 끔찍한 것은 이후의 시간들이었다.
‘피부의 55퍼센트가 없었던 그 당시 내가 느꼈던 고통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눈물 없이는 떠올릴 수 없는, 생각만으로도 모든 세포가 덜덜 떨리는 그런 기억입니다. 그곳은 정말 생지옥이었습니다…(중략)…그러던 어느날 날아다니던 벌레 한 마리가 제 눈에 내려앉았습니다.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던 저는, 눈을 깜빡거릴 수조차 없던 저는 누군가 와서 벌레를 쫓아주기 전까지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지선아 사랑해 중에서>
“화상 치료가 얼마나 끔찍했는지, 치료와 회복과정을 이야기를 하려면 밤을 새워야 한다. 다행인 것은 인간의 기억력이 꽤 나쁘다는 것이다. 작년 피부이식 수술을 받을 때 아, 그래 이렇게 아팠었지…새로웠다”
상처는 아물고 고통은 무뎌졌으니 다행이다. 그렇지만 흔적은 어떻게 하나. 23년을 ‘나’로 여겨왔던 얼굴은 사라지고 전혀 낯선 ‘내’가 되었다. 이화여자대학교 유아교육과 4학년생이 꿈꾸던 인생은 이제 불가능하다. 그녀는 어떻게 그 가운데서 ‘소망’을 발견할 수 있었을까.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때가 있었다. 하나님께 왜 나를 살렸냐, 살려 놓았으면 대책이 있을 거 아니냐고 따졌다. 기도 중에 경험했던 하나님의 깊은 위로, 가족의 헌신, 이웃과 친구들의 사랑…. 내가 살아야 하는 이유를 찾기에 충분했다”
뼈가 드러난 다리, 지선씨의 입에 밥을 떠 넣으시며 ‘이 밥이 지선이의 살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하던 엄마를 위해 지선씨는 처음으로 살아보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의 기막힌 이야기를 진솔하게 써내려 갔던 인터넷 글들이 2003년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으로 세상에 나오면서 그녀는 제2의 인생을 살게 된다.
“다시 세상 가운데 서게 될 일은 없을 줄 알았는데…. 사람들이 나를 만나 내 이야기를 듣기 원하고 나를 통해 치유 받고 희망을 얻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또 그분들을 통해 치유 받고…. 기적 같은 일이었다”
<지선아 사랑해>가 30만부 넘게 팔려나간 베스트셀러가 되고 그녀의 홈페이지에 하루 5천명의 사람들이 찾아오면서 지선씨는 유명인사가 됐다. TV에서는 그녀를 주인공으로 한 다큐멘터리도 제작, 방영했다.
그리고 2004년 새로운 인생을 위해 미국유학 길에 오른다는 소식 이후 우리는 한동안 그녀의 모습을 모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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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캠프… 그리고 그 후 꼭 10년만
지난해 TV프로그램 ‘힐링캠프’를 통해 다시 만난 이지선은 이제 ‘안타까운 여동생’보다는 ‘성숙한 누나’같이 편안해 보였다.
“사실 TV프로그램에서 계속 출연제의가 왔었는데 망설이던 중에 어느날 그 프로그램이 사라졌다. 튕기지 말고 할걸 후회되더라. 친하게 지내는 션 오빠를 통해 힐링캠프 출연제의가 왔다. 단번에 오케이 했다(웃음)”
힐링캠프 녹화가 있던 날, 이경규, 김제동 같은 천하의 입담꾼들도 지선씨 앞에서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시청자 배려차원에서 좀 더 이쁜 왼쪽얼굴을 보여드린다”며 지선씨가 오히려 분위기를 풀었다.
이날 지선씨는 방송을 통해 콜롬비아 대학에서 사회복지로 석사학위를 받고 현재 UCLA에서 박사과정 중이라는 것, 또한 틈틈이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유명 강연자로 활동하고 있는 근황을 덤덤히 전했다.
한인들은 그녀가 우리와 가까운 곳, LA에 있었다는 사실에 조금은 놀랐다.
“LA에는 4년째 머물고 있다. 박사과정이 계획보다 조금 늦어지고 있는데 5월까지 논문을 끝낼 계획이다. 공부해야 하는데 내가 원래 공부를 그다지 좋아하는 타입이 아니라서(웃음)”방송출연 이후의 반응을 묻자 “난리가 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조용했다. 검색어 1위가 하루밖에 안 가더라”며 또 한번 우리를 웃겨준다.
지선씨는 힐링캠프의 출연이 다소 뜬금없었다고 말하지만 그 시간을 통해 그녀가 세상에 던진 메시지는 묵직했다.
‘왜 하필 나였나, 원망한 적 없나’라는 질문에 ‘그럼 나 말고 누군가가 다쳤어야 했다는 건데…. 그건 너무 이기적인 생각’이라던 그녀의 답변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다.
절대자에 대한 확고한 믿음, 살아있음에 대한 감사함, 가족에 대한 사랑을 전한 이지선의 힐링캠프는 그야말로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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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LA… 이지(Easy)해진 이지선
지선씨는 미국 유학생활로 완전한 독립에 성공했다.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며 홀로 운전을 하고 다닌다. 당연히 누군가 돌봐주는 사람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 오히려 조금 미안해진다.
“박사과정이라 캠퍼스에서의 소소한 재미는 없다. 친구들도 죄다 시집을 가버려 매일 함께 노는 친구는 없지만 싱글로서의 자유를 마음껏 누리며 살고 있다. 한인마켓에서 장보고 요리하는 것도 좋아한다. 내가 만든 찜닭은 꽤 괜찮은 편이다(웃음)”
지선씨는 사고 당시 의식을 잃었던 것에 감사한다. 덕분에 트라우마도 없다.
치료과정에서 힘들었던 것, 변해버린 얼굴에 대해서도 ‘어린 시절 사진을 보는 기분…. 치유할 부분이 남아있지 않을 만큼 치유했다’고 담대히 고백한다.
여전히 부드럽고 예쁜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는 것을 감사하며 조그만 발톱에 예쁜 칼라를 바르는 소소한 행복이 귀하다. 가족은 여전히 지선씨의 가장 큰 힘이며 행복이다. 불이 붙은 지선씨를 맨 손으로 구했던 오빠는 결혼해 가정을 꾸렸고 지선씨에게 세 명의 조카를 선물했다.
“소망? 음…. 하나 있긴 한데 내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이 짠해 할까봐…. 난 정말 괜찮은데 말이다. 예쁜 아기를 낳아 길러보고 싶다(웃음)”
지선씨는 사람들이 자신을 보고 ‘이지선에 비하면 나는 살만하다’는 위로가 아닌 온전히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깨닫길 바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얻는 행복은 비교 대상이 달라지는 순간 불행이 되어버린다. 지금의 내 모습을 온전히 사랑할 때 비로소 진정한 행복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더 이상 빛나지 않는 질그릇이지만 내 안에는 빛나는 것들로 채워가며 열심히 살고 있다”
하혜연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