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승희 기자의 채널고정] ‘미생’이 낳은 스타 김대명, 변요한

[헤럴드경제=고승희 기자]2014년 10월 10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진행된 ‘미생’의 제작발표회는 성황이었다. 탄탄한 만화 원작을 바탕으로 배우 이성민, 아이돌스타 임시완, 떠오르는 20대 배우 강소라 강하늘이 이름을 올린 tvN의 야심작은 CJ E&M의 전사적인 홍보에 힘 입어 수 많은 취재진을 끌어모았다. 헤어스타일은 유난히 눈에 띄었으나, 기자들의 관심을 나눠갖지 못한 두 사람이 있었다. 이들은 지금 ‘미생’이 낳은 스타가 됐다. ‘김 대리’ 김대명과 ‘한석률’ 변요한이다. ‘더할 나위 없었던’ 원작과의 ‘싱크로율’은 기존 독자층의 호감도를 높였고, 배우라기 보단 어딘가 있을 법한 직장인의 얼굴을 하고 있던 두 배우의 모습에 시청자의 몰입도는 높아졌다. 2014년 하반기 ‘미생’은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끌어오며 호평 속에 막을 내렸으나, 두 배우의 2015년은 이제 시작이다. 매일 치열했던 직장생활을 마친 김대명, 변요한을 최근 헤럴드경제 사옥에서 만났다. 치열했던 ‘미생’의 촬영을 마친 허한 마음은 두 배우 모두에게 감기로 찾아왔다. 이젠 ‘끝물’이라며 괜찮다지만, 그 덕에 더 차분해진 배우들의 눈빛은 드라마에서보다 더 깊었다. 

지난 한 해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몰고왔던 케이블 채널 tvN 드라마 ‘미생’을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른 배우 김대명과 변요한이 최근 본사 사옥을 찾았다. “취해있지 말라”는 오 차장의 대사처럼 높은 인기를 얻은 지금 “이 순간에 취하지 않고”,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다”는 두 배우에게선 더 치열해질 2015년이 기대됐다.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김대명, 시인을 꿈 꾸던 소년 배우가 되다…“지금부터가 본 게임”

김성진=어떤 음식을 담아도 어울릴 듯한 질그릇같은 이미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푸근한 인상이지만, 화면 속의 그는 평범하지 않다

고승희=김대명의 눈에 비친 생활인의 고단함과 아득한 곳을 향한 그리움…배우는 예술가였다

이혜미=선과 악, 모두 담을 수 있는 도화지 같은 잠재력의 배우

정진영=외모도 처지도 말투도 가장 현실적이었던 ‘미생’…만만해 보이지만 대체제 찾기 어려울 것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빳빳하게 다림질 되진 않았지만 생활인의 티가 역력히 묻어나는 셔츠의 소매는 늘 한 번 접어 느슨하게 걷어올렸다. 셔츠 주머니엔 펜 두 자루가 꽂혀있었다. 자주 꺼내쓸 일 없는 만년필은 중요한 결제 서류에 싸인하기 위한 용도였고, 다른 한 자루는 어느 상황에서나 꺼내써야할 검은 볼펜이었다. 오래된 벨트를 채운 ‘적당한’ 사이즈의 바지를 입었다. 1970년식 세이코 시계는 1만5000원에 주고 구입했다. 젊은 시간을 함께 보낸 시계를 팔러나온 할아버지에게 구입했다는 시계의 뒷면엔 ‘전략기획실’이라고 적혀있었다. 배우 김대명이 완성한 ‘김 대리’였다.

“직장인이 되고 4년차에 대리를 달아요. 대리가 되고 2~3년이 지나 7년차가 되면 옷을 어떻게 입어야 편한지 몸으로 알게되는 때더라고요. 그런 생활감이 드라마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원작의 캐릭터를 반영해 외형적인 설정을 많이 따랐다지만 김대명이 만든 ‘김 대리’는 그가 말문을 열기 전까진 다분히 ‘만화적’이었다. ‘아줌마 파마’로 통용되는 뽀글거리는 헤어스타일을 하고 등장한 순박한 모습은 다소 튀어보였다. ‘지방대 출신’에 겉치레를 모르는 ‘김 대리’를 표현하는 데엔 안성맞춤인 장치였는지도 모른다.

“일 하는 데에 있어선 스스로를 수없이 채찍질할 만큼 철저하고 꼼꼼한” 김대명의 해석이 시청자에겐 ‘옆자리 동료’처럼 다가왔다. 드라마 촬영장소였던 서울스퀘어 지하의 카페에선 김대명에게 3500원 짜리 커피를 2800원에 팔았다. “직원 할인 해드렸어요.”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받고 나왔다”는 김대명도 내심 “가까이 있는 사람처럼 보이나” 싶었다. ‘진짜 직장인인 줄 알았다’는 반응이 김대명이 연기한 김 대리에게서 가장 많이 들렸다.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기존의 틀에서 벗어난 무언가, 앞뒤가 맞지 않는 허무맹랑함이 아닌 그 안에서 조금의 온도차가 있는 인물”을 원했던 김원석 감독의 눈에 든 김대명은 ‘선물’처럼 다가온 ‘생활인의 삶’을 꼭 한 번 살고 싶었다고 한다.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가 녹여내는 절제된 감정, 그 수많은 아득한 날들을 연기해보고 싶어 5수 끝에 대학에 입학하던 때처럼 그는 “땅바닥에 발 붙이고 사는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를 꿈꿨다.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불법 성매매 알선업자(방황하는 칼날)였고, 테러범(더 테러 라이브)이었고, 역모에 가담하는 자객(역린)으로 살며 연기 스펙트럼을 넓혀온 김대명에게 “상상의 여지가 필요치 않은 우리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직장인의 세계”를 전하는 것은 만만치 않았다. “말투, 옷차림, 걸음걸이, 술자리…. 제대로 표현하지 않으면 쉽게 걸리겠다 싶었죠.” 전화를 받을 때 나타나는 미묘한 톤의 차이, 상사나 동기ㆍ후배를 부르는 호칭부터 드라마 내내 차고 넘쳤던 어려운 무역용어까지 김대명은 놓치지 않고 연구했다. 직장인 친구들과 상사맨을 통해 얻은 정보는 김 대리의 디테일을 완성한 일등공신이었다.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난데없이 등장하던 “나 향수 바꿨다. 맡아볼래?”라는 애드리브는 김대명의 철저한 계산이 있었다. “내내 일하는 드라마였잖아요. 먹는 장면도 없고, 야유회도 없어요. 자칫하면 굉장히 유머가 결여된 드라마가 될 수도 있겠다 싶었죠. 단발성이 아닌 같은 장난을 여러 사람에게 지속하다 보면 관계마다 리액션이 달라져요. 서로의 관계에 따라 나타나는 반응에서 인간관계가 드러난다고 생각했어요.” 직장생활은 곧 ‘관계의 연속’이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김대명 만의 장치였던 셈이다.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드라마 안에서 ‘생활인’이었던 김대명은 사실 ‘시인’을 꿈꿨다. “많은 이야기를 한 단어로 함축해 던질 수 있는 것이 좋았다”는 김대명에게 시인 이상은 “지금도 이해하기 힘든 이상한 사람”이지만 그의 고교시절을 함께 보낸 외로움의 동지였다. 고단한 일과를 반복하는 생활인을 살아냈던 김 대리가 현실의 김대명으로 돌아오자 서정적인 감성이 묻어났다. 좋아하는 작가는 ‘철도원’을 쓴 아사다 지로이고, 좋아하는 뮤지션은 김광석과 유재하, 그리고 들국화다. 여유가 생길 땐 서촌을 거닐고, ‘8월의 크리스마스’를 촬영한 군산에 들러 미묘한 풍광의 변화를 빼곡히 채워오곤 한다.

”혹자들은 어떻게 어울리지 않는 두 개의 꿈을 꿨냐고 이야기하지만, 어찌보면 닮은 직업이라고 생각했어요. 연기 역시 많은 이야기를 작게 뭉쳐 던지는 건데 다만 표현방식이 다를 뿐이죠.”

배우 김대명.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할 수 있는 것과 하지 못 하는 것을 정확하게 아는 것, 그리고 냉정해지는 것”이 자신의 연기지론이라는 김대명은 “지금 만족시켜주는 연기를 못 하면 다음은 없다”는 냉혹한 현실도 익히 알고 있다. 천천히 쌓아올린 공든 탑은 ‘미생’으로 빛을 발했다. 광고계의 블루칩이 됐고, 차기작으론 영화 세 편(내부자들, 뷰티 인사이드, 판도라)이 기다리고 있다.

“냉정하게 돌아보면 지금 이 분위기가 두 달이나 가겠나 싶어요. 사람들이 좋아한다면 그건 일단 작품이 좋았고, 스태프가 치열했던 덕분이에요. 김대명이라는 배우를 처음 봤다는 낯설음이 후한 점수를 줬던 것 같고요. 지금부터가 본게임이죠. 두려움이 더 커요. 없었던 일이라 생각하려고요. 취해있지 않으려 정신줄을 부여잡고 있어요.”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 변요한, ‘말더듬이 소년’ 배우가 되다…“연기보다는 사람이 먼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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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진영=꽤나 잘 생겼다는 사실조차 잊게 만든 능청스러운 연기력…그래서 더 돋보였던 ‘미생’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드라마의 여운이 가시기 전 출연한 예능 프로그램(tvn ‘택시’)에서 변요한은 영리하게도 “모든 미생에게 바친다”며 ‘말하는 대로’(처진 달팽이)를 불렀다. 고단한 청춘의 시간을 씩씩하게 버텨내는 유쾌한 한석률로 몰입하나 싶었는데, 어느샌가 변요한의 이야기가 들렸다. 나이에 맞지 않게 깊숙이 채워 둔 인내의 시간이 비쳤다. “말하는 대로 될 수 있다고 믿지 않았던, 올 수도 없고 갈 수도 없는 힘들었던 20대”를 견뎌 “멈추지 말고 쓰러지지 말고 앞만 보고 달려”(‘말하는 대로’ 중) 자기의 길을 가는 변요한의 시간이 짧은 노래에 스며들었다.

늦었다고도, 이르다고도 말할 수 있는 나이 서른이 되며 변요한의 삶이 조금 달라졌다. 충무로에선 ‘독립영화계의 송중기’로 불리는 유망주였다지만, TV시청자에겐 생짜 신인에 불과했던 그는 이 드라마로 모두가 팬이라고 자처하는 배우가 됐다.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꿈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힘든 것 같아요. ‘미생’까지 오는 길이 힘든 과정이었을 수도 있어요. 즐길 때도 많았죠. ‘말하는 대로’는 제겐 힐링곡이었어요. 처음 들었을 때 가사가 좋아 울컥하던 때도 있었죠.”

‘미생’ 이전의 변요한은 짧은 시간 다양한 삶을 살았다. 목회자 아버지는 워낙에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장남이 안쓰러워 당신의 친구에게 중학생 아들을 맡겼다.

“제겐 마음 속의 스승님이신데, 아버지가 아는 배우셨어요. 말더듬이를 극복하고 좀 더 담대해지는 변화를 원하셨던 것 같아요. 그 분을 통해 연극을 배우고, 말하는 연습을 하다 보니 어느샌가 제가 더듬지 않고 말을 하더라고요. 더듬지 않고도 말을 할 수 있다는게 재밌었어요. 그 때부터였어요. 배우를 꿈꿨던 건요.”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연기를 하고 싶었지만 아버지의 꿈이 아들과 같진 않았다. ‘반항 아닌 반항’을 하던 시절이 있었다며 쑥스러운 듯 웃는 변요한은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의 권유로 중국 유학길에 올랐다. 하얼빈에서 콧속까지 얼어불을 정도의 강추위, 그보다 더 컸던 외로움과 싸우며 변요한은 시간을 벌었다. 아버지에겐 “‘국제무역’을 전공하는 대학 진학이 목표”라고 했지만, 그보단 훗날 배우가 된다면 영어가 아닌 새로운 언어를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름의 계획을 세웠다. 유학생활은 짧았다. 아버지가 건네준 ‘입대영장’을 받아들고 군대에 다녀온 뒤 한국예술종합학교에 입학하게 됐다. “한예종이라는 학교가 있는데, 그곳에 입학한다면 배우의 길을 허락하겠다”는 아버지의 생각이 변요한의 지금을 이끌었다. “꿈을 존중하고, 꿈이 있는 걸 원하는 분이셨어요. 그 꿈이 정말 간절하고 계속 달릴 수 있을 만한 크기인가를 보셨던 것 같아요.”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연극영화과는 어느 대학이나 치열하다. 운이 좋아 이 길에 접어들 수 있었다”는 변요한은 지금 4년째 휴학 중이다. 그 기간 ‘독립영화’를 통해 다양한 연기를 만나며 업계에 얼굴을 알렸다. ‘토요근무’(2011)가 시작이었다. 한 살 차이 여동생은 이미 앞서 연영과에 진학해 연기도 하고, 대본도 쓰는 선배가 됐다. 변요한에겐 “최고의 팬이자 안티”인 든든한 동료다. 오빠의 연기를 인정하지 않던 동생이 “박정구를 사랑할 것 같다”는 감격스러운 평가를 내놓은 ‘들개’는 김원석 감독의 눈에도 띄었다. 변요한이 ‘미생’의 막차에 올라타게 된 계기였다. 그게 불과 촬영 열흘 전이었다.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묵묵히 일만 하는 ‘다큐 같은 드라마’ 안의 한석률은 사실 조용하고 속 깊은 변요한과는 어울리지 않게 들뜬 캐릭터였다. 김원석 감독은 변요한에게 세 가지를 요구했다. “다이나믹할 것”, “리드미컬할 것”, “화술적으로 뛰어날 것”. 그래서 “어떤 자리의 사람에게나 자연스럽게 섞이고 어울릴 수 있는 인물”이 될 것. 때로는 ‘조증’이 극대화된 ‘오지랖 대마왕’ 한석률이었기에, 카메라 밖에서는 입에 자물쇠를 채우는 변요한의 모습과는 이질적으로 느껴질 정도였다.

“대본을 받아보는 순간 한석률의 대사들이 시끄럽다고 느껴졌어요. 입에 잘 붙지 않아 리딩도 못 하겠더라고요. 모든 배우가 한 자리에 모인 자리에선 말도 더듬기 시작했죠.”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그런 변요한의 내면을 알아차린 김원석 감독은 두 번째 만남에서 그의 손을 조용히 잡아주었다고 한다. “그 손의 온기가 참 따뜻했다”고 변요한은 김 감독과의 만남을 떠올렸다.

모든 배우가 그렇듯 “자기 안의 하나의 모습을 꺼내 증폭시키거나 축소시키는 에너지의 차이가 연기인 것 같다”는 변요한은 자신의 양면적인 모습을 꺼내 ‘미생’에서 성실히 풀어냈다. 그래도 후회는 남는다. “사랑하는 여자와 헤어지면 조금 더 이해하지 못한 것 같은 아쉬움이 남는 것처럼, 연기도 마찬가지”라며 “좀 더 이해하지 못하고 표현하지 못한 아쉬움이 있다”고 한다.

배우 변요한. 박해묵 기자/mook@heraldcorp.com

“달라진 변화를 인식하고 싶진 않아요. 그냥 자연스럽게 녹아들고 싶죠. 지금은 언제가 될지 모르겠어요. 하나 목표가 있다면 꼭 필요한 배우가 되고 싶어요. 그 전에 자연인 변요한의 내면을 채워야겠죠. 연기보다 사람이 먼저잖아요.”

내내 차분했던 변요한은 마주 앉은 자리에서 딱 한 번 당찬 ‘한석률’ 티를 냈다.“언젠간 동생과 함께 한 작품에서 작업하는게 꿈이예요. 대한민국 영화계에 류승완-류승범 형제만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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