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 인간의 육성으로 다가서는 OS와의 사랑…

놀라운 멜로 영화다. 지독한 외로움 속으로 장난스러운 농담이 파고들고, 차디차고 딱딱한 디지털 세계의 속살에 감춰진 한없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감성을 펼쳐내 보인다. 여인의 육체없이 관능적이고, 디지털만으로 인간의 온기를 자아낸다. 스파이크 존스 감독의 영화 ‘그녀’(Her)는 연결될수록 고독하고, 갈망할수록 달아나는 디지털 네트워크 시대의 관계와 사랑, 자아의 본질을 세상 어디에도 없었던 러브 스토리로 보여준다. 이 영화는 새로운 컴퓨터 운영체제(OS)와 사랑에 빠진 한 남자의 이야기를 담았다.

사람의 목소리가 곧바로 디지털 명령어가 되는 세상이 배경이다. 컴퓨터의 디지털 부호 역시 사람의 목소리를 입고 되돌려진다. 사람이 말을 하는 것만으로 컴퓨터에서의 모든 작업이 가능하다. 말을 하면 문서로 작성되고, ‘메일을 확인하라’면 컴퓨터는 메일을 읽어준다. 물론 지금도 모두 가능한 기능들이다. 


주인공 ‘테오도르’(호아킨 피닉스 분)는 다른 사람들의 의뢰를 받고 편지를 대신 써주는 일을 하는, 기업 ‘아름다운 손편지닷컴’의 직원이다. 그 역시 의뢰인들의 이런 저런 개인사를 살펴보고 그에 맞도록 아버지가 아들에게, 남편이 아내에게, 자식이 부모에게, 사랑에 빠진 연인끼리의 편지를 써주는 대필작가다. 그러나 정작 자신은 외롭고 공허한 삶을 살고 있다. 아내와 별거 및 이혼 소송 중인 그는 집에 가도 맞아주는 사람이 없다. 3D게임을 하거나, 침대에 누워 채팅을 하는 것이 전부다. 왜 이렇게 됐을까 회의와 자괴감이 밀려오지만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모르겠다. 

그러던 중 그의 컴퓨터에 채용된 새로운 개인 맞춤형 인공지능 운영체제가 인간의 육성으로 말을 걸어온다. 그가 운영체제의 성별을 ‘여성’으로 지정하자, 자신의 이름을 ‘사만다’(목소리 스칼렛 요한슨 분)라고 소개한 목소리가 등장한다. 그런데 이 새로운 운영체제가 심상치 않다. 컴퓨터의 모든 기능을 수행함은 물론이고, 테오도르와 모든 일상과 모든 희로애락을 나눈다. 옛 아내와 그랬듯이 자꾸 다른 이들로부터 튕겨져 나오기만 했던, 관계맺기를 그토록 힘들어하던 그에게 사만다의 목소리는 위로가 되고 치유가 된다. 그는 사만다와 사랑에 빠진다. 사만다는 테오도르에게 당신을 사랑하기 때문에 인간의 몸을 갖고 싶다는 갈망을 표현한다. 당신을 만지고 싶고, 당신에게 안기고 싶다고 말한다. 이 사랑의 결말은 과연 어떨까.

영화 속에서 사만다는 스스로를 “나는 수많은 프로그램 개발자들의 성향이 조합된 운영체제이지만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진화하는 존재”라고 설명한다. 결국 인간의 몸을 갖진 않았지만, 온전한 인격체인 것이다.

디지털이 열어 놓은 삶과 공간, 가능성이 무한해질수록 정작 자신이 발들여 놓는 세계는 폐쇄돼가고, 자신을 대리하는 디지털 분신(아바타)이 많아질수록 자아를 잃어가게 되며 SNS로 표현되는 디지털 그물망이 촘촘해질수록 진실한 관계는 점점 불가능해지는 현대인의 역설을 이 영화는 한없는 자기 연민으로 담아냈다.

호아킨 피닉스가 형형한 눈빛으로 보여주는 진한 외로움과 스칼렛 요한슨이 얼굴 한번 안 비치고 오로지 목소리만으로 표현한 애틋함과 관능성도 매력적인 작품이다. 22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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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k@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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