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자 권력’의 원조, 일본의 외조부 섭정정치[장준영의 ‘지피지기’ 일본역사]

섭정정치 시대 ‘그림자 권력’의 정점, 후지와라 가네이에 [출처:야후재팬 화상]



“나는 진실만을 쓰겠다”

글로써 세상에 저항한 여인

“슬피 우는 저 소쩍새처럼 내 마음은 애절하다오.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어 보면 어떠하오리까?”

이랬던 그였다. 그러나 아이를 낳자마자 그는 다른 여자의 품으로 떠나버렸다. 그 후 여러 여성들과 연인 관계를 맺고 있다는 소문도 귀에 들어왔다. 당시 최고의 미인으로 손꼽힌 그녀의 자존심은 무참히 짓밟히고 말았다. 여인은 애당초 남자의 구애가 내키지 않았지만 최고 권력자 집안 자제와 결합하면 하급관리였던 자기 부친의 신분이 상승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에 그의 청을 받아들였던 게 두고두고 회한으로 남았다.

문제의 남자는 섭정정치의 절정기인 일본 헤이안시대(794~1185년)의 권문세가 자제였는데 그는 그 이후에 천황의 장인이 되고 이어서 외조부가 되면서 권력의 정점에 오른 후지와라 가네이에였다. 여인의 실명은 알려져 있지 않고 ‘가게로닛키’(日記, 974년경)의 저자 ‘후지와라 미치쓰나의 모친’으로만 기록되어 있다.

두 사람의 관계는 당시 왕조·귀족 사회의 화려한 모습에 가려진 차별상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버린 남자와 버림당한 여자, 권력자 가문의 아들과 하급관리의 딸, 본처와 첩의 신세, 서자 출신 아들…그래서 그녀는 “요즘 세상에 나오는 글은 온통 거짓말로 가득하다. 진짜 삶은 그렇지 않다. 나는 진실만을 쓰겠다”라면서 일기 ‘가게로닛키’의 서두를 시작한다. 그녀의 글은 일부일처·다첩제라는 혼인 풍습 하에서 권력자 집안 아들의 첩이 된 자신의 신세, 서자이기 때문에 집안에서 천대당하며 살아가는 아들, 미치쓰나에 대한 애잔한 마음, 권문세가와 일반 백성들 간의 뛰어넘을 수 없는 신분 차이에 대한 좌절감 등 당시 사회의 총체적 모순을 고발했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받을 만하다.

그녀의 일기는 이런 저항 의식을 내적 성찰로 승화시키면서 여성 특유의 섬세한 필치로 묘사하여 일기문학의 백미로 평가받고 있다.

헤이안시대 여류문인, 무라사키시키부 [출처:야후재팬 화상]


섭정정치의 토양이 된 모계 중심 사회

헤이안시대는 모계 중심 사회였다. 혼인 풍습이 이를 잘 반영하고 있다. 남자가 밤에 여자 집을 찾아가 하룻밤을 지내고 아침이 되면 자기 집으로 돌아간다. 이른바 처갓집 출퇴근 결혼 방식이다. 이때 태어난 아이는 처가에서 양육한다. 그 후에는 남편이 처갓집에 들어가 사는 처가살이 형태로 바뀌게 되는데 황태자도 천황으로 즉위하기 전까지는 처갓집에서 거주하고 그들이 낳은 아이들도 외조부모의 손에 자랐다. 따라서 자연스럽게 외척의 영향력은 강해질 수밖에 없었다. 재산도 딸과 사위에게 상속되어 귀족 남자의 경우 관위는 부친의 것을 이어받지만 재산은 물려받지 못했다. 그런 만큼 여성의 사회적 존재감은 컸다.

결혼도 본처와의 결혼만 부모가 결정했는데 이는 가문끼리의 정략결혼이 일상화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나머지 여성들과의 연애, 결합은 아들의 자유의사에 맡겨 아무리 많은 여자들을 거느려도 문제를 삼지 않았다. 이 시대의 혼인 풍습은 엄밀하게 말하면 ‘일부일처·다첩제’라고 보는 게 타당하다. 본처는 만년에 남편 집에서 함께 살 수가 있어서 가네이에 본처의 경우에는 친정집에 살다가 만년에는 남편 집으로 들어가 살았다. 반면에 미치츠나의 모친은 첩으로 간주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거처에서 홀로 지내며 여생을 마쳤다. 이런 풍습은 150~200년 정도 존속되었는데 이 시대에 이뤄진 일본의 외척에 의한 섭정정치는 자연스럽게 천황의 외조부가 권력을 장악하는 데 유리한 환경을 조성해주었다고 한다.

‘가게로닛키’ 저자, 후지와라 미치쓰나의 모친 [출처:야후재팬 화상]


“온 천하는 내 것이로다”

그렇다면 앞에서 언급한 ‘문제의 남자’ 가네이에는 어떤 인물이었던가. 당대 권력 3위에 올라있던 부친 모로스케의 3남으로 태어난 그는 큰 형과 둘째 형에 밀려서 이렇다 할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차에 그는 장녀 오토코를 레이제이천황의 후궁으로 들여보내 오토코가 천황의 아들을 낳음으로써 천황의 장인이 된다. 그 아들이 후에 산조천황이 된다. 레이제이 천황이 사망하고 그 뒤를 이어 즉위한 엔유천황에게는 둘째 딸 아키코를 후궁으로 입궐시켜서 득남하는데 그 역시 후에 이치조천황이 된다. 이로써 그는 연달아 천황의 장인이 되는 행운을 얻게 되었다.

게다가 그는 엔유천황 뒤를 이어 즉위한 가잔천황을 권모술수를 동원해 자리에서 물러나게 한 뒤에는 고작 일곱 살에 불과한 외손자, 이치조천황을 즉위시키면서 본격적으로 ‘외조부 섭정’에 나서며 권력을 자신의 손아귀에 넣는다.

부친 가네이에의 뒤를 이은 다섯째 아들 미치나가는 부친에 못지않은 뛰어난 정치 수완을 발휘하여 자신의 장녀 쇼시를 이치조천황의 중궁으로 입궐시켰으며, 차녀 겐시 역시 이치조천황의 뒤를 이은 산조천황의 중궁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셋째 딸 이시 또한 산조천황 다음에 즉위한 고이치조천황 비로 삼는데 성공했다. 여섯째 딸 기시는 고스자쿠천황의 황태자 시절에 황태자비가 되었으나 아쉽게도 천황 즉위 전에 사망, 그녀의 사후에 그의 아들은 고레이제이천황이 된다. 이로써 미치나가는 연달아 천황 3대에 걸쳐 외조부가 된 역사상 유일한 인물로 기록된다.

후지와라 가문에게 있어서 자신의 딸들에 대한 천황의 관심과 애정의 정도는 가문의 명운이 걸린 문제였다. 이에 미치나가는 묘책을 쓰는데, 최고의 여류 문필가 무라사키시키부를 초빙, 그녀에게 중궁 쇼시의 가정교사 역할을 맡김과 동시에 대하 장편 연애소설 ‘겐지모노가타리’를 집필토록 하여 천황을 애독자로 만드는데 성공한다. 소설의 스토리 전개가 궁금한 천황은 쇼시의 거처를 수시로 찾았고 그 덕분에 쇼시는 천황의 총애를 독차지하게 되었다. 그는 “보름달이 세상을 가득 비추듯이 온 천하는 내 것이로다!”라는 유명한 시구를 남겼다.

천황의 외척 후지와라 가문이 어리거나 유약한 천황으로부터 국정에 관한 통치 권한을 위임받아 행한 섭정정치는 한마디로 외척세력이 획득한 ‘그림자 권력’이라고 규정지을 수 있는데, 후지와라 가문은 요직을 독점, 세습하며 인사권과 징세권을 장악하고 영향력을 확대해나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장원의 대규모 소유였다. 이들은 자신들이 임명하여 지방에 파견하는 수령들을 통해서 토지를 상납 받아 장원을 획득하여 막대한 부를 축적했다. 극소수의 귀족들이 호사스러운 생활을 즐기는 반면에 대다수의 백성들은 수혈식 주거 즉 움막집에 기거하며 궁핍한 생활을 영위해 나가야만 했다. 이런 극심한 빈부 격차는 마침내 농민 반란과 도적들의 횡행, 무사 계층의 출현을 불러와서 귀족의 몰락과 헤이안시대의 종말을 재촉하는 단초로 작용했다.

섭정은 천황이라는 권위와 외척세력이 독점한 권력이 따로 분리된 이중적 통치 구조에 탄생한 ‘그림자 권력’이었으며 이는 왕조의 몰락으로 귀결되었다. 현대적 의미에서 해석하자면 민주적 선거에 의해서 확보된 공화정의 권위가 국민의 위임을 받지 않은 ‘그림자 권력’에 의해 유린될 때 그 사회는 쇠락의 길로 접어든다는 것을 일본 헤이안시대 역사는 말해주고 있다. 이점이 필자가 이번 글에서 천 년 전 일본 헤이안시대의 역사를 소환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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